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관세, 공급망 전반 파급…비용↑
AI 지출마저 억제하면 상황 더 나빠질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전 세계 IT 업계에 막대한 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높은 관세율과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로 공급망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올해 IT 업계의 지출액이 당초 예상보다 2000억 달러(약 288조 원)가량 낮아질 전망이라고 27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미국 리서치업체 IDC 분석을 인용해 보도했다.
IDC는 당초 올해 전 세계 IT업계 지출 증가율이 전년 대비 10%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트럼프 관세 충격을 이유로 이를 5%로 낮췄다. 감소액은 약 2000억 달러에 달한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기업들이 관세 부담을 소비자들에 전가하면 스마트폰, 개인용 컴퓨터(PC), 서버 등 다양한 품목에서 수요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크로퍼드 델 프레테 IDC 최고경영자(CEO)는 닛케이와 인터뷰에서 “(미국 관세 정책 발동으로) 5% 증가로 하향 조정되는 시나리오를 고려하고 있다”며 “당초 예상은 전년 대비 10% 증가한 총 4조1000억 달러 규모였다”고 설명했다.
IT 지출에는 스마트폰, 서버 등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서비스 등 소프트웨어도 포함된다. 델 프레테 CEO는 “가격 상승으로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기 어려워져 올해 하반기부터 IT 지출이 둔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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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C는 IT 지출과 별도로 반도체 부문에 대해서도 시장 동향을 정리했다. IDC는 트럼프 행정부가 도입을 검토 중인 반도체 관세 발동을 반영했을 때 올해 반도체 시장 성장률 예상치를 기존 11%에서 9%로 하향 조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는 설계와 생산, 제조 장비, 부품·소재의 거점이 미국, 유럽, 일본, 기타 아시아 국가들에 골고루 분산돼 국제 분업화 수준이 상당하다. 델 프레테 CEO는 “반도체 관세는 공급망 전체에 파급돼 모든 플레이어의 비용을 높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토머스 바킨 미국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이달 초 기업의 투자 환경을 ‘짙은 안개’에 비유하면서 “안개 뒤 태양이 있다고 믿는 이들도 지금은 많은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고, 안개가 걷힐 때까지 멈춰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트럼프 관세 정책 불확실성에 기업들이 현재 설비 투자를 꺼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인공지능(AI) 투자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매우 높은 상태라고 델 프레테 CEO는 짚었다. 문서 작성과 고객 응대, 시스템 개발 등을 자동화할 수 있는 생성형 AI 활용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만큼 지출의 우선순위가 높다는 것이다.
AI 개발과 운영을 위해서는 AI 연산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센터가 필요한데, 이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미국 IT 대기업들의 활발한 설비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향후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AI 관련 지출마저 억제하는 움직임이 나타난다면 전 세계 IT 지출 규모가 더욱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닛케이는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