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호네커(1912.8.25~1994.5.29). 그는 1976년 국가평의회 의장에 오른 뒤 독일 통일 직전까지 13년 동안 동독을 지배했던 최고 권력자였다. 하지만 그는 격변하는 시대조류를 잘못 판단해 결국 권좌에서 쫓겨나고 만다.
1989년 1월 호네커 국가 평의회 의장은 “베를린 장벽이 50년이나 100년은 더 버틸 것”이라고 장담하며 한 해를 연다. 하지만 이것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허언(虛言)에 불과한 것으로 결론난다.
당시 소련 최고지도자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외치며 ‘위로부터의 개혁'을 밀어붙인다. 동유럽 사회주의에도 일대 변혁의 바람이 몰아쳤고, 자유를 꿈꾸던 동독인들은 서독으로 탈출하거나 국내에서 투쟁한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데도 호네커는 그저 자신의 권력만 강화하려 한다. 1989년 5월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동독 정부는 호네커의 기획 아래 늘 하던 대로 부정선거를 저지른다. 하지만 이 부정선거는 동독인들의 분노를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다. 9월 25일 라이프치히에서 8000명이 모여 공산독재 철폐, 민주선거 실시 등을 주장하며 시위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호네커는 민중의 저항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그는 10월 5일 동독정부 수립 40주년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벌여 공산 정권이 끄떡없다는 것을 과시하려 했다.
하지만 나흘이 지난 10월 9일, 8000명으로 시작했던 집회는 7만 여 명으로 불어났고, 일주일이 지난 10월 16일에는 12만 여 명이 모여 공산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위를 벌인다. 결국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동독 정부는 12월 호네커를 축출하기에 이른다.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독일은 통일을 이룬다. daehoan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