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MH그룹은 올 초 리비아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의 둘째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를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사이프 알 이슬람은 리비아 법원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았다가 사면돼 올 6월 풀려났다.
MH그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건을 맡게 된 통로는 해당 로펌의 중국 지사로 알려졌다.
MH그룹은 1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악의 경우 핵을 포기한 이후 정권 붕괴와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리비아의 카다피를 떠올릴 수도 있다.
따라서 북한 문제 해법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인정하거나 아니면 군사적 옵션밖에 없는 셈이 되는데, 과연 미국의 입장에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독자 여러분이 스스로 판단하기 바란다. 어쨌든 우리로서는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 직면한 것만은 사실이다.
아마도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그렇게나 핵보유국으로 나가려고 하는 이유는 리비아의 카다피 ‘꼴’이 나지 않으려는 안간힘 때문으로 짐작된다. 카다피는 핵을 포기하고 서방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기 시작한 후 실각, 몰락, 살해됐다. 김정은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불안해하고 있을 터이다. 요기까지! 요즘 게스트로 나가는 모 방송사 프로그램의...
이어 “김정은은 자신이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처럼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며 “문제는 김정은이 다른 독재자들과 달리 핵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또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 미사일을 시험 발사해 미군이 사용할 수 있는 공군기지나 다른 목표를 타격하는 것을 연습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미국과의 전쟁 첫날에 한국...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시절 160만 배럴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5배 넘게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개월 사이 50만 배럴로 일일 생산량을 회복했고, 서부 유전에서 최대 40만 배럴을 증산할 계획이었다.
이번에 서부 유전지역 운영 재개가 갑자기 불발되면서 리비아가 2011년 카다피 사망 이후 줄어든 원유 생산량을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지난 15일 사르코지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리비아의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로부터 5000만 유로(약 630억 원)를 받았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대중들의 냉담한 반응은 더 심해졌다.
대통령직 당시 사르코지는 상류층의 사치와 허세를 일삼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7년 대선 승리 때 고급 클럽에서 자축연을 즐겨 물의를 빚었고, 대통령 당선 뒤에는 이혼한 후 톱모델...
1942년 6월 7일 파란만장했던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1942.6.7~2011.10.20)가 태어났다. 시르테의 알카다파 부족 출신인 그의 이름은 ‘카다파인’이라는 뜻이다.
카다피는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전 대통령을 본받아 자유장교단을 결성하고 1969년 27세의 나이로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1977년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무아마르 카다피(리비아 독재자)가 있었다면 IS는 원유를 장악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트럼프는 3일 인디애나 주 프라이머리를 앞두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뉴스, 마리스트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49% 지지율로, 34%에 그친 경쟁자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보다 15%포인트 앞서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트럼프는 “인디애나 주...
1면에는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의 압둘라 전 사우디 국왕 암살 음모에 대한 단독 기사가 실렸다. 앞서 인디펜던트 소유주인 ESI 미디어는 지난달 종이 신문 발행을 중단하고 온라인 서비스만 운영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종이 신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미디어 산업환경에서 종이 신문 발행을 중단하는 것은 영국의 주요 언론 중...
최종판에서 신문은 영국에 망명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체제 인사 무하마드 알마사리가 리비아의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의 지령을 받아 압둘라 사우디 국왕을 암살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는 단독 보도를 내기도 했다.
인디펜던트는 사설에서 “이날 윤전기는 멈추고 잉크는 말랐으며 신문은 더 이상 접히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한 장이 끝나면...
리비아 중부 해안도시인 시르테는 2011년 반정부군이 축출한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의 고향이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안사르 알샤리아의 거점이기도 하다. 현재 안사르 알샤리아는 IS 연계 단체로 의심받고 있다.
리비아에서는 4년 넘게 내전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외화벌이에 나선 북한인 300~400명은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현지에 머물고 있는...
리비아는 독재자 카다피 축출 이후 이슬람계와 비이슬람계 민병대 간의 교전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이슬람계 민병대가 수도 트리폴리를 장악한 이후 리비아 정부는 동부 도시 토브루크로 피신해 있다.
앞서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등 여러나라 대사관들도 트리폴리에서 무장단체의 공격 표적이 된 바 있다.
현재 리비아는 독재자 카다피 축출 이후 이슬람계와 비(非) 이슬람계 민병대 간 교전이 지속되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해 이슬람계 민병대가 트리폴리를 장악한 후 리비아 정부는 동부 도시 토브루크로 피신해 있다. 앞서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등 다른 국가 대사관들도 무장단체의 공격 표적이 됐다.
리비아 국영석유회사는 수도 트리폴리의 정부가 유전을 보호하지 못했다고 공식성명에서 비난했다. 이어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유전과 항구를 폐쇄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리비아에서는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된 이후 정부와 반군 간 대립이 지속되고 있고 지난해 여름 이슬람 세력 지원을 받는 반군은 트리폴리를 접수했다.
시르테는 지난 2011년 반정부군이 축출한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의 고향으로 테러단체로 지정된 안사르 알샤리아의 거점이기도 하다. 안사르 알샤리아는 IS와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19일(현지시간)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와 시리아 반군은 미군 주도 공습 지원 아래 IS의 근거지인 락까로 진격했다. 라미 압델 라흐만...
이에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여파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붕괴한 시점을 전후로 외국인 기자들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호텔이다.
호텔의 실내장식은 화려하고 야외 수영장과 사우나, 식당, 카페 등을 갖추고 있어 이슬람 국가인 리비아에서 호텔은 세속적인 장소로 인식되기도 한다.
리비아의 수도이자 최대 상업도시인 트리폴리에는 세계 각국 대사관, 공관...
1969년 헌트는 리비아 유전을 개발했으나 4년 후 리비아의 지도자 무아라므 카다피가 유전을 국유화해 유전을 뺏기는 불운을 겪었으며 유가 하락과 토지가격하락 등으로 재산이 줄어들어 1988년 5억 달러의 부채를 진 채 파산 보호신청을 했다. 당시 헌트의 파산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파산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2011년 10월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망 이후 리비아 전국에서 민병대가 난립하면서 국가ㆍ사회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했다. 올해 들어서는‘안사르 알 샤리아’등 이슬람 민병대와 퇴역 장성 칼리파 하프타르가 이끄는 비이슬람계 ‘국민군’이 트리폴리와 벵가지 등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반 총장은 “리비나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정치적으로 갈라져...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그는 리비아의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로부터 5000만 유로(약 690억원)의 선거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2012년 대선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에게 패배해 정계 은퇴를 선택한 사르코지는 지난 19일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대중운동연합(UMP) 당수직에 도전하겠다고 밝힌 사르코지는 이 승리를 바탕으로 2017년 대선에 출마할...
캔틀리는 익스트림스포츠를 광적으로 좋아해 오토바이 경주 담당으로 20대 초반 기자생활을 했으며 2003년 이라크 전쟁과 2011년 리비아 독재자인 무아미르 카다피 정부의 붕괴 등을 취재했다. 그는 취재를 위해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 위험 지역에서 머문 적이 많았으며 AFP 통신, 선데이타임스, 선데이텔레그래프 등에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