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값싼 비지떡’ 조장하는 정부

입력 2014-07-3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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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석 부동산시장부장

얼마 전 대형 건설사 수장(首長)들이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숙였다. 사상 초유의 모습이다. 그만큼 건설업계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발표를 앞둔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 담합과 관련, “건설사들이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에 대해 선처를 호소했다.

과징금 원투 펀치를 맞은 건설사들이 실적악화까지 겹치면서 빈사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과징금만이 아니다. 최대 2년까지 모든 공공공사 입찰 참여 금지, 공사 발주기관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연이어 터질 쓰나미 부담으로 건설업계의 시름이 깊다.

나흘 뒤 공정위는 건설업계의 호소에도 28개 건설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355억원을 부과했다. 이 과징금 규모는 건설업계 담합 사건으로는 가장 큰 액수다. 또 해당 법인과 주요 임원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올해 들어서만 인천도시철도 2호선, 대구지하철 공사, 경인운하 사업 등에 이은 네 번째 제재다. 공정위는 4대강 이후 시종일관 얄짤없이 엄벌하고 있다. 담합의 죄질이 나쁘다는 판단에서다.

건설업계는 대표들의 선처 요청에도 ‘철퇴’가 가해지자 허탈을 넘어 그야말로 멘붕 상태다. 최근 2년간 건설사에 부과된 과징금 총액이 4500억원인 데다 이번 호남고속철도 사업에 이어 현재 담합조사가 진행 중인 현장들을 합칠 경우 과징금 규모는 1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건설사들의 담합은 분명히 잘못됐다. 또 반드시 그에 응당한 제재를 받아야 하는 것도 마땅하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번 사안에서 자유로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올시다”이다.

정부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다. 십 수년 동안 ‘최저가낙찰제’ 담합을 봐 오면서 이를 근본적으로 보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 그때마다 과징금과 같은 땜질식으로 일관해 온 것도 사실이다.

아니, 담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던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도입 50년이 넘은 최저가낙찰제에 대해 건설업계가 숱하게 폐지를 요구해 왔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확대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시행된 2001년에는 10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만 적용하다 2006년 300억원 이상으로 확대했다. 올해부터 100억원 이상 공사까지 더 폭을 늘린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건설업계의 반대에 부딪혀 보류된 상태다.

정부가 최저가낙찰제 대상 범위를 넓히려는 가장 큰 이유는 예산절감 때문이다. 경쟁을 통해 공사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의 예산절감 의지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최저가낙찰제 공사의 예정가격 대비 낙찰가율은 보통 70%를 넘기기 어렵다. 결국 기술력이나 시공능력보다는 가격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건설사들이 ‘덤핑수주’를 할 수밖에 없다. 공사비가 워낙 낮다 보니 부실시공의 우려와 함께 유지비용이 더 많이 드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최저가낙찰제가 적용됐던 영동고속도로의 경우 건설비용은 230억원에 그쳤지만 보수비용은 그보다 한참 많은 389억원이 쓰였다.

대한건설협회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최저가낙찰제로 집행된 공사에서 건설사가 투입한 ‘집행실행원가’는 평균 116.5%에 달했다. 건설사가 낙찰받은 금액보다 공사에 들어간 돈이 16.5% 더 많았다.

최저가낙찰제에 따른 부작용도 문제다.

건설산업연구원 조사 결과를 보면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공사현장의 평균 재해율은 0.2%를 밑돌았지만, 최저가낙찰제로 발주된 현장 재해율은 3.25%였다. 낮은 공사비에 맞추려다 보니 무리하게 공사기간을 단축하거나 비숙련자 혹은 저임금 외국인 근로자를 대거 현장에 투입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최저가낙찰제 폐해가 커지다 보니 대형 건설사들마저 ‘캐시카우’로 꼽혔던 공공공사를 기피하는 분위기다. 기술력에서 앞선 대형 건설사들이 공공공사를 기피할 경우 도로, 항만, 철도 등 SOC(사회간접자본)시설의 품질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당연히 안전사고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뒤늦게 최저가낙찰제 대안으로 종합심사낙찰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시행까진 최소 1년 반이나 남았다. 그 기간이라도 공공공사 입찰제도의 대대적 수술과 함께 담합을 유인할 가능성 있는 대형 국책사업의 동시 발주 등의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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