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서 사상 검증하며 민주주의 위협
“침묵할 권리도 표현…잊지 말아야”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까지 정치적 갈등과 혼란은 극심했다. 한 아파트에서는 할아버지가 하교하는 초등학생을 붙잡고 ‘탄핵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가족들은 어떤 생각이냐’며 따져 물었다고 한다.
이 할아버지는 나무 밑에 숨겨놓은 칼을 들고 위협하기도 했는데,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다가 별다른 피해가 없어서 풀려난 것으로 전해들었다.
반대로 중학생들이 마트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할아버지에게 “탄핵 반대하느냐, 왜 대답을 안 하냐”며 멱살을 잡았다고 한다. 황급히 자리를 피한 할아버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처럼 ‘십자가 밟기’식 행동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난다. 십자가 밟기란 과거 일본 에도 시대, 기독교 탄압 정책의 일환으로 십자가 상이 새겨진 금속판 위를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하면서 이에 동요하거나 거부하는 기독교인을 색출해 처벌했던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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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방어권 보장 등을 골자로 한 권고안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회의장 길목을 막아서며 '사상검증'을 벌였다.
일부 지지자들은 “시진핑 개XX, 김일성 개XX라고 말해 봐라”, “이재명 욕을 해 봐라”고 요구하면서 특정 언론사의 출입을 막았고, 야당 의원들에게 욕설을 했다고 한다. 경찰에 의해 해산됐지만 한동안 위협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치적 입장과 신념을 강요하거나, 침묵을 문제 삼는 분위기는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 십자가 밟기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과 양심을 꿰뚫어 보겠다는 폭력적 의지의 상징이다.
현대사회에서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는 단지 헌법 조문에 머무르는 권리가 아니고 일상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지켜나가야 할 최소한의 윤리이다. 정치적 갈등이 극단화할수록, 사회적 인식과 법적 장치가 중요하다.
이보라 변호사는 “과거의 십자가 밟기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사상의 자유가 사라지는 일상의 순간들을 경계하고, 침묵할 권리 또한 하나의 표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말할 자유만큼이나 말하지 않을 자유도 자유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