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기록에 따르면 국내에 담배가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 시기와 인조 시절 등 조선 중기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을 통해 담배의 5가지 유익한 점과 10가지 해로운 점을 다루기도 했다. 성호사설에 담배는 안으로는 정신을 해치고 밖으로는 귀와 눈을 해치며 노화를 앞당긴다고 기록돼 있다. 5가지 유익한 점에는 소화에 도움을 주고...
멕시코가 원산지인 고추는 일본과 북방 유입설로 나뉘지만 임진왜란과 광해군 시기를 전후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한다.
☆ 유머 / 진동벨 번호
카페에 처음 간 청년이 주문하고 진동벨을 받았다. 진동벨에 적힌 숫자를 테이블 번호로 생각한 그는 번호를 따라 자리를 찾아갔지만 다른 이가 앉아있었다.
그에게 벨을 보여주며 한 말. “여긴 제...
충렬사는 동래구 안락동에 있으며 임진왜란 때 순절한 호국 선열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후 화상으로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11시경 선관위를 방문해 당선증을 받을 예정이다.
한편 박 후보에 패배한 김 후보는 이날 오후 10시경 자신의 선거 사무소에서 "결과에, 민심의 큰 파괴 앞에서 겸허하게 승복한다"며 "저와 민주당은 앞으로도 부산의...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3곳의 실록은 모두 불타고 전주사고에 보관된 실록만 남게 됐다. 이마저도 풍전등화였다. 전쟁에 정신이 없던 시기, 정읍의 선비인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은 사재를 들여 실록을 내장산 암자로 옮겨 지켜낼 수 있었다. 만약 분산 보존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세종대왕의 선견지명에 감탄하게...
과거에서 아홉 번이나 장원을 한 천재, 임진왜란을 내다보고 10만 양병설을 주창한 사람, 퇴계 이황과 함께 우리나라 성리학의 두 기둥을 이루는 명현(名賢), 대개 딱 그 정도다.
신문사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낸 저자는 이율곡의 삶을 그의 언론 활동을 중심으로 조명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저자는 이율곡을 '맹자'와 '주필(主筆)' 두 가지 키워드로 정의한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꿔 놓은 전쟁이었다. 일본은 도요토미 가문이 몰락하고 도쿠가와 가문이 새로운 막부(幕府, 일본의 무사 정권을 부르는 말)를 창설했으며, 명나라는 과도한 전쟁 비용으로 인한 재정난에 허덕이다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조선 역시 왕권이 약화되며 신하의 힘으로 왕이 교체(인조반정)되는 등 큰 변화를 경험했다. 그런데 이...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파병한 명나라 신종을 기리고자 1704년 숙종 30년에 충청도에 세운 사당이다. 조선말까지 역대 관찰사들은 이 만동묘에 제사를 지내왔고, 심지어 일제 식민지 시절까지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대보단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군대를 보내준 명나라 신종 만력제의 은덕을 기린다는 취지로 1705년 숙종 때 창덕궁 후원에 세운 제단이다....
17세기에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 극심한 혼란기를 거치며 한복의 크기가 점차 작아지고 신체 치수를 고려해 입기 시작했다. 유행하던 포류가 사라지고 도포, 중치막(간편한 외출복) 등이 새롭게 유행했다.
18세기~19세기에는 옆선에 트임이 있는 중치막과 소매가 없거나 활동하기 편한 옷들을 주로 착용했다. 20세기에는 개항으로 서양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 권율(權慄) 명언
“남자가 오직 의(義)와 기(氣)만을 생각할 뿐이지 어찌 공적과 명예를 따지겠느냐[男兒感義氣 功名誰復論].”
임진왜란 7년간 군대를 총지휘하며 큰 전공을 세운 조선 중기의 명장. 충남 금산군 이치(梨峙)전투, 경기 수원 독왕산성 전투, 행주대첩 등에서 모두 승리했다. 행주대첩 중 부하 장병들에게 그가 한 말. 관직에 욕심이 없어 과거...
이 문장은 임진왜란에 참전해 조선을 침략한 이시다 미쓰나리 집안의 문장으로 국내에서 쓰기엔 부적합한 내용이다. 이는 한 시청자의 제보로 인해 알려졌고 제작진 측은 즉시 시정에 나섰다.
제작진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점 죄송하다”라고 잘못을 인정함과 동시에 재방송 및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지하고 모자이크 작업에 돌입했다. 또한...
임진왜란으로 피란지 평양에서 세자에 책봉된 그는 분조(分朝)를 맡아 7개월 동안 강원·함경도 등지에서 의병 모집 등의 활동을 했다. 15년 재위한 그는 인조반정으로 폐위됐다. 인조반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책략과 명분으로 패륜적 혼군(昏君)으로 규정되었지만, 실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는 오늘 태어났다. 1575...
1592년 발생한 임진왜란 초반, 조선군은 일본군에 크게 밀렸다. 특히 조선의 정예 북방 기마병이 충주 탄금대에서 무너진 것은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신을 가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조선군이 일본군에 패퇴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많은 연구자는 신립(申砬) 장군이 방어에 유리한 산악지형인 조령(鳥嶺, 문경새재)을 버리고 탄금대 일대의...
30세가 넘어 관직에 나간 그는 일본의 거센 진격을 막아 임진왜란의 불리한 전세를 바꾸어, 나라를 잃을 처지에 놓인 조선을 구해 영웅이 되었다. 한산도대첩과 명량대첩 등 일본군과 23번 싸워 모두 승전했다. 오늘은 그의 탄신일. 1545~1598.
☆ 고사성어 / 공수신퇴(功遂身退)
공을 이루고 나면 이내 물러나야 한다는 말.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이상으로 갖게 되면...
영화 '명량'은 1597년 임진왜란 6년, 누명으로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 분)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돌아와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의 배를 몰아내는 명량대첩의 이야기를 그렸다.
OCN에서는 5일 오전 9시 '쿵푸허슬', 오후 1시 '팬', 오후 3시 '겨울왕국', 오후 5시 '럭키', 오후 7시 '오션스13', 오후 10시 '오션스8', 6일 0시 '신세계', 오전 2시 '본 레거시...
80세에 이르기까지 요동지역을 관리한 장군이었으며, 임진왜란 때 조선에 온 명나라 대장 이여송(李如松)의 아버지이다. 그는 청나라 건국의 토대를 쌓은 누르하치와 미묘한 관계에 있었고, 누르하치는 이 관계를 이용하여 힘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이들은 타타르족의 진격을 막기 위하여 산해관(山海關)에서 거용관(居庸關)에 이르는 장성 위에 3000여 개의 보루를...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것으로 알려진 담배는 상륙 당시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질환에 효능이 있는 약초로 여겨졌다. 구충(驅蟲)을 목적으로 어린아이들까지 흡연을 시키는 일도 다반사였다. 훈장과 학도가,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피울 정도로 별다른 금기가 없다 보니 흡연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빠르게 퍼졌다. 그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이에 펠리페 6세 국왕은 1593년 임진왜란 때 한국 땅을 밟아 한반도에 온 최초의 유럽인으로 알려진 마드리드 출신의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를 언급하며 양국의 유대 관계를 강조했다.
펠리페 6세 국왕은 "양국 상호 간 이해는 400년 전에 이미 뿌리를 내렸다"며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가 2018년 스페인을 찾은 한국 국민이...
임진왜란 이후 출범한 광해군은 선조의 적자였던 영창대군을 경계했고, 정통성에 걸림돌이 되자 결국 살해했다.
이에 서인들의 주도와 남인들의 동조로 정변이 일어났다. 마침내 서인들은 1623년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즉위시켰다. 이가 곧 인조이며 이 정변을 인조반정이라 부른다.
간신히 피신했다가 체포된 광해군은 처형될 위기였지만, 인조의...
임진왜란이 끝나고 당시 재상을 지냈던 유성룡이 쓴 징비록과 서애집에는 명군을 지원하는 문제, 즉 일종의 방위비 분담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조정에서 명나라와의 일을 도맡아서 처리했던 유성룡이 명군이 조선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명군에게 제공할 군량미를 어떻게 조달할지 고민하는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전쟁 중에 4만 명의 군대를 먹일 식량을 조달하기란 여간...
조선시대에도 당파싸움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임진왜란이라는 재앙을 당하였으며, 대한제국 시절에도 대원군과 민비가 맞서 싸우다가 한일병탄의 비극을 맞았고, 광복 후에도 새로운 점령군인 미국과 소련의 농간에 의해 남과 북, 좌와 우로 갈라져 싸우다가 결국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렀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동족상잔의 연장선상에서 아직도 서로 할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