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시 DJP연합을 통해 고 박 전 회장이 강해지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리를 물러나게 된다. 그는 1994년부터 4년여에 걸쳐 회사기밀비 4억2415만원을 유용한 혐의(업무상 횡령)로 1999년 2월 불구속 기소됐다.
5대인 유상부 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5년간 회장직을 수행했다. 연임에 성공했지만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 전격 사퇴했다. 유 전 회장은 최규선...
그는 김대중·김종필·박태준의 DJP연합을 거론하며 “당시 DJP 연합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됐지만 내각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며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서도 그때처럼 침묵했다면 얼마나 충청도를 우습게 생각하겠는가”라고 했다. 결국 이 총리는 도지사 사퇴로 충청권 맹주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지사 사퇴 이전까지 이 총리는 ‘최연소’...
이후 'DJP 연합'으로 탄생한 김대중 정부에서 각료제청권을 가진 김종필 전 총리의 추천으로 '쌍끌이 파동'으로 위기를 맞았던 해양수산부를 추스르는 임무를 안은 채 4대 해양부 장관으로 투입됐다.
김종필 전 총리가 한일어업협정 실패로 피해가 컸던 부산을 달래려고 'PK 출신'을 적임자로 추천했던 것으로, 고인은 해양부 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어민 보상을...
박 대변인은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이름은 DJ의 새정치국민회의와 JP의 자유민주연합을 합성어로 만든 것처럼 DJP연대를 연상케 한다”면서 “3김시대의 낡은 유산이자 선거용 연대의 원조인 DJP연대를 이름까지 베낀 ‘짝퉁연대’라는 지적이 나올만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쨌든 간에 두 세력은 DJP연대를 통해 집권했다는, 그 달콤한 향수를 잊지 못해 낡은...
‘3김 시대’에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이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구성되기도 했으나 개헌에는 실패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대국민 담화를 통해 권력 구조만을 바꾸기 위한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지만 좌절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중반에 권력구조·선거제도·행정구역 등의 개헌론을 제기했으나 유력 차기 주자였던 박근혜 전 대표를...
김 고문은 한 위원장과 함께 1997년 대선 국면에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협상의 주역이다. 한 위원장의 새누리당 영입도 김 고문의 주도로 이뤄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 고문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원로자문그룹인 ‘7인회’의 좌장급 인사로, 박 당선인이 조언을 가장 많이 구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번 인수위 인선이나 차기 정부...
또 4·19 혁명국가유공자단 소속 회원들과 김 전 대통령의 과거 청년조직이었던 연청동우회(민주연합청년동지회) 회원들, 김 전 대통령 비서진 5인방의 박 후보 지지선언도 이뤄냈다.
박 당선인은 한 위원장에 대해 “동서화합과 산업화, 민주화 세력의 화합을 추진할 수 있는 분으로 우리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실 적임자”라고...
‘타이밍 정치’가 결합한 꼼수정치, 반칙 정치”라며 “단일화 놀음이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지 못한 후보들의 말장난”이라고 꼬집었다.
이정현 공보단장도 “DJP 연합 때엔 양 진영이 정책을 포함해 1년 넘게 조율과정을 거쳤다”며 “두 사람의 회동과 논의과정에서 빠진 것이 국민, 정책, 투명성 세 가지”라고 야권 단일화를 평가절하했다
이어 “과거에 DJP연합이 지역연합이었고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의 단일화는 서로 정체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했던 인물 간의 연합이었다”면서 “저와 안 후보 및 지지세력 간의 연합, 세력 통합, 단일화는 서로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연합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일화 방안에 대해선 “상대가 있는 일인 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단일화 방안을...
‘공동 정부론’구상이 지난 1997년 ‘김대중-김종필의 DJP 연합’ 등과 유사해 ‘권력 나눠먹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데 대해선 “ DJP 연합은 집권을 위해 정체성이 전혀 다른 세력과 한 고육지책”이라며 차별화를 꾀했다.
그는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번 대선은 10년 민주정부의 맥을 잇는 중요한 선거로 그동안 광주가 선택하고 지지한 인물이 모두 대통령이...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해 재계를 대변해야 할 경제단체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재계는 사실상 무장해제를 당한 것과 다름없었다. 일부에서는 개혁의 대상으로 낙인찍혀 정치권이 휘두르는 칼날에 하염없이 난도질을 당해야 하는 도마 위의 생선 처지와 같다는 푸념까지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총선의 판세가 혼전양상으로 뒤바뀌자 재계는 한 숨을 돌리면서도...
야권은 과거 DJP연합보다 진일보한 성격의 연대를 이룰 것이다.
- 지역별 판세는.
▲ 수도권은 한나라당의 전멸이다. 서울 48석중 42~43석 정도는 야권으로 넘어간다고 보면 된다. 텃밭인 강남 3구도 여론조사에서 지는 걸로 나온다. 인천·경기 마찬가지로, 경기도 접경지역과 농촌 지역, 분당 정도를 빼면 위험하다.
PK(부산·울산·경남)에서는 문·성·길이 힘을...
1997년 9월 김대중 당시 새정치 국민회의 총재와의 이른바 ‘도쿄 회담’을 계기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에 합류한 뒤 야당 후보 단일화 협상이 타결되자 같은해 11월 자민련 총재직에 취임했다.
자민련이 야당에서 여당으로 입지가 강화되기는 했지만, 자민련의 목표이자 ‘DJT (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의 연결고리였던 내각제 개헌이 유보되는...
일본으로 건너가 1997년 5월 포항 보선 출마를 위해 귀국할 때까지 4년여의 ‘망명생활’을 해야 했고, 같은 해 7월 포항북구 보선에서 당선되면서 정계에복귀했다.
그는 1997년 9월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와의 이른바 ‘도쿄 회담’을 계기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에 합류한 뒤 야당 후보 단일화 협상이 타결되자 같은해 11월 자민련 총재직에 취임했다.
‘DJP 연합’, ‘행정수도 공약’ 등으로 충청 표심을 잡았을 때만이 민주당의 집권이 가능했다는 점을 돌이켜볼 때 대선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충청은 전략적 요충지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호남에 양보를 촉구하고 있지만 충청 유치를 강하게 밀어붙일 경우 불어 닥칠 호남의 민심 이반도 두려운 게 사실이다. 지역기반이 흔들린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