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보험사의 민낯

입력 2017-03-08 10:54 수정 2017-03-0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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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기업금융부장

삼성그룹이 최순실 사태로 근 60년 만에 미래전략실 해체를 공식 발표한 지난달 28일, 전날 오전에 열린 미전실 마지막 회의의 주제는 계열사인 삼성생명의 자살보험금 지급 건이었다.

미전실 해체라는 최대 변혁 속에서 왜 삼성그룹은 수많은 안건 중에 자살보험금 건을 선택했을까.

자살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대형 생명보험사들의 행태는 정말 가관이었다.

일단 자살보험금, 다시 말해 자살 시 지급해야 할 재해사망 보험금을 주지 못하겠다고 버틴 보험사는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소위 생보업계 ‘빅3’이다. 법원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이들은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화가 난 금융당국은 정예 검사역을 투입해 군기 잡기에 나섰다. 결국, 이들 생보사는 중징계를 통보받았다. 기관은 1 ~ 3개월의 일부 영업정지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고, 최고경영자(ceo)는 최대 직무정지의 위기에 처했다.

한편, ‘빅3’가 법원의 지급 판결이 내려진 작년 5월 비밀리에 회동한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관련자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이들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기로 담합했다. 혼자는 힘드니 힘을 모아 금융당국에 대항하기로 한 셈이다.

그런데 이 우스꽝스러운 동맹은 막판 교보생명에 의해 깨졌다. 교보생명은 제재심이 열리기 불과 4시간을 앞두고 자살보험금 전건, 금액으로는 ‘반액’ 정도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다른 생보사 사장과는 입장이 달랐다. 자격정지가 확정되면 경영 퇴진은 물론, 교보생명의 최대주주로서의 입지까지 흔들린다. 전문 경영인과 오너 경영인의 차이는 분명한 법이다. 결국, 교보생명은 나 홀로 금융당국과 타협했고, 제재심에서 신 회장에 대한 징계는 ‘주의적 경고’로 내려갔다. 일신상에 문제가 없는 경징계이다.

교보생명의 배신(?)에 난리가 난 것은 삼성생명이다. 삼성생명이 결정을 못하자 결국 삼성그룹이 개입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제재 후 가입자들의 집단 소송 가능성이었다. 자살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삼성생명의 모럴해저드가 만천하에 드러날 경우 가입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소송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궁지에 몰린 삼성그룹에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삼성생명은 자살보험금을 ‘전액 지급’하기로 발표했다. 포커로 치면 교보생명의 ‘반액 지급’을 받고 ‘반액 지급’을 더해 ‘전액 지급’으로 올린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시 난감해진 것은 교보생명이다. 교보생명이 최종 징계가 확정되기 전까지 ‘반액’ 지급을 고수한다면 나 홀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또한, 14개 생보사 중 유일하게 금융당국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보험사로 남게 된다.

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이 이야기를 공개하는 것은 고객들도 보험사들의 민낯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렇게 거부하던 자살보험금 지급을 결정한 것은 순전히 오너와 그룹의 입장 때문이었다.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보험금을 지급한 것이 아니라, 자기네 최고경영자의 중징계를 피하기 위해 한 결정이었다. 심지어 뒤에서 담합까지 했고, 소비자와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렸다.

보험업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규제가 강할 수밖에 없고, 또 강해야 한다. 징계가 확정되기 전 제재 수위를 낮추는 행위에 대한 제도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교보생명은 중징계를 사전 통보받고 1차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리기 직전 ‘반액 지급’의 꼼수로 제재를 낮췄다. 이런 변칙이 통하면 애초 제재의 진정성이 훼손된다. 감형을 위한 금융회사의 조치를 무조건 받아줘서는 안 된다. 끝까지 로비를 해보고 버텨 보다가 그래도 안 되면 그때 조치를 하겠다는 금융회사의 꼼수가 관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감형을 위한 조치를 받아주는 기간을 정해야 조치의 진정성도, 제재의 실효성도 확보할 수 있다. 금융회사가 감형을 위한 농간을 부릴 때마다 제재심을 매번 다시 열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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