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규제 1년]전통시장 외면은 여전, 마트 납품 농어민 피해

입력 2013-04-2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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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놀면 손님 늘 줄 알았는데…” 인적 드문 시장엔 상인 한숨만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 영업을 규제한 지 꼭 1년이 됐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마트 손님들이 올 줄 알고 잔뜩 기대에 부풀었지만 예전과 별 차이가 없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오히려 마트에 물건을 대던 농어민과 중소 납품업자들이 피해가 심각하다며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반면 대형마트 주변 동네 중소형 슈퍼들은 영업규제 이후 매출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반사이익이 기대만큼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정부가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 휴일 영업을 규제한 지 1년을 맞은 21일 서울 중구의 한 대형마트에 휴무 안내문이 내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마트 손님 올 줄 알았는데”…도대체 어떻게 해야? = 22일 저녁 6시 서울 용산구 소재 용문시장은 인적이 뜸했다. 도로를 끼고 있는 지하철역 인근에는 손님들로 북적거렸지만 시장 중심으로 갈수록 손님들의 발길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인근 용산 이마트, 서울역 롯데마트의 규제 효과가 전혀 없는 셈이다.

채소가게 직원은 팔리지 않는 채소를 쳐다보며 야속한 담배만 피워댔고, 안쪽 젓갈집 아줌마는 상기된 얼굴로 바깥만 쳐다봤다. 손님 끊긴 시장 거리에는 ‘폭탄세일 오징어 2마리 4000원’이라는 상인들의 문구가 덩그러니 자리를 지켰다.

10여년 넘게 시장을 지켰다는 건어물집 상인 이모(53·여)씨는 “시장 안은 이미 썩었다”면서 고개를 떨궜다.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형마트가 대세인 상황을 거스를 순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대형마트 영업 규제 이후 손님들이 많이 올 줄 알고 내심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아 많은 상인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과일가게 상인이 “딸기 3팩에 만원!”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손님은 슬쩍 보거나 만지기만 하고 가게를 떴다. 손님을 끌어 보기 위한 제스처도, 가격 할인 행사도 다 허사였다.

한 정육점 직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선거 유세 때마다 대형마트 입점을 막아 달라고 했던 것이 헛수고가 됐다”며 “단지 한 달에 며칠 대형마트를 쉬게 한다고 해서 그 손님들이 전통시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통시장도 못 살리고 우리만 일방적으로 피해…헌법소원 내겠다” = 마트에 입점한 소상공인들과 농어민, 중소 납품업체들은 정부의 밀어붙이기 식 정책이 전통시장도 못 살리도 자신들만 일방적인 피해를 봤다며 화를 누르지 못했다.

이들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이어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하는 등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대영 ‘유통악법 철폐를 위한 농어민·중소기업·영세임대상인 생존대책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시행일을 앞두고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대형마트 영업을 규제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골목상권이나 전통시장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데 우리만 일방적 피해를 보고 있다”며 “법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법적 테두리 안에서 법무법인을 통해 헌법소원을 제기한다”고 덧붙였다.

생존대책투쟁위원회는 대규모 집회도 열 예정이다. 구체적 일정과 내용은 25일 오후 위원회 총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농산물 상품 하나에 대한 소비자 가격을 놓고 봐도 대형마트가 차지하는 부분은 5~25%이지만 마트 납품 소상공인·농민은 70~75%의 가격구조를 가진다”면서 “유통법의 일차적 피해는 결국 우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통법 개정안은 24일 본격 시행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매달 공휴일 중 이틀을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한다. 해당 유통업체와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합의하면 휴업일을 평일로 바꿀 수 있도록 했지만 이틀을 쉬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새 유통법은 또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마트 주변 동네 슈퍼만 반사이익, 기대만큼 크진 않아 =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규제 덕에 중소형 슈퍼마켓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22일 저녁 서대문 영천시장 근처 300m 내에는 대형마트뿐만 아니라 중소형 마트가 많게는 5개 이상 자리 잡고 있었다. 슈퍼 주인들은 대형마트 영업규제 특히, 의무휴업으로 매출 상승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지만 기대만큼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서대문 영천시장에 근접해 있는 슈퍼마켓 점원은 “의무 휴업 이후 평일 퇴근 시간에 손님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배달 고객도 늘었다”며 “물, 쌀 등 무게가 나가는 물품 위주로 많이 찾는다. 또 매일 이벤트 품목을 정해서 판매하는 신선식품의 경우 인기가 좋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 때문에 납품 업체들이 중소형 마트로 몰리면서 가격을 낮춰 판매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틀 정도 휴업으로는 눈에 띄는 이익은 없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또 다른 슈퍼 주인은 “손님이 조금 늘어 다행이지만 대형마트를 찾던 사람들은 온라인 쇼핑몰이나 편의점으로 쏠리는 것 같다”며 “이들에 대한 규제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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