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헤드샷·벤치클리어링…야구 불문율 이제는 극혐? [요즘, 이거]

입력 2025-05-2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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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율 뜻 알고 보는 프로야구,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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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화를 내는 거야?

야구의 기본은 ‘치고 달리기’라고 배웠는데… 열심히 뛰고 열심히 쳤는데도 화를 내는 사람들. 도대체 무슨 일인 걸까요? 삿대질하며 열을 내는 이들은 하나같이 “불문율을 어겼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불문율: 따로 규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스스로 지켜야 할 행동

선수들은 암묵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이른바 ‘야구 불문율’. 규칙은 아니지만 어기면 무한 질타가 쏟아지는데요. 그런데 이런 불문율에 물음표가 붙고 있습니다. “그걸 왜 지켜야 하죠?”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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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어린이날,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11-0이라는 스코어가 찍힌 6회 초. 한참 앞서 나간 원정팀 KIA 타이거즈 신인 정해원이 2루를 훔쳤는데요. 당시 키움 히어로즈 수비진은 도루 대비를 하지 않았고, 주자는 무관심 속에 도루를 감행했죠.

안타 이후 도루까지 해낸 정해원은 뿌듯한 마음이었지만, KIA 더그아웃은 얼어붙었는데요. 이범호 KIA 감독은 얼굴이 벌게져 소리를 질렀고, 더그아웃 분위기는 한순간에 무겁게 가라앉았죠. 그 ‘불문율’을 어겼다는 건데요. 점수 차가 너무 클 때는 도루를 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는 ‘야구계 암묵적 약속’ 말입니다.

이튿날 이범호 감독은 해명에 나섰는데요. 그는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해서 화를 내거나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서 크게 나무라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런 건 잘못된 플레이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그 부분은 우리가 얘기해주지 못했고 프로에 적응하는 단계에선 배워가는 부분이다. (화를 낸 건) 코칭스태프에서 잘 알려주라는 의미였다”고 말했죠. 하지만 정해원은 경기 직후 교체됐고, 키움 더그아웃에 직접 찾아가 사과했습니다.

이 ‘불문율’ 사과는 지난해 6월에도 있었는데요. 수원 kt위즈파크에서 벌어진 한화 이글스와 kt 위즈의 경기. 한화가 kt를 12-2로 앞선 상황 속 8회 말에 등판한 박상원은 삼진 두 개를 잡은 뒤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습니다. 구원 투수로 등판한 박상원이 아웃카운트를 잡은 후 자신만의 세리머니를 한 건데요. 하지만 상대 팀 더그아웃은 불쾌함을 숨기지 못했죠. 크게 이기고 있을 땐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언급하면서요. 9회가 끝난 후 두 팀은 그라운드에서 마주 서는 벤치클리어링 직전 상황까지 번졌습니다.

kt 황재균은 박상원을 향해 손짓하며 다가갔고, 더그아웃은 험악한 분위기에 휩싸였는데요. 김경문 한화 감독은 다음 날 인터뷰에서 “우리는 동업자다. 오해할 행동은 하지 말자”고 언급했고, 박상원과 한화 수석코치는 kt 라커룸을 찾아 사과 인사를 전했죠.

‘불문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열심히 달리고 열심히 던진 이들이 고개를 숙였는데요. 야구 감독과 선수들은 모두 당연하다는 듯 행동했지만, 팬들은 의문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면서요. 경기 끝나기 전까지는 전력으로 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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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문 폭발은 앞서 정해영의 도루 이틀 뒤 벌어진 사태가 더 불을 붙였는데요. 키움과 KIA의 3연전 마지막 날이었죠. 이날 경기는 KIA가 10-3으로 앞선 8회 말까지 모든 흐름을 장악하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키움이 8회 말 단 한 이닝에 무려 8점을 몰아치며 11-10으로 경기를 뒤집어 버렸습니다.

그 한 이닝엔 모든 것이 있었다. 볼넷, 적시타, 그리고 만루홈런. 키움의 김태진은 커리어 두 번째 만루홈런을 이 중요한 순간에 쏘아 올렸고, 송성문과 최주환의 연속 출루에 이어 최주환의 극적인 3타점 역전 2루타까지 터졌죠. KIA는 무려 여섯 명의 불펜을 투입했지만 키움의 집중력을 막을 수 없었는데요. 그러자 KIA 팬들은 “불문율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다. 이제는 10점 차 이상에도 도루 열심히 해라”, “불문율 챙기다가 지는 꼬락서니”, “그따위 불문율 없애라”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죠.

도대체 이 불문율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야구 불문율의 뿌리는 19세기 후반 미국입니다. 초창기 야구는 ‘신사 스포츠’로 분류됐고, 승리에 앞서 품위와 명예를 중요시됐죠. 문제는 이 예의가 점차 ‘감정 관리’와 ‘보복 명분’으로 변질됐다는 점인데요. 타자가 배트 플립을 하면 다음 타석에 사구가 날아오고, 도루하면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지는 구조로 말입니다.

불문율은 명예를 위한 것이었는데요. 그러나 불문율을 지키느라 더 많은 논란이 불거지고 있죠. 불문율을 어기면 종종 ‘헤드샷’과 ‘벤치클리어링’이라는 더 큰 충돌로 이어지는데요. KBO리그에서는 여전히 사구 이후 감정 표현 하나에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지고 때로는 보복성 공이 논란이 되죠.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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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불문율은 대부분 큰 점수 차에서 벌어지는데요. 크게 이기고 있는 팀은 도루 금지, 3볼-0스트라이크 카운트 스윙 금지, 홈런 세리머니 자제, 배트플립(빠던) 금지 등이죠. 상대 기록에 대한 존중도 있는데요. 상대 투수의 퍼펙트게임 중 번트 자제 등이죠. 이런 불문율은 경기의 흐름을 매끄럽게 만들고 프로로서의 태도를 갖추는 데 목적이 있는데요. 하지만 일부는 과도하게 기분과 자존심을 중심에 놓고, 전략과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기도 하죠. 분명 승부가 갈리는 ‘스포츠 경기’임에도 말입니다.

하지만 이 불문율이 꼭 정답은 아닌데요. 점점 달리 해석되고 있습니다. 팀이 역전을 꿈꿀 수 있는 시대, 관중은 개성과 장면에 열광하는데요. 오타니 쇼헤이(당시 LA 레인절스 소속)는 2023년 시애틀 매리너스전, 팀이 8-0으로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3볼-0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스윙했고, 그 결과 적시타를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불문율을 어긴 오타니는 이후 상대 더그아웃을 향해 고개를 숙여 사과의 뜻을 내비쳤죠. 오타니의 사과에 상대 팀과 중계진도 박수를 보냈는데요. 한마디로 불문율을 예의 있게 어긴 겁니다.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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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시대도 상황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야구 규칙도 규정도 계속 추가되거나 변경되죠. 이런 가운데 불문율만 꼿꼿하게 ‘전통’이란 이름으로 버티는 것에 질문이 쏟아지는 건데요. 물론 불문율은 야구 예의를 보여주는 것이라 지켜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대부분 불쾌함을 핑계로 삼는 감정 규제와 경기를 느슨하게 만드는 것을 꼬집고 있죠.

야구는 원래 이기는 게임입니다. 지지 않기 위한 모든 노력은 정당하죠. 그리고 불문율은 그 노력의 길을 막는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입니다. 승리를 향한 전략과 상대에 대한 존중이 충돌할 때, 그때야말로 불문율은 다시 쓰여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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