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종교인과 정치인

입력 2012-05-23 10:05 수정 2012-05-2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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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남 경희대학교 교수

오는 5월 28일은 불기(佛紀) 2556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 오신 날 전국의 사찰에는 불자(拂子)들이 모여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뜻을 기린다. 서울 조계사에서도 봉축 법요식이 성대하게 열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이 혼탁한 세상에 부처님의 자비가 충만하기를 빌 것이다.

이 봉축 법요식에는 언제나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이 많이 참석하는데 올해는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어 유난히 정치인의 발길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변이 없는 한 부처님 오신 날 언론 보도의 아랫목은 엄숙하고 경건한 표정으로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 있는 여·야당의 대표, 총재, 그리고 소위 대권주자라고 하는 분들의 차지일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애매하지만 부처님 오신 날 서울 조계사의 봉축법요식은 정치인들이 불심을 잡으려는 정치 각축장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종교가 어떠하든 주요 정치인, 특히 대권주자가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불교계에 대한 무시, 또는 불교계에 정성을 들이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어 향후 선거에서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람들이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의 시대에 주요 종교의 기일에 모두 자리를 함께하여 경축하는 행위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치 프리즘을 들이대는 현실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것도 우리가 사는 오늘 이 시대의 엄연한 현실이며, 인간이 사는 모습이라면 비관적으로 볼 일도 아니다. 오히려 종교와 정치의 현실적 관계를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지혜를 짜내야 할 것이다.

사실 종교와 정치의 관련성은 어제 오늘의 일도, 선진국 후진국을 가릴 일도 아니다. 과거 민주화운동시절 덕망 있는 종교계 지도자들의 의미 있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는 정권담당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고 국민에게는 한 줄기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동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서구 민주주의국가에서도 종교는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적지 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미국은 세계의 어떤 다른 나라보다도 종교적 가치가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 나라다.

미국의 독립혁명을 이끌고 헌법을 기초한 사람들의 정치사상은 기독교 정신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청교도 정신이 강조하는 개인의 책임성은 미국에서 민주주의적 가치를 촉진시키는 바탕이 되었다. 미국인들이 큰 책임과 권한이 부여된 공직 선거에 출마한 정치후보자들을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검증하는 것도 이러한 종교적 가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각종 선거직 공직에 출마한 미국의 정치후보자들은 성격, 학·경력으로부터 사회활동, 병역문제, 세금납부, 부정부패와 비리는 물론이고 가정생활, 심지어는 학창생활의 시험부정행위, 마약복용, 데모행위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고 있다.

그런데 2000년에 있었던 우리나라 4.13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가 낙선운동 대상자로 지목한 86명 중 37명(이중 31명 낙선)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부정부패비리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유명 정치인들, 측근·친인척 비리, 또는 자신의 부정부패비리로 정치 인생을 훼손한 대통령들도 모두 이런 저런 종교의 독실한 신자임을 공공연히 내세우던 분들이라는 이 불편한 진실. 도대체 이들에게 종교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가?

종교를 가진 정치인이라고 모두 완벽한 도덕군자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가치가 진정 그들의 삶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고 자임하는 정치인이라면 종교 따로, 정치 따로 이거나 종교를 선거에서 득표를 위한 극히 공리적(功利的)인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켜서는 안될 것이다.

국민의 지도자인 사람들 또는 지도자 되기를 원하는 신앙인들이라면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진정한 종교적 가치에 충실하여 도덕적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긍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의 종교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하는데 종교가 할 수 있는 하나의 의미 있는 현실적 기여가 될 것이다.

/김창남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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