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신기술 분야 최대 6만명 공백
이공계 구인난에 국가 경쟁력 저하
"외국인재 정착 제도 및 환경 개선을"
반도체, 인공지능(AI), 미래차 등 한국의 미래 첨단 산업이 인재 부족이라는 거대한 벽에 막히고 있다. 우수 인재는 의대를 택하고, 숙련된 기술 인력은 국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구인난은 심화되는데, 인재 풀은 점점 고갈되는 상황이다. ‘두뇌 유출’이 아닌 ‘두뇌 절벽’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산업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27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초격차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글로벌 기술 협력 촉진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과학기술 연구인력의 예상 부족 인원은 2024~2028년 약 4만7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불과 5년 전(2019~2023년) 800명 수준에서 무려 60배 급증한 수치다.
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나노기술 등 4대 신기술 분야에서는 2027년까지 약 6만 명의 전문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적 부족은 물론 고급 인재의 확보는 더욱 어렵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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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30년까지 필요한 인력은 약 30만 명. 하지만 현재 양성 속도로는 7만7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된다.
미래차 분야에선 소프트웨어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의 ‘미래형 자동차 소프트웨어 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래차 산업 내 소프트웨어 인력 부족 규모는 7000명에 달했다. 전체 인력 부족률이 6.8%인 데 비해 소프트웨어 인력 부족률은 21.1%로 세 배 이상 높다. 특히 고급 개발자나 융합형 인재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문제는 단순한 공급 부족을 넘어 우수 인재가 한국을 떠나는 구조적 흐름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두뇌유출지수에서 한국은 2021년 24위에서 2023년 36위로 추락했다. 잠시 반등했지만 여전히 30위권에 머물며 뚜렷한 회복 기미는 없다. 이는 고급 인력이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로 이탈하는 추세가 뚜렷해졌음을 의미한다.
이공계 인재 부족은 기술 개발 지연과 품질 저하, 생산비 증가로 이어지며, 결국 글로벌 경쟁력 저하로 직결된다. 인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미래 성장 동력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국내 인재 양성과 해외 우수 인재 유치를 동시에 추진해야 할 전환점이라고 말한다. 특히 한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외국 인재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비자 제도와 고용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원철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산학협력실장은 “이제는 ‘두뇌 유입’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며 “유학생 고용 장벽을 낮추고 외국 인재 채용 기업에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과감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공계 기피 현상도 심각한 문제다. 고소득이 보장되는 의대 쏠림은 최상위권 인재가 기술 산업 대신 의료계로 향하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이공계의 처우 개선과 커리어 안정성 보장, 경력 후반기까지 연구·산업 현장에 남을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권의 관심과 실행력도 요구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선 후보들이 AI 투자 공약은 쏟아내지만, 정작 이를 구현할 인재 확보 방안은 빠져 있다”며 “기술보다 먼저 확보해야 할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