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역에 가고 싶다] 한국전쟁 낙동강 최후 저지선 ‘왜관역’

입력 2023-04-07 06:57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왜관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일찍이 낙동강 중간지점으로 부산과 안동지역의 상인들이 물자를 거래하던 교역지였기 때문에 왜관역 개통 이후 안동지역의 목재를 운반하는 창구였다. 1960년 민간에 불하된 왜관역 철도 관사와 낙동강 가에서 왜관역까지 연결되는 협궤철도가 설치되어 1931년까지 남아있었다. 1986년 973㎡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 2층 평지붕의 현재 역사가 건립돼 1991년 확장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역명이 유래한 지명은, 고려 말기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조선 태종에 이르러 일본인 사신과 교역자들이 머물게 하고 물자를 교역하게 하던 왜관이 들어서면서 비롯됐다. 임진왜란 이후 수로를 이용하는 일본인을 위해 여러 왜관이 설치되었으나 오늘날 칠곡군 왜관읍만 지명이 그대로 남았다. 한국전쟁 때 낙동강 최후의 방어전으로 가장 격렬한 전쟁이 있었던 호국의 고장으로 1959년부터 미군 보급부대가 주둔하고 있을 만큼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다. 또한 옛 낙동강 수운의 항구이자 대구와 구미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칠곡군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경부선 약목역과 왜관역 사이,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철도교였던 칠곡 왜관철교<사진>는 과거 일본이 대륙침략을 위해 건설한 군용 철도 교량이다. 경부선 개통 당시에는 단선철교인 낙동강 대교로 불리다가 경부선 복선화로 새로운 교량이 가설되면서 도로교량으로 사용, 인도교가 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때 낙동강이 최후의 저지선으로 정해지면서 북한군이 낙동강을 건너는 것을 막기 위해 철교를 폭파시키면서 호국의 다리로 불리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철교의 임시복구가 시작되었으며 1952년 정식복구로 완전 개통되었다. 한국전쟁으로 폭파되었던 철교를 복구한 최초의 다리였을 만큼 그 의미와 역할이 매우 컸다. 이런 역사적 의의를 바탕으로 2008년 등록문화재 제406호로 지정되었다.

자료=국가철도공단 ‘한국의 철도역’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종합] "대중교통 요금 20% 환급"...K-패스 오늘부터 발급
  • "뉴진스 멤버는 쏘스뮤직 연습생 출신…민희진, 시작부터 하이브 도움받았다"
  • "불금 진짜였네"…직장인 금요일엔 9분 일찍 퇴근한다 [데이터클립]
  • 단독 금융위, 감사원 지적에 없어졌던 회계팀 부활 ‘시동’
  • "집 살 사람 없고, 팔 사람만 늘어…하반기 집값 낙폭 커질 것"
  • "한 달 구독료=커피 한 잔 가격이라더니"…구독플레이션에 고객만 '봉' 되나 [이슈크래커]
  • 단독 교육부,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은 ‘2000명’ 쐐기…대학에 공문
  • 이어지는 의료대란…의대 교수들 '주 1회 휴진' 돌입 [포토로그]
  • 오늘의 상승종목

  • 04.24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5,805,000
    • +0.22%
    • 이더리움
    • 4,718,000
    • +2.43%
    • 비트코인 캐시
    • 726,500
    • -0.89%
    • 리플
    • 783
    • -0.51%
    • 솔라나
    • 229,100
    • +2.6%
    • 에이다
    • 717
    • -3.11%
    • 이오스
    • 1,252
    • +3.81%
    • 트론
    • 164
    • +0.61%
    • 스텔라루멘
    • 172
    • +1.78%
    • 비트코인에스브이
    • 103,800
    • +0.68%
    • 체인링크
    • 22,310
    • +0.72%
    • 샌드박스
    • 721
    • +3.3%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