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모로 봐도 불편한 대선이다. 12·3비상계엄이 일어난 지 곧 다섯 달이 되는 시점인데도 국민의힘은 여전히 탄핵의 강을 건너기를 주저한다. 권력에 줄 서는 정치가 계엄과 같은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며 깊이 뉘우친다는 윤희숙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의 연설이 파장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괴이하다. 다른 한쪽에선 경선 경쟁 후보들이 '있지만 없는', 전례 없는 순회 경선 싹쓸이가 이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윤 원장은 최근 국민의힘 정강·정책 연설에서 지난 4년 동안 당의 행태를 짚으며 사과했다.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며 두 명의 당 대표를 강제로 끌어내렸고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후보를 눌러 앉히기 위해 수십 명의 국회의원이 연판장을 돌리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또 "파면당하고 사저로 돌아간 대통령은 '이기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무엇을 이겼다는 건지는 모르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윤 원장은 눈물을 글썽였다.
국민의힘에선 발언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지만 책임을 통감한다며 윤 원장의 절박함에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가 나왔다. 다만 윤 원장의 발언에 대한 이견은 물론 너무 앞서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발언이 지도부에 의해 걸러지지 않은 것을 문제 삼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어쩐지 국민의힘이 강을 건너기보다 불편한 모호성만 유지할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윤 대통령의 신당 창당 해프닝과 창당을 주도했던 탄핵 심판 법률대리인단이 세간에 공개한 사진도 당혹스럽다. 일부 탄핵심판 변호인단이 윤 전 대통령의 이름을 반영해 창당을 시도했다가 불발된 지 이틀 만에 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으로 늑대가 들어온다는 전호후랑(前虎後狼) 꼴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우리 당 후보들이 호미로 밭을 일구고 있는데, 윤 전 대통령은 트랙터로 그 밭을 갈아엎고 있다"며 대통령과의 결별을 촉구한 지 사흘 만에 벌어진 사태다.
정치적 공간을 잃은 윤 전 대통령이 정치권에 자신의 그림자를 내리비추는 것도 불편하지만 당 밖 용병을 구심점 삼아 빅텐트를 치려는 국민의힘의 미래 설계도 편하진 않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국민 앞에선 침묵하고, 뒤에선 출마인 듯 아닌 듯 알 수 없는 모호한 발언을 이어가는 건 더더욱 갑갑하다. 한 대행은 30일 사임 후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설'이다. 다만 한 대행이 출마하면 보수 진영에선 단일화에 속도를 내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빅텐트를 누구를 중심으로 얼마나 크게 펼칠 것인지 구체화하지 않았고, 이기리라는 보장도 없지만 어찌 됐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다는 게 구(舊) 여당의 의지다.
국민의힘이 경선 최종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생존의 끈인 양 여전히 '이재명 반감'과 '포비아 키우기'에만 매몰돼있는 모양새도 달갑지 않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수년째, 숱한 사법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대세론을 굳힌 건 그만큼 상냥한 정권교제가 아닌, 혹독하고 모진 교체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바람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국가비상사태가 아님에도 국가의 원수가 계엄이라는 폭력적인 카드는 꺼낸 데 대해 국민의 맞불이 아닐까.
물론 더불어민주당의 경선을 보는 것도 개운하진 않다. 이 후보는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서 최근 압도적 승리를 이어왔다. 충청 경선 88.15%, 영남 경선 90.81%를 기록해 압승을 거뒀고, 호남권에서도 88%대를 득표했다. 광주·전남 지역은 이 후보가 2021년 대선 경선 당시 유일하게 고배를 마셨던 곳이다. '호남권 반명' 정서가 깨진 건 이 후보와 민주당의 공들이기도 있었겠지만 '계엄'에 대한 호남만의 민감한 인식이 확실한 정권 교체를 위해 될 만한 사람을 전략적으로 지지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찌됐든 이 후보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다만 '특정 후보에게 90% 가까운 표가 몰리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김동연 대선 경선 후보의 말은 여운을 남긴다. 선명성이 없는 일부 후보를 두고 착한 2등 전략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씁쓸하다.
여러모로 불편한 대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