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부동산으로 경기 살린다는 착각

입력 2013-04-3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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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가계가 저축을 하면 기업이 이를 빌려 사업을 한다. 이것이 경제 상식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뒤바뀌면 어떻게 될까? 즉, 기업이 저축을 하고 가계가 이를 빌려 가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빌려간 돈으로 집을 사는 등 부동산에 투자한다면?

잠시 신바람이 날 것이다. 너도나도 집을 사니 집값이 오르고, 은행은 돈 장사로 큰돈을 번다. 처음에는 신용이 좋은 사람들에게만 빌려주다가 나중에는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빌려준다. 돈은 넘치고 올라가는 집값에 담보가치도 같이 올라간다. 못 빌려줄 이유가 없다.

집을 산 사람도 기분이 좋다. 부자가 된 기분에 돈을 빌려 차도 바꾸고 그동안 못했던 여행도 한다. 소비가 일어나니 경기도 괜찮다. 경제도 잘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고 일자리도 소득도 크게 늘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이게 얼마나 갈까. 어느 순간 구매력은 한계에 달하게 되고 집은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된다. 집값은 떨어지고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집주인은 파산한다. 돈을 빌려 준 은행도, 은행의 채권을 산 투자은행도, 집을 산 사람도 모두 망조가 든다.

금융위기 직전의 미국 이야기다. 지금 와서 왜 이 이야기를 다시 하는지 궁금한가? 경기가 떨어지기만 하면 부동산이 살아나고 집값이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사고구조가 과연 옳기만 한지 한번 따져보자는 뜻에서다.

우리 경제도 이제 집값이 좀 오른다고 해서, 또 그 거래가 활성화된다고 해서 확 달라지는 수준이 아니다. 주택보급률이 낮을 때는 집값이 오르는 만큼 집도 많이 지어졌다. 일자리도 많이 생겨났고 그 질도 상대적으로 괜찮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집을 짓기보다는 교환행위만 이뤄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졌다. 일자리를 창출해 내는 효과나 일자리의 상대적 질도 과거와 같이 않다.

물론 좋아지는 부분도 있다. 건설회사는 물론 동네 인테리어 가게도 좋아질 것이다. 집값이 올랐다는 기분에 여기저기 밥도 사고, 그래서 소비가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경기가 살아날까?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자본·기술 축적이 이뤄지고, 재벌들도 300조원 이상 쌓아 놓은 돈을 ‘창조경제’를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투자하게 될까? 또 양질의 일자리에 소득도 늘고 구매력도 커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돈의 흐름을 왜곡시키고 양극화 등의 고질적 문제만 더 악화시킬 듯하다. 돈 장난에 집값만 공연히 오르내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양정책에 따라 집을 산 사람은 오히려 피해를 보게 된다. 4·1부동산 대책의 생애 첫 주택 구입자에 대한 특혜 등을 걱정하는 이유다. 이들을 또 다른 피해자로 만들지 않는다는 확신이 어느 정도인지 묻고 싶다.

다른 한편으로 부양책을 쓴다고 해서 원하는 수준의 거래 활성화가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우선 구매력 부분인데, 결코 좋은 편이 아니다.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이미 135%를 넘고 있다.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직전 미국의 가계부채 수준과 같다. 집을 사기 위해 빚을 더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돈 가진 사람들이 덤비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을 끌어낼 만한 정책은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시민사회가 강력히 반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4·1대책에 있어서도 조세 혜택을 받는 대상을 6억원 이하로 한정하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 실거래가 등기부 기재 등 거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출처나 소득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집 사기가 겁이 난다. 이 역시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도 절대 완화할 수 없는 제도다.

부동산대책을 경기부양을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지 말자. 잘 먹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먹히면 문제가 생긴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오죽 답답하면 그렇게 생각하겠나.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언제까지 과거 프레임워크에 갇혀 지낼 수는 없다. 경기를 살릴 수 있는 진짜 정책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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