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첫 우승을 차지한 해태타이거즈는 1997년까지 8차례 우승기를 품에 안았다. 다만 KIA타이거즈로 바뀐 후에는 2009년 한 차례 우승에 그쳤다.
올시즌 두산베어스와 결승을 앞둔 삼성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은 1985년에 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2002년과 2005~2006년, 2011~2012년까지 총 6차례 우승했다. 두산베어스와의 결승전은 2001년과...
1995년 해태(KIA의 전신) 타이거즈에 입단한 이래 일본을 거쳐 19년 만에 빅리그 등판의 꿈을 이뤘기 때문이다. 투수로서는 치명적인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며 이룬 결실이다.
9월 1일부로 메이저리그는 확대 엔트리가 적용됐고 임창용은 5일 빅리그로 호출됐다. 현재까지 5경기에 등판해 4이닝을 소화하며 6.7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다. 외형상 좋은...
광주 진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의 전신)에 입단한 지 18년 만에 삼성 라이온즈와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즈 그리고 마이너리그를 모두 거친 끝에 밟은 메이저리그 무대다.
고비도 있었다. 2005년 팔꿈치 수술을 받으며 2006년 단 한 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했고 2007년에도 지지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한물갔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또한 구대성은 1993년 빙그레(현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은 뒤 2001년 오릭스 블루에이브를 거쳐 2005년 뉴욕 메츠에 입단했다. 구대성은 메이저리그 33경기에 출전해 23이닝, 평균자책점 3.91을 기록했다.
임창용은 1995년 해태 타이거즈에서 데뷔한 뒤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월로스에 입단했다. 이후 지난해 시카고컵스에 입단했다.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간판 4번 타자 겸 외야수 출신 이호성은 인생 2막의 최대 실패자로 기록되는 비운의 스포츠 스타다. 1990년대 초 골든 글러브 2회 수상에 빛나는 이호성은 은퇴 후 2004년 호성 웨딩문화원을 설립해 사업가로 변신했다. 연간 매출액 70억~80억원에 달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화상 경마장 사업에 투자, 110억원대 부도를 맞으며 큰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부터는 기아 타이거즈 감독을 맡아 과거 해태 타이거즈의 중흥을 노리고 있다.
‘농구대통령’ 허재는 2005년부터 프로농구 전주CC 이지스의 사령탑을 맡았고, 2009년에는 국가대표 감독을 맡기도 했다.
1980년대 국내 씨름계를 평정했던 이만기(50)는 인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고,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32)를 비롯한 김미정(41), 전기영(40), 안병근...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와 삼성, 올 시즌 한화까지 감독으로 총 23시즌을 보냈다.
1983년 해태에서 프로 감독으로 데뷔한 김응룡 감독은 부임 첫 해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또한 페넌트레이스 7회 우승, 10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다. 김 감독은 현재 2757경기에서1499승 1192패 66무 승률 0.557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1500승을...
왕년 해태 타이거즈의 도루왕 출신 이순철의 아들 이성곤(연세대4)과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휘문중3)다. 이성곤은 청소년 대표를 거쳐 연세대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고, 이정후는 날렵한 외모와 타고난 센스가 아버지 이종범을 빼닮았다. 특히 두 선수는 모두 우투좌타 내야수다.
라이벌 관계를 지나치게 의식하면 징크스가 생기기 마련이다. 한때 프로축구...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홈팀 삼성이 역전패를 당했다. 그러자 이날 오후 9시 45분께 흥분한 삼성팬 2000여명이 대구시민구장 밖에 세워 뒀던 해태 구단버스를 에워쌌고, 그중 누군가 돌을 던져 앞 유리창을 깼다. 곧이어 다른 팬이 버스에 불을 질렀다. 버스는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불에 타 버렸다. 방화 직후 소방차가 출동했으나...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경기가 경기 클리닝타임 도중 잠실구장 전체 정전으로 인해 중단됐다.
KIA가 5대 3으로 앞선 채 두산의 5회말 공격이 끝난 후 클리닝타임 도중 경기는 잠실구장 전체 정전으로 인해 일순간 암흑이 됐다. 잠실구장 측은 “원인 모를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인해...
1983년 OB 베어스(두산의 전신)에 입단하며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한대화 감독은 OB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1986년 해태 타이거즈(KIA의 전신)로 이적하면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했다. 해결사라는 애칭과 함께 1993년까지 해태에서 8년간 활약하며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6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1994년 LG로 이적해 1996년까지 활약한 한...
컵스를 비롯해 보스턴 레드삭스, 텍사스 레인저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등이 임창용의 영입을 준비했다. 하지만 임창용은 가장 적극적으로 영입 의사를 밝히며 재활에도 적극적인 도움을 주기로 한 부분에 매료돼 컵스를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부적인 계약 조건은 미국 현지에서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임창용이 내년 6월 이후에나...
1996년 해태 타이거즈(KIA의 전신)에 입단한 장성호는 지난 2010년부터 한화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바 있다. 17시즌간 활약하며 통산타율 0.297와 함께 216홈런과 1000타점 등을 기록중인 베테랑 왼손 타자다. 올시즌 통산 3000루타와 2000안타 그리고 1000타점 고지를 함께 밟았다.
한편 송창호는 야탑고와 제주 국제대를 거쳐 2013시즌 신인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NC는 최근 기존구단들로부터 8명의 특별 선수 지명을 마쳐 선수단을 보강한데 이어 4번타자감인 이호준까지 영입함으로써 1군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을 정도의 선수단을 구성하는데 성공했다. 이호준은 1996년 해태 타이거즈(현 KIA)에서 데뷔해 2000년 SK로 이적한 뒤 줄곧 SK에서 활약했다. SK 소속으로 세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1983년 해태 타이거즈(현 기아)의 감독을 맡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김응룡 감독은 해태 감독 시절 전무후무한 한국시리즈 우승 9회를 달성한 바 있으며 2001년 삼성으로 자리를 옮겨 2002년 삼성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면서 개인 통산 우승 10회를 달성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에는 대표팀 감독을 맡아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장성호는 1996년에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 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 연속 세자리수 안타를 기록하며 팀의 간판 타자로 활약해왔다. KIA에서 14년간 활약하며 통산 1607경기에서 1741안타, 통산 타율 3할6리를 기록했다.
이후 2010년 한화로 이적한 뒤 3년간 308경기에 출전해 259안타를 기록했다.
앞으로 한화에서 주전으로 3~4년만...
대타로 내가 나간다고 하니까 관중이 4000명 정도 나갔다"며 "승부욕이 발동하더라"라 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역전안타로 승리를 하자 해태 타이거즈 팬들이 '네가 동렬이 공을 쳐?'라고 했다. 그런데 경기 중 수비 나갔다가 족발뼈에 맞았다. 부메랑 소리가 나더라"라며 "4분간 기절했다"고 전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선수시절 당시 경쟁자 김봉연(前 해태 타이거즈)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100호 홈런을 먼저 달성한 감격적인 순간을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묘사해 눈길을 끌었다는 후문.
한편 '최초의 사나이' 이만수의 구수한 입담과 1호 기록에 얽힌 에피소드는 30일 밤 10시 KBS N Sports '한국프로야구 레전드 10人'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타이거즈에 들어오고 싶어서 야구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해태 유니폼을 입게 됐을 땐 정말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꿈꿔왔던대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은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 은퇴는 어디까지나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괜한 오해로 다른 사람들이 상처 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분들의 따뜻한 배려가 있었기에 이...
없다니 눈물난다” “이종범 은퇴라니, 만우절 거짓말이었음 좋겠다” “이대진에 이어 이종범까지...”라며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한편 이종범은 1993년 건국대를 졸업하고 1차 지명을 받아 해태에 전격 입단했다. 첫해 도루 2위(73개), 득점 1위(85개)에 이어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며 타이거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던 이종범은 지난 31일 오후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