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멀리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임진왜란 때의 중국 관원을 떠올렸다. 명나라 호부 주사 애자신(艾自新)이다. 조선왕조실록은 1593년 2월 1일 기록에서 전한다. “애자신이 군량이 계속 조달되지 않는다고 김응남, 민여경, 황진에게 곤장을 쳤다”고.
명나라 주사는 어찌 봐도 하급 관원이다. 매질을 당한 이들은 조선의 고관들이다. 김응남은 정2품 관량관(管糧官)...
또한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 벌어진 ‘진주성’의 절경과 야간관광 특화도시인 진주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진주 중앙시장’의 ‘올빰야시장’, ‘비단길 청년몰’ 등 다채로운 진주의 명소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진주편에서는 광주편에 이어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담아 ESG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할 예정이다. 예컨대...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됐지만, 19세기에 흥선대원군 주도로 중건됐죠. 패션쇼 주 무대가 될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국가적인 대례를 거행하던 장소이자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를 알현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인데요. 경복궁에 입궐했을 때 근정문을 통해 들어가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자 대한민국에서 궁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대명사로 꼽히죠. 19세기...
임진왜란 이후 수로를 이용하는 일본인을 위해 여러 왜관이 설치되었으나 오늘날 칠곡군 왜관읍만 지명이 그대로 남았다. 한국전쟁 때 낙동강 최후의 방어전으로 가장 격렬한 전쟁이 있었던 호국의 고장으로 1959년부터 미군 보급부대가 주둔하고 있을 만큼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다. 또한 옛 낙동강 수운의 항구이자 대구와 구미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고대사에서 한국이 일본에 미친 영향을 축소하거나 임진왜란 관련 기술에서 조선 측 피해에 관한 기술을 뺀 교과서도 있었다.
한편 일본문교출판 교과서에는 일제의 한반도 강제 병합 관련 기술에서 “일본의 지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격렬한 저항 운동을 했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등 일부 개선된 대목도 있었다.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은 더욱...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난 중 처음 보는 생선을 먹었는데 별미였다. ‘묵’이라는 이름이 보잘것없어 은어(銀魚)로 고치라고 했다. 피난이 끝나고 다시 청해 먹었으나 예전과 맛이 다르자 “(은어를) 도로 묵이라고 해라”고 일렀다고 한다.
☆ 유머 / 시간 걸려 사귄 친구
두 친구가 달리기를 했다. 그런데 진 아이가 더 즐거워하는 것이 아닌가!
궁금해진 아이에게...
가장 먼저 연단에 오른 천하람 후보는 임진왜란 당시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을 궤멸로 이끌었던 원균이 1등 공신에 있었던 사례를 언급하며 “조선 시대에도 윤핵관이 있었다”며 “이순신이 아니라 윤핵관 원균에게 맡겼을 때 우리에게 과연 12척의 배라도 남아 있겠나”라고 소리쳤다.
천 후보는 “국민의힘을 윤핵관의 손에서 지켜내고, 총선에서 승리하는...
임진왜란 중 불에 탔다가 광해군 때 재건된 후 그 모습이 유지되고 있어 17세기 목조 건축 양식을 볼 수 있습니다.
덕수궁은 대한제국이 꿈꿨던 근대화의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석조전, 중명전과 같이 서양식 건물과 전통적인 궁궐 건물이 어울려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죠.
덕수궁에서는 나라의 주권을 지키고 재건하기 위해 노력한 대한제국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한산대첩 당시 이순신의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수루에서는 세계 4대 해전으로 손꼽히는 한산대첩이 펼쳐진 한산도 앞바다를 찍을 수 있는 사진 명소이다.
한산정은 세계에 유일무이한 바다를 가로지르는 활터로 이순신 장군은 바다 위에서 활 쏘는 감각을 익혔다고 한다.
1km 코스의 예상 소요 시간은 40분이다. 문의 전화는 055-649...
임진왜란 당시 그는 부하들을 통솔하는 지도력, 뛰어난 지략, 그리고 탁월한 전략과 능수능란한 전술로 일본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해 나라를 구한 성웅(聖雄)으로 추앙받고 있다. 서울 광화문 장군의 동상에 새긴 ‘난중일기(亂中日記)’의 어록. 그는 오늘 노량(露梁)해전에서 전사했다. 1545~1598.
☆ 고사성어 / 일인분사 가이대십(一人奮死 可以對十)
‘한 사람이...
삼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래읍성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가장 먼저 전투가 치러졌던 역사적 공간이다. 결사항전에도 불구하고 성은 함락되었지만 동래부사 송상현의 순국은 항전의 표상이 되었고, 살아남은 이들 역시 다시 의병으로 들고일어났다. 그러한 항전의지는 300여 년이 지난 일제강점기에도 지속되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1919년 3월...
임진왜란이었다. 그러나 각지에서 들고 일어난 의병들이 무능한 관군 대신 적군을 격파하였으며 진주목사 김시민과 이순신 장군의 승리로 불리했던 전국을 전환시키며 휴전에 들어선다. 그러나 다시 발생한 정유재란은 임진왜란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긴다. 1597년 발발한 남원성 전투. 정유재란의 최대 격전지였던 남원성에서 무려 5만6천여 명의 왜군과 싸우다...
그러면서 "임진왜란, 정유재란은 왜 일어났나. 이순신, 안중근, 윤동주는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쳤나"며 "우리 국민의힘은 정진석 의원과 같은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김웅 의원도 SNS에 "전형적인 가해자 논리. 고구려도 내분이 있었는데 그럼 당나라의 침략으로 망한 것이 아닌가요?"라며...
‘물령망동 정중여산’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태산처럼 진중하게 행동하라는 의미로,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처음으로 출전한 옥포해전 당시 지휘하던 군사들에게 남긴 말로 알려져 있다.
이 전 대표의 메시지는 친윤석열계 일각에서 제기하는 탈당설과 신당 창당설을 일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행보를 신중히 결정하며 당에서 활로를 찾겠다는 것이다.
가깝게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유정)가 왜군과 격전을 벌인 장소이기도 하다. 금성산은 높이 531m의 금학산, 또는 가마산으로도 불리는 산으로 한반도 최초의 화산이다. 백악기에 화산이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화산으로 화산 폭발의 흔적인 정상 평지는 천하제일의 명당으로, 이곳에 조상묘를 쓰면 당대의 만석꾼이 되지만 주변 지역은 3년간 가뭄이...
전남 진도군 고군면에서 열린 ‘왜덕산 위령제’에 참석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우리의 죄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이 더는 사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까지 계속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24일 한국 진도문화원과 일본 교토평화회 공동 주관으로 열린 위령제 참가한 하토야마 전 총리는 추모사에서 “일본은 한때 여러분들에게 큰 고난을 안겨줬다”며...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기습적인 공격으로 순식간에 한양의 도성을 잃고 선조는 평양으로 거처를 옮긴다. 일본군은 당황한다. 성주는 성이 함락되면 자결을 하는 게 보통의 일본 전투 방식이기 때문이다. ‘아니 왕이 도망을?’ 경복궁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임금에게 분노한 백성들의 손에 의해 불태워진다.
왜군은 조선을 정복하고 나아가 중국, 인도까지 손에...
판만 잘 깔아주면 난관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국민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이나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이 그렇다. 공정하고 투명한 제도, 신뢰가 바탕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개혁이 경제의 실질을 개선하는 판을 만드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은 많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넉넉지 않은 듯한데, 정치인들이 하는 일을 보면 너무 답답하다.
이순신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인 '한산'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거북선을 내세워 왜군을 무찌른 한산해전을 그려냈다.
지난 3일 개봉한 '비상선언'은 나흘 만에 누적 관객수 100만 명을 넘어섰다.
송강호·이병헌 주연의 '비상선은'은 생화학 테러로 무조건 착륙을 선포한 항공기를 둘러싸고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항공재난...
그해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개전 20여 일만인 5월 3일 수도 한양을 빼앗기며 바람 앞의 등불이었던 조선의 전쟁 초기 전세를 한순간에 뒤집는 승리였다. 실제, 한산에서 패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수륙병진정책을 포기했고, 조선 수군과의 교전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지장과 용장으로 이끈 승리 외에도 이순신의 백성 사랑은 여러 곳에서 엿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