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부가 1980년대 중반 보드카의 생산과 판매를 엄격히 규제하면서 단기간에 자살률이 크게 떨어진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 흔했던 맹독성 제초제 파라퀴트의 생산과 판매를 2012년부터 전면 금지한 것이 그 이후 자살률 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생존자들 대부분이 이후 오래 살았다는 해외의 조사들도 있다....
부시 대통령에 대해 적대적 위치에 있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아들 조지보다 나은 사람이라 평가한 바 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2006년 블룸버그TV와 인터뷰서 아들 부시가 긴장을 조성하고 문제를 일으키도록 내모는 사람들 한가운데 있다며 신중하지 못할 때 일이 벌어진다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아버지인 부시 대통령과 미 지도자들 중 가장 좋은...
INF는 1987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조약으로, 사거리가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냉전 시대 군비경쟁을 종식한 문서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모스크바가 합의를 위반했다”면서 “협정(INF 조약)을...
INF는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조약이다. 사거리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및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냉전시대 군비 경쟁의 중심에 있는 두 나라의 과열된 전력 증강 흐름을 바꾼 전환점이 됐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는 여러 해 동안 조약을...
어쩌면 닉슨 대통령은 15년 뒤인 1987년 12월 8일 레이건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서명을 하고 펜을 바꾸어 가졌던 세리머니를 마오쩌둥과 먼저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만년필은 고위급 인사에게 선물로 주기엔 너무나 특별했기 때문이다.
몸통과 뚜껑, 펜촉까지 티타늄으로 만들었고 몸통 중앙엔 이보다 더 특별한 재료인 ‘아폴로 15호가...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사항은 미정이라면서 “매우 빠르게 진행할 수도 있으나 회담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가 알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핵 버튼을 가진 ‘리틀 로켓맨’과 미국의 관계는 불편하지만 지금 우리는 만나고 싶어한다”...
정 의원은 1989년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만나 ‘우리는 더 이상 적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동서 냉전을 끝낸 것을 언급하며 “이번 4·27 남북정상회담 역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은 더 이상 적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역사적인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패를 가를 최대 관건은 비핵화다....
1959년 아이젠하워, 1963년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중요 법안에 여러 개의 만년필로 서명하고 나눠 주는 행사를 했다. 1987년 중거리 핵전력 협정에서 레이건 전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서명 후 만년필을 바꾸어 갖기도 했다. 중요 문서의 서명에는 종이에 깊이 스며드는 수성 잉크, 누르는 힘에 따라 변화무쌍한 표현이 가능한 만년필이 가장 적합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012년 권력을 잡고 나서 구소련의 몰락 이유로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그가 내세운 ‘글라스노스트(Glasnostㆍ개방)를 뒷받침할만한 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시 주석에게는 30여 년 전 일본이 처했던 또 다른 역사적 사건이 더욱 즉각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FT는 전했다. 바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동서 냉전 해체의 주역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도 "카스트로는 20세기에 식민지 체제를 파괴하고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칭송했다. 겐나디 쥬가노프 러시아 공산당 당수는 "카스트로는 도덕 정치의 기반을 놓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운명과 노동자들의 가치 있는 삶, 행복한 세계에 대해...
그곳에서 소련 와해 직후의 크렘린을 쥐락펴락하던 고르바초프와 옐친 사이를 오가며 한참을 저울질하다 마침내 옐친을 선택, 1996년 옐친 대통령 캠프에 뛰어들면서 승승장구합니다. 소련연방보안국장, 국가보안위원회 서기를 거쳐 옐친의 최측근으로 부상하더니 1999년 옐친 대통령이 사임하자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리를 놓고 강적 유리 스쿠라토프 검찰총장을...
또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현지시간 23일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도핑과 무관한 선수들까지 징계를 확대 적용하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며 러시아의 리우 올림픽 참가금지를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IOC는 24일 집행위원회를 열고 조직적 도핑으로 논란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해 국가 단위로 리우 올림픽 출전 금지 징계를 내릴...
개혁과 자유를 열망한 그의 노래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함경북도 성진시(현재 김책시)가 빅토르 최의 할아버지 고향이다. 고려인 3세인 빅토르 최는 1962년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5년 뒤 옛소련의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했다.
그는 17세 때 노래를 작곡하기...
당시 소련 최고지도자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외치며 ‘위로부터의 개혁'을 밀어붙인다. 동유럽 사회주의에도 일대 변혁의 바람이 몰아쳤고, 자유를 꿈꾸던 동독인들은 서독으로 탈출하거나 국내에서 투쟁한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데도 호네커는 그저 자신의 권력만 강화하려 한다. 1989년 5월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동독 정부는 호네커의...
아탈리는 고대 사상, 종교, 근대 철학 속 ‘자기 자신 되기’의 의미와 역사를 더듬으며, 스티브 잡스, 싯다르타, 피카소, 제프 쿤스, 에드워드 스노든, 고르바초프를 비롯해 예술가, 기업가, 정치가, 활동가 등 다양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 주도적으로 인생을 경영해 성공 방안을 모색한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세계 최초로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 커플부터 그룹...
아르메니아인들은 소련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로의 편입을 요구했는데,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해 페레스트로이카 등 자유화정책을 시작하면서 아르메니아 편입 운동은 극에 달했고 결국 유혈사태로 번졌다.
그러다가 소련 체제 붕괴 후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1991년 독립을 선언, 러시아의 중재 하에 1994년 휴전...
‘멀쩡한 나라를 서방에 갖다 바친 매국노’, ‘용도 폐기된 공산당 일당 독재에 메스를 가한 개혁가.’ 미하일 고르바초프(1931.3.2~)만큼 러시아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인물은 아마 드물 것이다.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그만큼 세계 정치에 진한 여운을 남긴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러시아 북부 스타브로폴 지방의...
그러다가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ㆍ개방)정책에 힘입어 1985년 출판됐다. 이 작품은 200만부 이상이 팔리는 등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원전 사고 당시 우크라이나 이웃나라인 벨라루스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당시 벨라루스 국토의 23%가 방사능에 오염됐고 이 지역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전 세계가 신냉전 직전에 있으며 일각에서는 이미 시작됐다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등 서방국들이 베릴린 장벽 붕괴 이후 승리주의에 도취했다”며 “러시아가 약해지고 견제 세력이 없는 것을 틈타 세계에 대한 독점적 리더십을 추구했다”고 푸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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