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평균수명 5년인 보수당명은 죄가 없다

입력 2020-09-08 17:41 수정 2020-09-0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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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창 오프라인뉴스룸 에디터

제1야당이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정했다. 2월 미래통합당이라는 간판을 단 지 6개월 만이다. 2017년 박근혜 탄핵 후 벌써 세 번째이고 민주화가 뿌리내린 1990년 이후로는 6번째다. 평균 수명은 5년이다.

국민의힘은 보수를 대표하는 당이다. 박정희 정권의 공화당이 그 뿌리다. 공화당의 바통을 이은 민주정의당과 김영삼(YS)의 통일민주당, 김종필(JP)의 신민주공화당의 3당합당으로 민주자유당(민자당)이 출범한 것은 1990년이다. 그 후 30년간 위기 때마다 과거 청산을 명분으로 간판을 바꿨다. 당명 변천사는 보수 정치의 흥망성쇠 역사다.

민자당은 1992년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3당의 화합적 결합에 실패했다. 결국 계파갈등으로 한 축인 JP세력(자유민주연합)이 1995년 떨어져나갔다. 여기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5·18, 12·12 내란죄 등으로 구속되는 악재가 더해졌다. 그 출구가 1995년 신한국당이었다. 이회창의 신한국당은 1997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통합민주당과 합당하면서 간판을 한나라당으로 바꿨다. 한나라당은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약 15년간 유지됐다. 민주화 이후 ‘최장수 당명’인 한나라당을 2012년 새누리당으로 교체한 것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새누리당은 5년 뒤 탄핵과 함께 사라졌다. 탄핵풍은 보수당의 궤멸로 이어졌다. 새누리당이 3년 새 자유한국당과 미래통합당을 거쳐 국민의힘으로 바뀌는 과정이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은 당 상황을 대변한다.

당명 수난사는 비단 보수당만의 얘기는 아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도 30년간 10번 간판을 바꿨다.

민주주의 역사가 긴 서구의 100년 정당에 비하면 초라하다. 1828년 창당한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1854년)은 지금도 그대로다. 민주주의 역사가 긴 영국도 한 차례 당명 교체를 거쳐 1차 세계대전 후 정립된 노동당과 보수당 구도가 유지되고 있다. 일본 자유민주당 간판도 70년째다. 유독 잦은 당명 교체는 우리 정당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준다. 철학의 빈곤에 애매한 정체성, 여기에 포퓰리즘이 더해진 결과다. 우리 정당은 잡탕당에 가깝다. 추구하는 가치가 분명치 않아 정체성이 모호하다. 자연 정책은 좌우로 뒤죽박죽이다. 표논리에 휘둘리면서 포퓰리즘이 판을 친다. 공유하는 가치가 없어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당에 애정이 있을 리 없다. 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간판을 새로 다는 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나마 진보세력은 적어도 정체성 혼란은 극복했다. 정의당은 진보이념의 유일한 제도권 가치정당이다. 민주당은 진보의 색채를 강화한 개혁정당이다. 진보정당은 아니지만 진보의 평등 가치를 일관되게 추구하면서 진보의 정체성이 뚜렷해진 건 분명하다. 문제는 보수당이다. 국민의힘의 전신은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솔직히 정체성은 있는지 의문이다. 수십 년을 ‘박정희 향수’와 ‘영남 대 호남’이라는 지역구도, 반공이데올로기에 안주했다. 그것만으로도 선거 승리에 충분했다. 보수의 가치인 자유는 거추장스러웠을 터다. 보수를 자임하면서 진보 화두인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당의 가치조차 공유하지 못했다. 어설픈 흉내를 냈을 뿐 진정한 보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시대 흐름을 무시한 채 과거 향수에 매달렸다. 꼴통 보수 이미지는 그렇게 굳어졌다. 불과 얼마 전 얘기다. 빈곤한 철학에 무능, 지도력 부재, 불통이 결합해 만든 최악의 결과가 박근혜 탄핵이다. 국민의 엄중한 경고에도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과도 없었다. 대선과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참패는 필연적이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야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당명 교체는 그 첫 시도다. 새 간판은 국민의 관심을 끌겠지만 지지는 다른 얘기다. 명확한 정체성에 여당과 정책 경쟁을 벌일 수 있는 내공, 밀어줄 만한 인물은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국민의힘은 한국형 기본소득과 경제민주화를 핵심 정강정책으로 제시했다. 모두 진보 이슈다. 국민의힘이 보수당을 고집한다면 정체성 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작품에 구성원들이 동의하는지 분명치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공감대가 있다면 중도노선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극우세력과의 과감한 단절이 먼저다. 정체성은 정책과 직결된다. 극우와 극좌를 넘나드는 색깔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반대당 이미지 탈피 노력도 시급하다. 경제뿐 아니라 남북관계, 외교 정책을 놓고 여당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북한과의 대결정치 일변도에서 탈피해 합리적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참신한 외부인사 영입과 함께 당내 신진세력을 키우는 것도 당면 과제다. 중도노선의 대안정당으로 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선거와 후년 대선 성패는 여기에 달렸다.lee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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