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넋두리]집단소송 피하는 비법, 상사중재

입력 2015-11-0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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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월스트리트의 은행과 카드회사들은 지긋지긋한 집단소송의 공포에서 해방된 분위기다.

거래약정서에 중재조항을 넣은 덕분이다. ‘클레임은 개별중재로 해결한다(You or we may elect to resolve any claim by individual arbitration)’는 간단한 조항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조항이 없었을 때는 고객들이 수수료나 서비스에 대한 불만으로 집단소송을 제기하면 복잡한 재판을 거쳐 엄청난 피해보상을 해줘야 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중재조항이 본격적으로 활용된 2009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연방법원에 제소된 1179건의 집단소송 중 80%에 대해 중재로 해결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뉴욕타임스(NYT)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162건 중 82.7%인 134건이 중재로 넘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재는 해당 지역의 상사중재원에서 이루어지는데 통상 경제단체인 상공회의소가 관장하기 때문에 기업에게 유리한 구조다. 그러니 소비자들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중재조항이 깨알 같은 글씨로 된 약정서의 맨 끝부분에 있어 읽어보기조차 어렵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소비자가 중재조항을 원치않더라도 이 조항이 인쇄된 약정서에 서명을 하지 않고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으니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13년 대법원에서 약정서에 중재조항이 있으면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려지면서 중재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중재를 통해 보상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법률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중재에 들어갈 경우 비싼 변호사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중재에서 지기라도 하면 상대편 변호사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니 웬만하면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5년간 2500달러 이하의 건에 대해 중재를 요청한 사례는 505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선전화 가입자가 1억2500만명인 버라이존의 경우 65건에 불과했고, 계약자가 1500만명인 타임워너는 5건, 그리고 계약자가 5700만명인 스프린트도 6건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중재조항이 효력을 발휘하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아마존, 넷플릭스, 트래블로시티, 이베이, 디렉티브, 렌트회사, 요양원 등은 물론이고 애슐리매디슨 같은 불륜사이트까지 이 조항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재조항이 고용계약에까지 적용되면서 근로자들이 성차별, 인종차별, 언어폭력 등과 같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여직원에 대한 차별대우로 1억7500만달러를 배상한 노바티스 제약사와 같은 사례는 앞으로 나타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16개 주의 검찰총장들이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에 공문을 보내 금융회사들이 집단소송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방안을 강구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소비자단체들은 중재조항이 소송을 할 권리를 제한하므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은 집단소송이 소비자를 보호하기보다는 변호사가 수입을 챙기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변호사가 품질불량을 이유로 TV 메이커에 집단소송을 제기해 2200만달러를 보상받았으나 소비자들에게는 25~35달러의 쿠폰만 나눠준 사례마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독점방지법이 있고 금융감독기관과 소비자보호기관이 감시감독을 하고 있어 중재조항의 부작용은 크지 않다며 맞서고 있다.

이에 따라 중재조항과 집단소송 문제를 놓고 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근로자간 줄다리기가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재는 상거래상의 분쟁을 복잡한 소송을 통하지 않고 제3자인 중재인이 판단하여 해결하는 제도로 1958년 국제연합의 국제상거래위원회(UNCITRAL) 주도로 도입돼 세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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