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vs 1999년…한국 커피를 바꾼 두 번의 혁명 [이슈크래커]

입력 2026-04-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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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제미나이 AI 기반 편집 이미지)
▲(구글 제미나이 AI 기반 편집 이미지)
최근 한국 커피 산업의 기틀을 다진 거목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국민 음료'이자 이제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커피믹스' 탄생의 주역, 조필제 전 동서식품 부회장이 향년 101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고인의 별세 소식은 매일 무심코 뜯어 마시던 노란색 봉지 커피 한 잔의 역사적 무게를 새삼 되돌아보게 합니다.

한국 커피 문화의 지형도를 바꾼 결정적 변곡점을 논할 때, 우리는 흔히 두 가지 상징적인 사건을 꼽습니다. 하나는 1999년 스타벅스의 한국 진출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앞서 세계 최초로 개발된 1976년 동서식품의 커피믹스 출시입니다. 이 두 축은 어떻게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스며들어 오늘날의 거대한 커피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을까요.

다방과 손님 접대용에서 '내 손안의 커피'로

▲동서식품 대표제품인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커피믹스.
▲동서식품 대표제품인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커피믹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커피는 일상적인 음료라기보다는 주로 다방에서 소비되거나, 가정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 내어놓는 고급 기호식품에 가까웠습니다. 1970년 동서식품의 인스턴트커피 생산으로 가정 내 소비가 시작되긴 했지만, 유리병에 든 커피 알갱이와 설탕, 그리고 크리머를 스푼으로 일일이 떠서 입맛에 맞게 '황금 비율'을 맞춰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불편함을 단번에 해소한 혁신이 바로 1976년 12월 등장한 '1인용 3-in-1 커피믹스'입니다. 조필제 전 부회장의 주도하에 1974년 독자 개발한 식물성 커피 크리머 '프리마'를 바탕으로, 커피와 크리머, 설탕을 이상적인 비율로 배합해 한 포에 담아낸 세계 최초의 일체형 커피믹스가 탄생한 것입니다. 뜨거운 물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일정한 맛의 달콤한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된 이 발명품은 바쁘게 돌아가던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및 치열한 직장 문화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다방이라는 공간에 머물던 커피가 사무실, 건설 현장, 야외 등 일상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진정한 대중화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1999년 스타벅스 상륙, 에스프레소 카페 문화의 폭발

▲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의 모습. (연합뉴스)
커피믹스가 주도하던 한국 커피 시장은 1999년 7월 27일, 이화여자대학교 앞에 스타벅스 코리아 1호점이 문을 열며 또 한 번 커다란 지각변동을 겪게 됩니다.

물론 한국에 원두커피 전문점이 이때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1988년 브루드 커피를 판매하는 원두커피 전문점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스타벅스의 등장은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강하게 추출한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를 중심으로 한 '프랜차이즈 카페 문화'를 대중적으로 폭발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길거리를 걸으며 커피를 마시는 '테이크아웃' 문화를 정착시켰고,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것을 넘어 세련된 공간과 분위기를 소비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며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른바 '카페 공화국'으로 이끌었습니다.

숫자로 보는 두 잔의 커피… '100원의 위로' vs '4700원의 공간'

▲(AI 기반 편집 이미지)
▲(AI 기반 편집 이미지)
두 커피가 한국 시장에 자리 잡은 양상은 구체적인 수치를 통해서도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한 잔에 약 100원인 커피믹스(맥심 모카골드 기준)와 4700원인 스타벅스 아메리카노(톨 사이즈 기준)는 무려 47배의 가격 차이를 보입니다. 1976년 탄생 이후 가격 변동이 크지 않았던 커피믹스와 달리, 스타벅스는 1999년 3000원에서 2026년 4700원으로 약 56% 상승했습니다. 재미있는 통계로 22만 원이 있다면 스타벅스에서는 47잔을 마실 수 있지만, 커피믹스로는 무려 약 2200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소비 규모와 매출의 성격도 흥미롭습니다. 연간 소비량은 커피믹스가 스틱 기준 53억 개(1초당 170개)로, 연 8억 잔(추정)이 팔리는 스타벅스를 압도합니다. 하지만 운영 주체의 매출액을 살펴보면, 스타벅스코리아가 약 3조 원으로 동서식품(1조 5000억 원)을 앞섭니다. 커피믹스가 커피믹스 시장 점유율 80~90%를 쥐고 '국민 음료'로서 압도적인 보급률을 자랑한다면, 스타벅스는 커피전문점 매출 1위를 기록하며 고부가가치 모델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 그리고 K커피의 도약

스타벅스가 주도한 원두커피 프랜차이즈의 거센 유행 속에서 커피믹스의 시대가 저물 것이란 시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커피 문화는 서로를 대체하지 않았습니다. 에스프레소 기반의 카페가 여유와 공간의 가치를 제공한다면, 커피믹스는 바쁜 일상 속 찰나의 휴식과 친숙하고 달콤한 맛이라는 고유의 영역을 지켜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인의 삶에 조화롭게 공존하게 된 셈입니다.

더 나아가 조필제 전 부회장이 남긴 유산은 이제 국경을 넘어 'K커피'라는 이름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커피믹스 문화가 자연스럽게 노출되면서 해외에서도 관심과 수요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5년 K푸드 수출 실적에서 커피 조제품이 역대 최고 실적 품목에 포함될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지고 있습니다.

단 한 봉지로 누구나 평등하고 간편하게 휴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한 1976년의 소박하고도 위대한 혁명.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대중의 일상으로 깊숙이 끌어들인 고인의 발자취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커피믹스의 짙은 향기 속에서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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