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거주자 개인정보 파악하고 접근"
금융당국, 대응 강화…소비자 경보 상향
보험대리점 해킹, 고령층 금융 피해 확산 우려
#"○○년생 ○○○ 씨 맞으시죠? 카드 배송차 연락드렸습니다."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A(52) 씨는 최근 카드 배송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다. 그는 실제로 유효기간 만료를 앞둔 카드가 있어 재발급을 신청한 상태였기 때문에 의심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상대방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가짜 고객센터 번호를 안내했다. 미심쩍었던 A 씨는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봤던 신종 보이스피싱 사례가 떠올렸다. 우선 안내받은 전화번호 대신 카드사 대표번호로 연락했다. 카드사로부터 "아직 카드가 배송되지 않았다"는 답변을 듣고 나서야 사기를 피할 수 있었다.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고령층을 겨냥한 금융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이 늘면서 피해 규모가 대형화하고 있다. 피해자가 고소득 전문직도 적지 않아 지식수준과 관계없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범죄라는 점이 뚜렷해지고 있다.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보이스피싱 피해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별 피해액은 △9월 249억 원 △10월 453억 원 △11월 614억 원 △12월 610억 원이다. 고액 피해자의 약 80%가 여성이며 이 중 60대가 과반수였다. 서울 지역에서는 강남 3구 피해액이 서울 전체 피해액의 약 30%를 차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기범들이 강남 지역 고령층의 개인정보를 이미 상당 부분 파악하고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강남구 피해자들은 금융자산이 많아 대출까지 끌어내는 방식으로 고액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2억 원 이상 피해 사례가 적지 않고 피해액이 10억 원을 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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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범들은 검찰·금감원 사칭 시나리오를 통해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자산 보호를 명목으로 스스로 자금을 이체하도록 유도하는 방식도 사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금융사가 이상거래를 탐지해 본인 확인을 했지만 피해자가 '아들의 사업 투자 목적'이라며 거래를 주장해 21억 원의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
최근 연이어 터진 해킹 사고는 고령층의 금융범죄 피해 우려를 한층 키운다. SK텔레콤의 유심(USIM) 정보 서버 등 핵심 인프라 해킹 사건은 개인정보 도용으로 인한 각종 위험을 인지하거나 이에 대응하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고령층의 불안감을 더할 수 있다. 보험대리점(GA) 전산 솔루션을 제공하는 정보기술(IT) 업체 지넥슨의 영업지원시스템 관리자 계정이 해킹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추가 피해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지넥슨의 주 고객층이 중장년인 만큼 고령층의 2차 피해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보이스피싱 수법이 교묘해지고 피해자가 금융사의 경고조차 무시하는 사례가 늘면서 금융당국도 대응력을 강화하고 있다. 금감원은 소비자 경보를 상향하고 본인이 카드를 신청하지 않았을 경우 배송 직원이 안내한 번호가 아닌 카드사 홈페이지, 애플리케이션(앱), 콜센터 등을 통해 경위를 확인할 것을 당부했다.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안내한 번호로 전화를 걸 경우 가짜 상담원이 원격제어 앱 설치를 유도해 개인정보 탈취로 이어질 수 있다. 금감원은 비대면 계좌개설 사전차단 시스템 구축,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고도화, 통신사ㆍ금융사 간 정보공유 체계 강화 등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