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수요가 많은 북반구의 겨울이 다가오면서 과거 ‘오일쇼크’가 다시 반복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안다의 제프리 헤일리 연구원은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더욱 가파르게 만들 것”이라며 “스태그플레이션을 대비해 헤지에 나서는 투자자들이 거의 없어 걱정스러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다만 증시 전문가들은 이러한 우려가...
근대화 이전은 차치하고라도 1970년대 후반의 중동발 오일쇼크는 한국 경제를 크게 흔들어 놓았다. 생산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모자라지 않기’이다. 쇠를 녹이는 용광로도, 자동차나 비행기 그리고 선박 등도 에너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주택이나 건물에도 따뜻함과 시원함을 제공하는...
전 전 대통령은 2차 오일쇼크를 극복하고 물가 안정에 성공했으며, 노 전 대통령은 1차 신도시 개발로 대표되는 주택 100만 호 공급 정책을 통해 폭등하던 집값을 잡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 전격 실행,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탈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이 가장...
미국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0년대 오일쇼크 전까지 2% 안팎을 차지했다.
반면 2000년부터 성장하기 시작한 IT 산업은 GDP 비중이 0.5% 정도다. 가장 최근 수치인 2019년도 1.2%에 불과했다.
기업이 생산한 부가가치 중 임금 등 노동 부문으로 분배되는 비율인 ‘노동분배율’도 자동차 산업은 1970년대 최대 70%가 넘었다. IT 서비스는 2019년 기준 약 33%로 전체...
70년대 중반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자본이득 감소, 노동자 임금과 복지에 대한 국가와 기업 부담은 80년대 대처주의와 레이거노믹스를 탄생시켰다. 복지는 사회와 국가가 아닌 개인이 책임질 문제로 전환되었다. 90년대 영국 노동당과 미국 민주당은 보수의 복지 정책을 손쉽게 수용하였고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제3의 길, 사회투자의 복지정책을 내놓게 된다....
반면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인플레이션 신호를 무시하면 1970년대처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1970년대에도 연준은 비전통적인 일시적 외부 요인이라며 오일쇼크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을 경시했다”면서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실수였다”고 꼬집었다.
오일 쇼크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1975년 미국·영국·프랑스·서독·일본 등 주요 5개국(G5) 정상회의로 출범했다가 이탈리아와 캐나다가 참여하면서 1976년 G7이 된 이 회의는 1997년 구소련이 참여하면서 G8으로 확대됐다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으로 러시아가 제외되면서 다시 G7으로 돌아갔다.
메르켈 총리는 첫 번째 임기였던 2007년 G7 의장국 역할을...
그는 “수요가 매우 강력한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면서 “코로나로 억눌린 수요가 있다. 사람들이 많은 돈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1970년대 인플레 상황과는 다를 것이라고 봤다. 당시는 시작부터 인플레가 높았고 오일 쇼크 등 다수의 충격이 발생했다는 점, 통화 및 재정정책이 매우 느슨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오일쇼크로 세계적인 불황이 몰려오자 케인스 이론에 기반을 둔 경제정책의 실패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국가 개입이 오히려 더 큰 비효율성을 초래했다며 케인스 이론의 ‘시장 실패’에 맞서 ‘정부 실패’를 내세웠다.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유를 극대화하자는 이들의 주장은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반영됐고 로널드...
그만큼 '오일쇼크'는 세계 각국의 경제적인 혼란을 일으켰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가전과 IT기기, 자동차 등 전 산업의 필수 부품이 되면서 오늘날 세계 경제에서 석유에 버금가는 위치에 올랐다. 특히, IoT(사물인터넷)와 AI(인공지능), 5G(5세대 이동 통신) 구현은 반도체 없이 불가능하다.
결국, 본격적인 ‘S노믹스’(반도체...
1973년 1차 오일 쇼크로 주가 폭락 이후 유가 급등에 돈 잔치를 벌리던 중동 붐에 편승해 국내 건설주와 관련주들이 1975년에는 256%, 1976년 130%, 1977년 135%, 1978년 6월까지 97%까지 3년 반 동안 폭등했다.
2차 붐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이어진 벤처 닷컴 붐이다. 1997년 IMF 경제위기로 주가지수가 폭락한 뒤 1998년말 미국 나스닥 폭등과 함께 2차 붐은 시작됐다. 당시...
최 장관은 이날 온라인으로 열린 ‘2021년 과학기술인ㆍ정보방송통신인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오일쇼크 이후 적극적인 반도체 투자, IMF 위기 때 초고속 브로드밴드 구축, 금융위기 당시 모바일의 성장은 우리가 빠르게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하는 계기가 됐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최 장관은 “코로나19는 물론 다가올 감염병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기...
1차 오일쇼크를 계기로 정상회의를 제창해 독일과 미국, 영국, 일본이 1차 회의를 파리에서 개최한 것이 지금의 G7 정상회의로 발전했다. 유럽경제공동체(EEC)를 강화해 유럽연합(EU)으로 발전하는 기반을 놓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유럽 이사회 창설을 주도하고, 유럽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등 유럽 통합에 앞장섰다.
그는 이혼 자유화와 낙태 합법화, 투표 연령...
그러나 올해 마이너스 성장은 오일쇼크가 닥쳤던 1980년의 -1.6%, 외환위기 때인 1998년 -5.1% 이후 22년 만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던 2009년 한은은 -1.6%를 예상했으나, 실제 성장률은 0.2% 플러스를 달성했다.
올해 -1.1% 성장률마저 불안하다. 3분기부터 국내외 경제가 개선되는 분위기를 타기는 했다. 수출이 2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20.3%까지 감소했다가, 3분기...
역사적으로 미국 경기침체(Recession)를 유발한 요인은 금융불안정(2001년 IT버블, 2007년 부동산버블), 오일쇼크, 재정긴축 등이 있으며 1981년 더블 딥의 배경은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이 꼽힌다.
그는 “미국의 경우, 코로나19와 관련된 경기침체가 다시 올 확률은 낮다”면서 “코로나19가 재확산되고 있지만, 경제봉쇄보다는 가급적 개방조치를 선택하는 주...
이어 넷째 주 687만 건까지 치솟았다가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기는 했으나, 20주 연속으로 100만 건 이상을 기록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쇼크 이전의 종전 최고치는 2차 오일쇼크 때인 1982년 10월의 69만5000건이었으며,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65만 건까지 불어난 바 있다.
또 연구원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한다면 2020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국민 계정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54년 이후로, 1998년(외환위기 -5.1%), 1980년(오일쇼크, -1.6%)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낮은 경제성장률인 -0.5%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코로나19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사회의 불균형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역은 물론, 위드...
코로나19 쇼크 이전의 종전 최고치는 2차 오일쇼크 때인 1982년 10월의 69만5000건이었으며,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65만 건까지 불어난 바 있다. 여전히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는 막대한 규모의 실업자 수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코로나19 감염 확산 속도가 다소 주춤한 가운데 신규 실업수당 신청 건수가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은 바이러스 감염...
에쓰오일은 연결기준 2분기 영업손실이 1643억 원을 기록하며 1조 원 영업적자의 쇼크에서 다소 벗어났다. 에쓰오일은 낮은 원유가격에 더해 재고 효과가 발생하며 3분기 정유 부문 수익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단, 정유사들은 코로나19의 강한 재확산과 저유가 시대가 지속되면 실적 개선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IHS가 전망한 코로나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