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서, 찢긴 자국, 오려낸 얼굴, 담뱃불 흔적…훼손된 벽보가 나부낍니다. 선거철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익숙한 풍경이죠. 선거 벽보 보호포장까지 뚫은 그 의지(?)가 놀라울 따름인데요.
이런 사태가 2025년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됐죠. 전국 곳곳에서 선거 벽보 훼손 사례가 잇따랐고, 초등학생이 선거 벽보를 찢었다가 적발된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런 사례의 끝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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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대선을 앞두고 선거 벽보 훼손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요. 16일 광주 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50대 남성이 벽보 7장을 통째로 뜯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고요. 17일에는 경기 수원 호매실에서 10대 청소년이 벽보를 날카로운 도구로 훼손한 뒤 경찰서에 자수했고, 대구 중구 남산초 인근에서도 유사한 훼손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8일에는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앞 철망에 붙은 벽보 사진 속 눈 부위만 정교하게 찢긴 채 발견됐고, 19일 제주시 노형초등학교에서는 후문 인근에 붙은 벽보를 초등학생 두 명이 찢는 일도 있었죠.

경찰청에 따르면 19일 기준 대선 관련 범죄 사건으로 단속된 363명 중 185명이 현수막·벽보 훼손 건으로 수사받고 있으며 이 중 1명은 구속됐습니다. 12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 열흘 만에 이미 200건에 가까운 홍보물 훼손 사건이 발생한 만큼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관련 범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훼손 사범이 1000명 안팎을 기록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는 이유죠. 계속된 훼손 사례에 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장난이었다”, “꼴 보기 싫어서 그랬다”라고 단순하게 말하는 이들의 훼손 이유에 더 당황스러워지는데요. 하지만 선거 벽보는 단순한 종이가 아닙니다. 이는 후보자 정보를 알리는 공식 선거자료이자,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공적 수단인데요. 공직선거법은 이를 훼손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범죄로 명시하고 있죠.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 벌을 받았을까요? 대답은 단순합니다. 네, 당연히 처벌받았습니다.

2002년 제16대 대선 기간 일부 지역에서 후보 벽보에 욕설이나 얼굴에 수염, 안경, 점 등을 그리는 낙서 행위가 다수 적발됐는데요. 이에 경찰은 폐쇄회로(CC)TV와 주민 신고 등을 통해 낙서한 시민들을 추적해 입건 처리했습니다.
2017년 제19대 대선 기간 서울 영등포 담장에 부착된 선거 벽보 일부를 40대 노숙자가 손으로 찢어 경찰에 검거돼 주거 부정과 재범 우려 등으로 구속됐고요. 경남 창원에서는 대선 후보 선거 벽보에 볼펜 등으로 X표를 그리는 등 낙서를 한 시민도 불구속 입건됐습니다. 경기 오산에서는 20대 남성이 라이터로 벽보를 태우려다 불이 붙자 달아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요. CCTV에 찍혀 붙잡힌 그는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죠.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산 금정구에서 21대 총선 후보자 현수막에 스프레이를 뿌린 혐의를 받은 60대 남성은 벌금 70만 원을 선고받았고요.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에는 서대문구에서 벽보 10장을 찢은 50대 남성이 재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공정선거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한 행위”라고 판시했죠. 인천에서는 한 시민이 특정 정당 벽보에 성적 모욕성 낙서를 했다가 벌금 200만 원형을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공직선거법 제240조는 “정당한 사유 없이 선거 벽보·현수막 기타 선전시설의 작성·게시·첩부 또는 설치를 방해하거나 이를 훼손·철거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이 법은 단순히 물리적 훼손을 넘어서, 유권자의 판단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합니다. 대법원은 판례에서 선거 벽보는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필수적인 선거정보 전달 매체’라고 명시했죠. 이를 고의로 훼손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드는 심각한 범죄로 평가됩니다.
선거 벽보를 훼손한 이들은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어려운데요. 선관위 감시요원이나 시민의 신고를 통해 즉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벽보 상태를 촬영하고 훼손 정황을 기록합니다. 주변 CCTV 영상과 목격자 진술, 훼손 흔적 등을 토대로 용의자를 특정한 뒤, 범행 동기와 방법, 전과 여부 등을 면밀히 조사하죠. 현장에서 적발되면 곧바로 현행범 체포로 이어지는데요. 특히 미성년자나 촉법소년이 가담한 경우에는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 등의 절차가 적용되며, 재범 가능성과 보호자 지도 여부까지 종합적으로 판단되죠.

벽보 훼손의 이유로 '정치적 표현'일 뿐이라고 변명하기도 하는데요.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 수단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며 벽보 훼손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된 표현방식이 아닙니다. 대법원도 선거 벽보 훼손은 표현의 자유가 아닌 범죄 행위라는 입장을 반복했죠. 정당한 정치적 의사표현은 투표소에서 해야지 벽보에 칼을 들이대는 방식으로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벽보는 얇고 가볍지만, 그 위에 새겨진 정보는 민주주의의 무게만큼 무거운데요. 명심해야 할 것은 선거는 순간의 화가 아니라 표로 말하는 시간이란 거죠. 찢긴 벽보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유권자의 의사는 투표용지 위의 도장 하나로 보여줘야 하는데요. 벽보는 당신이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아니라, 당신의 선택을 향한 안내판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