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롯데, 이 배신감과 자괴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입력 2015-08-0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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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롯데와 얽힌 이야기를 하나 하자. 555미터의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한 제2 롯데월드, 바로 이 초고층 건축물의 허가와 관련된 이야기다.

롯데가 이 건물을 짓겠다고 작정한 것은 1994년, 하지만 한동안 정부는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 문제는 공군이었다. 인근 비행장의 비행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고 있었다. 그냥 반대가 아니었다. 완강한 반대였다.

참여정부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허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활주로 방향을 조금 틀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전문적 의견을 높이 산 것이다. 당연히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다.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 차원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또다시 벽에 부딪쳤다. 공군 지도부는 차라리 자신들의 목을 치고 가라고 했다. 실제로 그 눈빛에서 비행안전에 대한 걱정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이들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고, 그래서 그 방침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그러나 몇 년 후, 새 정권 아래에서 공군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제2 롯데월드 건설을 받아들였다. 활주로 방향을 조금 바꾼다는 바로 그 조건이었다.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모른다. 이런저런 소문이 있었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 귀 기울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신경을 끄고 싶었다.

그러나 이 건물의 건설현장을 지날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우리 공군에 느끼는 일종의 배신감과 허탈감, 그리고 다음 정권이 그렇게 쉽게 해내는 일을 해내지 못한 데 대한 자괴감이다.

그런데 롯데의 집안 싸움, 이건 또 뭐냐? 이번에는 롯데가 주는 배신감과 허탈감이다. 우리 기업이 아니라 일본 기업이었어? 가족끼리 일본 이름을 부르고 일본말로 대화를 해? 그리고 그 뒤에 바로 자괴감이 따라온다. 이런 기업을 위해 공군을 설득하느라 그렇게 고민을 했어?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롯데를 우리 기업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 그 기업이 운영하는 야구단을 열렬히 응원했던 사람들의 심정 말이다. 배신감과 허탈감,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자괴감, 바로 그런 것 아닐까?

그러나 이들이 일본 사람 같다는 사실에 대해 그렇게 괘씸해할 필요가 있을까? 어찌 보면 이 부분은 이들의 아픔일 수 있다. 무슨 사연에서건 고국을 떠나 살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그 나라 사람과 결혼도 하고, 그 나라 이름도 쓰고, 말도 역사도 그 나라 것을 우선 배워야 했을 수 있다.

또 일본 기업이면 어떠냐. 어차피 글로벌 사회이고, 외국 기업을 유치하느라 이것저것 다 내어 주는 판이다. 롯데라 하여 특별히 기분 나빠 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따로 있다. 0.1%도 안 되는 지분을 가진 총수가 종업원 10만명에 매출 80조원이 넘는 그룹을 황제처럼 경영하는 순환출자 구도다. 게다가 이런 잘못된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직원 몇 명의 포장재 회사가 있다. 그리고 그 정확한 지분구조는 가족들만 알고 있단다.

흔히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장사 잘하고, 그래서 투자자와 주주의 신뢰만 얻으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잘못된 지배구조는 기업을 위태롭게 하고, 그것은 다시 국가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준다. 종업원들과 협력회사의 생계를 위협할 수도 있고 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지금의 롯데가 바로 그 꼴이다. 같이 고민해야 할 공적 요소가 크다는 말이다.

롯데가 이런 구조를 갖게 된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낮은 금리의 일본 돈을 주로 차입해 쓰는 데다 롯데쇼핑을 비롯해 현금을 확보하기 좋은 사업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의 감시·감독체계와 통제체계를 비켜가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배신감에 허탈감, 그리고 자괴감만 느끼고 말 일은 아니다. 누가 이기는지만 지켜볼 일도 아니다. 최악의 지배구조, 그리고 그 속에서 총수의 지시서가 마치 황제의 칙서처럼 통용되는 말도 안 되는 경영문화, 이런 것들이 어떻게 고쳐질 것인가를 지켜봐야 한다. 또 그러한 변화를 촉진하는 제도적, 경제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왜 그래야 하냐고? 그 돈이 어디서 왔건, 또 누가 경영권을 쥐건 롯데는 우리 국민이 근무하고 우리의 협력회사들이 먹고살아야 하는 우리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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