"연봉·복지·연구환경 모두 우위… 한국에 남을 이유 없죠" [두뇌유출 上]

입력 2025-04-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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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5-04-27 17: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韓, 반도체-SDV 등 인력 유출 심각
"국가 산업 경쟁력에 심각한 위협"
中, 최우수 신진 과학자 프로젝트
美, STEM 유학생 이민장벽 완화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두뇌 유출)’.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첨단 산업 분야에서 두뇌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바이오, 미래차, 우주항공 등 전략 기술 산업들은 인재 부족에 신음 중이다.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으로 이공계 두뇌 자체가 쪼그라들었고, 양성된 인재들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해외 기업의 손짓에 머뭇거림 없이 떠난다. 고액 연봉과 연구 자율성, 이민 혜택까지 내세운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젊은 두뇌들을 쓸어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경직된 조직문화, 낮은 보상, 복잡한 비자 제도로 대책 없이 뺏기고만 있는 상황이다. 외국 유학생과 연구자들도 졸업 후 한국에 머무르기보단 떠나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는 기술과 인재를 둘러싼 전쟁 중이다. 한국이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국내 인재를 지키고 키우는 동시에 글로벌 인재를 끌어들이는 이중 전략이 필수적이다. 본지는 국내 인재 유출의 현실과 제도적 문제점, 대응방안 등에 대해 짚어본다.

(오픈AI 달리)
(오픈AI 달리)

“연봉은 두 배, 연구 자율성은 훨씬 높고, 가족 비자까지 지원해준다고요. 안 갈 이유가 없죠.”

서울의 한 대학에서 전기전자공학 박사 과정을 밟다 미국계 반도체 기업에 입사한 김모 씨는 국내 취업을 포기한 이유를 단번에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박사도 입사 후 ‘막내’ 취급을 받는 반면해외에선 입사와 동시에 주도적인 연구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떠난 자리는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

27일 산업계에 따르면 김 씨처럼 한국을 등지고 해외로 향하는 이공계 인재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글로벌 기업들이 제공하는 조건은 압도적이다. 연봉, 자율성, 가족 이주 혜택, 연구 환경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은 경쟁이 되지 않는다. 미국·독일·네덜란드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싱가포르까지 국가가 나서 인재를 스카우트한다.

반면 한국은 낮은 보상, 폐쇄적 조직 문화, 연구 자율성 부족, 기형적인 평가 시스템이라는 4중고에 빠져 있다. 특히 창의성과 융합적 사고가 요구되는 연구 분야조차 ‘연차’와 ‘위계’를 앞세우는 문화가 팽배하다. 미래 산업을 주도할 인재가 남을 이유가 사라졌다.

이 같은 인재 유출은 결국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이는 국가 경쟁력의 누수이자, 산업 생태계의 붕괴로 직결되는 구조적 위기다. 반도체 분야에선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5년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고급 인력들이 중국 기업으로 대거 이적했다.

반도체 기업에서 근무하는 한 연구원은 “중국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연봉의 다섯 배를 제시받은 적이 있다”며 “가족 체류비와 학비까지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망설이다 거절했지만, 주변 동료들은 줄줄이 떠났다”고 털어놨다.

심대용 동아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중국이 한국의 기술과 인재를 적극 흡수하면서 단기간에 기술력을 빠르게 따라잡았다”며 “인력 유출 문제는 국가 산업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진단했다.

자동차 산업도 다르지 않다.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DV)’ 전환이 급박하지만, 소프트웨어 인재는 해외 기업으로 빠르게 유출되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신입 SW 인력을 구하려 해도 국내보다는 구글, 테슬라, 화웨이 등 해외 테크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중소·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조건에서 경쟁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국내의 소프트웨어(SW) 인력난은 교육 시스템 부재, 산업 간 인재 쟁탈, 융합형 인재 양성 실패 등 복합적 실패의 결과다. 지은희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 수석연구원은 “SDV 수요는 폭증했지만, 이를 채울 인재가 없다”고 진단했다. 산업은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었지만, 정책과 교육은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반증이다.

세계는 지금 ‘인재 전쟁’ 중이다. 중국은 15년간 58억 원을 지원하는 ‘최우수 신진 과학자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자를 붙잡고 있고 미국은 STEM(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 전공 외국인 유학생의 이민 장벽을 완화했다. 싱가포르는 박사급 인재에게 거주권을 우선 제공한다. 한국은 아직도 고급 인재의 가치에 대한 인식조차 미흡한 상태다.

사정은 현역만의 얘기가 아니다. 석학조차 연구 환경을 찾아 해외로 떠나는 현실은 더 깊은 위기다. 탄소나노튜브(CNT) 분야 세계적 석학 이영희 성균관대 HCR 석좌교수는 정년 후 국내에 자리 잡지 못해 중국 후베이공업대에 임용됐다. 이기명 전 고등과학원 부원장도 퇴임 후 중국 BIMSA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 모두 ‘국가석학’ 출신이었다. 반도체 고급 인력도 은퇴 후 해외 업체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심대용 교수는 “반도체 은퇴 인력이 갈 수 있는 곳이 국내엔 팹리스 몇 곳뿐”이라며 “CIS(이미지센서), 낸드 컨트롤러 등 고급 기술 인력이 경력 말기까지 활약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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