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전 전 대통령은 2차 오일쇼크를 극복하고 물가 안정에 성공했으며, 노 전 대통령은 1차 신도시 개발로 대표되는 주택 100만 호 공급 정책을 통해 폭등하던 집값을 잡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 전격 실행,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탈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명박 전...
이어 "김대중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에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을 요청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받아들여서 사면한 전례가 있다"며 "사면은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 국민 대통합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언론인 간담회에 앞서서 최 후보는 고 박 전 대통령 생가와 국립 선열공원 방문을 통해 보수 표심 다지기에...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각각 한 차례씩 모두 세 차례 원내총무(원내대표)를 맡았다.
1997년 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른바 '9룡'(龍)의 한 명으로 이회창 이인제 후보 등과 맞붙었으나 결국 이회창 대세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대선 후 탈당해 김종필 전 총리 중심의 자민련 총재를 지냈다.
이른바 'DJP연합'으로 출범한 김대중...
앞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은 12·12 군사쿠데타,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등과 관련해 동시 복역했다.
두 전직 대통령은 1995년 11월 구속돼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국민대통합을 이유로 사면할 때까지 약 2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동시에 복역 생활을 하게 된 박...
주요 사례로는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이 꼽힌다. 김영삼 정부는 지난 1997년 12월 두 전직 대통이 복역한 지 2년 만에 특별사면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한보게이트'와 관련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과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동국대 석좌교수, 권노갑 전 의원 등이 특별사면된 바 있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초선 의원인 김남국, 김용민 의원도 사면론에 반대했다. 김남국 의원은 “과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에서 보듯이 반성 없는 사면,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는 사면은 통합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됐다”고 비판했다. 김용민 의원은 “친일과 독재의 세력이 잠시 힘을 잃었다고 쉽게 용서하면 힘을 길러 다시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남국 의원은 “과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에서 보듯이 반성 없는 사면,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는 사면은 통합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됐다”고 했다. 김용민 의원은 “친일과 독재의 세력이 잠시 힘을 잃었다고 쉽게 용서하면 힘을 길러 다시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이라고 적었다.
더불어민주당 여러 의원이 반대 의견을 나타내자 이...
충북 5·18민중항쟁기념사업위원회는 국민 휴양지에 군사 반란자의 동상을 두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 철거를 요구했다. 이에 충북도는 동상을 존치하는 대신 두 사람이 법의 처벌을 받았다는 내용을 담은 안내판을 설치했고 5·18 관련 단체들의 반발을 샀다.
향후 교정 당국의 수형자 분류 작업을 거쳐 교도소로 이감될 예정이지만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의 전례를 따라 이감 없이 동부구치소에서 형을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을 동부구치소에 수감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있어 경호 부담 등을 이유로 두 전직 대통령을 한곳에 둘 수 없는 사정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이...
여기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5·18, 12·12 내란죄 등으로 구속되는 악재가 더해졌다. 그 출구가 1995년 신한국당이었다. 이회창의 신한국당은 1997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통합민주당과 합당하면서 간판을 한나라당으로 바꿨다. 한나라당은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약 15년간 유지됐다. 민주화 이후 ‘최장수 당명’인 한나라당을 2012년 새누리당으로 교체한 것은 박근혜...
역대 대통령 자택 중에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집이 10% 넘게 오르며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본채(419.5㎡)는 올해 30억3700만 원으로 10.4% 상승했다. 별채(257.5㎡)는 11억4500만 원으로 11.2% 상승할 예정이다.
이웃사촌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집(349.0㎡)은 14억3000만 원에서 15억5000만 원으로 8.4% 올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논현동 자택(1299.1...
육군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흔적 지우기에 나선다.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군인들의 '홍보용 사진'을 철거하면서다.
13일 육군에 따르면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해 내란형 선고를 받은 장성 등의 홍보 및 예우 사진을 각 부대에서 철거했다.
국방부는 올해 4월 부대관리훈령의 '역대 지휘관과 부서장 사진' 조항을 개정했다. 개정된 훈령은 △형법 내란죄...
전두환, 노태우 등이 주도한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앞세워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으로 강제 연행했다. 이후 신군부 세력은 국방장관 노재현을 체포해 대통령을 설득하게 했고, 최규하 대통령도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하게 된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무력으로 제5공화국의...
평화의 땜 사업 관련해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추진했고, 당시 정권의 압박을 견뎌냈다.
1994년 국무총리 시절엔 ‘강한 총리상’을 확립하려 했으나 외압에 부딪혀 실패하자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한다”며 임명된 지 4개월 만에 사표를 던졌다.
이 전 총재의 이러한 행동들은 ‘대쪽’이라는 별명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됐고, 국민적 인기를 끌어...
앞서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이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소환했으나, 이 전 대통령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증언이 무산된 바 있다.
한편, 전직 대통령이 다른 사람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고(故) 최규하 전 대통령이 1996년 11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 첫 사례다.
아울러 조진태 상임이사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5·18 당시 저지른 일에 대한 다양한 기록물 혹은 연관된 자료가 있을 것"이라며 "이런 역사적 사건과 연관된 부분에서는 한점도 숨김없이 노태우 전 대통령 본인의 행적은 물론, 같이 주도해서 만행을 저지른 전두환 전 대통령 일당에 대한 그런 다양한 행적에 대해서도 국민에게 공개해서 5·18...
이로써 재헌 씨는 5·18 피고인으로 처벌받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직계가족 중 처음으로 사죄를 한 셈이 됐다.
재헌 씨와 동행한 한 인사에 따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이 평소 5·18민주묘지에 방문해 사죄할 것을 여러차례 얘기했으나 병세의 악화로 아들이 대신 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1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발간한 회고록에는...
5·18의 가해자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직계가족 중 광주를 찾아 희생자들에게 사죄한 사람은 노 씨가 처음이다.
노 씨는 관리소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묘지 곳곳을 둘러봤다. 윤상원·박관현 열사의 묘지와 당시 11세의 나이로 희생된 고 전재수 유공자 묘지를 차례로 찾아 헌화, 분향했다. 노 씨는 행방불명자 묘역과 추모관, 유영봉안소, 인근...
쉽지 않았을 그의 결정을 두고 전두환 전 대통령 가족들과 비교하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26일 국립 5.18 민주묘지 관리소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이 3일 전 묘지를 방문했다"라고 밝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씨는 미국변호사로 지난 1991년 국회의장실 국제담당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노재헌 씨의 묘지 방문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두환 전...
일제가 남기고 간 ‘식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여 고질(痼疾)이 되었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사정권의 독재와 거짓을 털어내지 못하여 적폐로 남게 된 것도 많다.
최근 자행되고 있는 일본의 경제보복은 1965년 6월 22일 박정희 정권이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해 한·일 기본조약을 맺으면서 분명히 해결했어야 할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