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판, 세상판] 적어도 카스트로는 미안해할 줄 알았다고 한다면

입력 2017-07-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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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북한이 연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인지 나발인지 미사일을 쏘아 대며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세계까지 갈 것도 없다. 도대체 저들은 지난 수십 년간 남한 사회의 민주화에 눈곱만큼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젊은 세대들에게서 ‘한민족 맞아?’라는 소리를 들을 법하다.

가까스로 정상적인 대통령을 뽑아서 간만에 좀 나라 꼴을 갖추며 살아 보려고 하는데, 왜 그렇게 파투(破鬪)를 놓는지 그 심통을 알 수가 없다. 미사일로 핵 강대국이 되는 걸 좋아라 하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과연 북한 주민들이 행복해하고 있을까? 그들의 행복지수를 좀 알고 싶은데, 그것조차 도무지 알 수 없는 저 폐쇄성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선다.

일설에 의하면 김일성종합대학의 학생들도 박찬욱이든, 봉준호든 남한 감독의 영화들을 다 보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믿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들에게서도 역시 학생운동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종전 후부터 따져 지난 60년간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대학가 투쟁이 일어나지 않은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이것도 정상이 아니다.

아마도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그렇게나 핵보유국으로 나가려고 하는 이유는 리비아의 카다피 ‘꼴’이 나지 않으려는 안간힘 때문으로 짐작된다. 카다피는 핵을 포기하고 서방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기 시작한 후 실각, 몰락, 살해됐다. 김정은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불안해하고 있을 터이다. 요기까지! 요즘 게스트로 나가는 모 방송사 프로그램의 진행자이자 자칭 방송인인 전 국회의원 정봉주 씨의 일침이 들린다. “그냥 하던 대로 영화 얘기나 하시지?”

작금의 북한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쿠바 생각이 난다. 지난해 타계한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생각이 오버랩된다. 세 번쯤 짧게 그곳 전역을 다녀온 소감으로 볼 때, 쿠바의 체제는 일종의 ‘노는’ 사회주의이다. 비교적 강고한 이데올로기는 공산당이 끌고 가긴 해도, 그곳 인민들은 실제로 자유롭게 ‘놀며’ 살아간다. 재즈를 연주하고 살사를 춰 가며, 평균 결혼 회수도 네 번이다. 공식 언로(言路)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할 말, 못할 말 다하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쿠바는 사람들의 욕망을 억누르지 않음으로써 열린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간다. 반면에 북한은 사람들의 욕망을 지나치게 억압함으로써 일찌감치 전체주의 국가가 돼 버렸다. 남한은 거꾸로 사람들의 욕망을 지나치게 통제하지 못(안)함으로써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가 돼 버렸다.

‘봉 도사’로 불리는 정봉주 씨의 말마따나 영화평론가인 만큼 영화로 결론을 맺어야 하겠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2004년 영화 ‘피델 카스트로를 찾아서(Looking for Fidel)’를 소개하고 싶다. 이 다큐멘터리는 스톤 감독이 직접 이 전설의 지도자와 독설에 가까운(“이 정도면 독재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요?” 등의 질문) 인터뷰를 이어가는 내용으로 돼 있다. 감독과 혁명가는 오랜 우정을 자랑해 온 사이이기도 하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나온다. 피델 카스트로는 다소 처연한 듯한 표정으로, 그리고 세상의 이치에 달관한 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소이다. 나도 잘 압니다. 어린 친구들이 얼마나 이것저것들을 갖고 싶어 하는지. 우리가 그걸 충족시켜 주지 못해 왔던 거, 그리고 못 하고 있는 거, 잘 압니다. 그럼에도 나는 나 나름대로 쿠바식 사회주의를 지키려고 애쓰며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산티아고 데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가 바티스타 독재 정권 항거의 혁명을 시작했던 곳이다. 카스트로의 무덤은 바로 그곳에 있다. 사람 키 높이 크기만 한 돌덩어리가 하나 있고, 거기 가운데 ‘피델(FIDEL)’이라고만 쓰여 있다. 아바나가 됐든, 산타 클라라가 됐든, 시엔푸엔고스가 됐든 그 어디든 쿠바의 전역에 카스트로의 동상이나 흉상, 초상화를 한 점도 볼 수가 없다. 그건 카스트로의 유언이었다.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영화 속 노(老)혁명가의 모습이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지도자라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쿠바와 맹방(盟邦)이라면서도 너무 ‘주체적으로’ 자기들 체제 유지에만 급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카스트로처럼 정치인들이 좀 ‘미안해하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제보 조작’을 해 놓고서는 상대 당 대표의 말 한마디를 빌미 삼아 ‘뺨 맞고 얻어터지면서 정치를 할 수 없다’는 둥 하며 국회 일정을 전면적으로 보이콧할 수 있을까. 대통령은 한미 연합 훈련으로 ‘무력시위’까지 불사하고 있는데, 제1야당 원내 대표라는 사람이 현 정부를 가리켜 ‘주사파 정권’ 운운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도 않을까. 정말 그런 생각이 한 치도 없는 것일까. 저들 정치인들이 ‘피델 카스트로를 찾아서’란 다큐멘터리의 존재를 알기나 할까 싶다. 아마도 올리버 스톤조차 모를 것이다.

또다시 그런 지적의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하던 일이나 계속하시지. 자꾸 왜 정치 얘기를?!” 맞다. 하던 얘기나 계속하며 살고 싶다. 그런데 세상이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 참 민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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