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박 등록 3년 새 63척→175척…고액체납자 해외재산 정보 요청

해외로 빼돌린 재산을 추적하는 세정망이 세계 주요 선박 등록지국인 라이베리아까지 넓어진다. 선박 등록과 금융 구조는 글로벌 해운업의 일반적 경영 수단이지만, 차명 사업과 해외 은닉재산이 결합하면 고액체납자가 국내 징수망을 피해 재산을 숨기는 우회로가 될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해외재산에서 339억원을 환수한 국세청이 유럽에 이어 아프리카로 공조 대상을 확대한 것도 역외탈세 대응의 초점을 ‘정보 파악’에서 ‘실제 환수’로 옮기려는 흐름으로 풀이된다.
국세청은 임광현 국세청장이 5일 서울에서 제임스 도버 잘라 라이베리아 국세청장과 제1차 한·라이베리아 국세청장 회의를 열고 정보교환·징수공조·역량강화 관련 실무협정 3건을 체결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회의는 국세청이 아프리카 세무당국과 연 첫 국세청장 회의다. 양국은 조세목적 정보교환에 관한 공조협정과 조세채권 징수공조에 관한 실무협정, 역량강화를 위한 실무협정을 맺고 역외탈세 대응과 체납자 해외재산 환수를 위한 상시 협력 채널을 마련했다.
라이베리아가 협력 대상으로 떠오른 배경에는 해운업이 있다. 라이베리아는 신속한 등록 절차와 유연한 규제체계를 앞세운 대표적 선박 등록지국이다. 라이베리아 선박등록청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전 세계 선박의 17%가 라이베리아를 기국으로 등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선사가 라이베리아에 등록한 선박도 2022년 말 약 63척에서 지난해 말 175척으로 3년 새 3배 가까이 늘었다.
국세청이 겨냥하는 것은 선박 등록 자체가 아니라 이를 악용한 재산 은닉 가능성이다. 편의치적은 선주가 비용 절감이나 경영 효율성 등을 이유로 자국이 아닌 제3국에 선박을 등록하는 방식으로, 국제 해운에서 널리 활용된다. 다만 차명 법인이나 해외 금융 구조와 결합하면 국내 과세당국이 실제 소유자와 재산 소재를 파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임 청장은 회의에서 라이베리아를 포함한 해외 곳곳에서 남의 명의로 사업을 하면서 국내 세금 납부를 거부하는 고액체납자 사례를 설명하고 라이베리아 측에 과세정보 제공을 요청했다. 잘라 청장은 최대한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양국 세무당국 간 협력 필요성에 공감했다.
징수공조는 국내에서 확정된 조세채권을 상대국 과세당국에 요청해 현지 재산 압류나 추심 등 강제집행을 돕도록 하는 절차다. 해외재산을 찾아내더라도 한국의 강제징수권이 외국에 곧바로 미치지는 않기 때문에 실제 환수에는 현지 과세당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국세청이 최근 해외 과세당국과 징수공조 실무협정을 늘리는 것도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국세청은 임 청장 취임 이후 최근 9개월간 3개국 과세당국과의 징수공조를 통해 5건, 339억원의 체납세금을 환수했다. 2015년 이후 전체 징수공조 실적이 18개국, 24건, 372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최근 해외재산 환수 속도가 빨라진 셈이다. 현재도 해외 은닉재산을 포착해 정보교환이나 압류를 요청한 건이 수십 건에 달해 추가 환수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번 협력은 고액체납 추적망 확대와 함께 세정외교 성격도 갖는다. 국세청은 라이베리아 국세청에 K-전자세정 운영 경험과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디지털 전환 계획을 공유하고 국제조세·정보교환 분야 실무교육도 제공하기로 했다. 조세행정 현대화를 추진 중인 라이베리아 측은 전자세정 분야 실무자 교류에도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해운기업에 대한 세정지원도 논의됐다. 임 청장은 국제정세 불안에 따른 해상물류 불확실성과 친환경 전환 부담을 언급하며 한국 선사들이 선박 등록과 운항 과정에서 세무상 애로를 겪지 않도록 지원을 요청했다. 잘라 청장은 한국 선사에 대한 세정 운영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고 고충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세청 관계자는 “라이베리아 국세청과의 협력을 계기로 우호적 세정 파트너를 넓히고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뒷받침하겠다”며 “체납자의 해외재산 환수 등을 위해 주요국과의 글로벌 세정 네트워크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