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코로나 고개도 넘지 못한 브렉시트

입력 2020-06-2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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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팅 안쌤의유로톡 운영자

‘코로나19 대응을 보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EU 탈퇴) 후 영국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유럽 국가 가운데 코로나 사망자 수 1위(4만2546명), 10만 명 당 사망자 수 1위(63.99명, 2위는 스페인으로 60.66명, 6월 20일 기준)라는 불명예를 기록한 영국을 두고 영국의 일부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처럼 솔직하게 정부를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정부가 전염병에다 브렉시트 후 예상되는 큰 폭의 경기침체를 극복할 수 있을지 우려한다.

영국은 이탈리아나 스페인, 독일 등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최소 1주일 늦은 3월 23일 봉쇄를 단행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처음에는 대책이 없다며 집단면역을 거론했다가 뒤늦게 필수인력을 제외하고 이동을 제한했다. 여기에서 늦지 않게 봉쇄를 실행한 나라와 크게 차이가 났다. 코로나19 초기 두 달간 의학보좌관으로 일하다 사직한 니얼 퍼거슨 런던대 역학과 교수는 정부가 제때에 봉쇄를 단행했더라면 사망자를 최소 절반 정도 줄일 수 있었으리라고 털어놓았다.

특히 요양원 환자 가운데 사망자가 급증했다. 정부는 검사에서 확진자로 드러난 사람들의 사망률만을 집계했다. 그러다가 4월 말 일부 언론이 지난 5년간 같은 기간의 평균 사망자 수보다 올해 사망자 수가 급증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통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요양원에서 전염병 검사를 받지 못하고 치료 중 사망한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코로나 유사 증세를 보였다. 결국 이들을 코로나 사망자에 포함하면서 치명률이 치솟았다. 영국 요양원 환자 14명 가운데 한 명이 이 전염병으로 숨졌다. 프랑스나 독일 스페인보다 훨씬 높은 비중이다.

영국의 코로나19 대응에서 리더십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역시 독일이라고, 레임덕에 처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너무 지나치리만큼 냉철하게 사실을 설명하고 시민들의 이해를 구하면서 코로나19 대책을 진두지휘했다. 반면에 코로나19 대응에서 좌충우돌하던 존슨 총리는 이 전염병에 감염돼 4월 초에 입원했다. 최소 3주 정도 정부의 수장이 자리를 비웠다. 총리 부재 시 다른 각료들의 업무도 중심을 못 잡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영국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와 정부 여당 지지율이 수직 낙하했다. 지난 5일 조사에서 영국 시민들 가운데 정부의 코로나 대처가 잘한 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39%에 불과하다. 유럽 국가 가운데 최저다. 또 정당 지지율도 크게 바뀌어 제1야당인 노동당이 여당인 보수당을 거의 따라잡아 12일을 기준으로 지지율 격차가 1% 내로 좁혀졌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보수당은 노동당보다 20% 넘게 지지율이 높았다.

영국 정부가 전염병 대응에서 이처럼 문제점을 드러낸 것은 각료 대다수가 능력보다는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들로 이념을 중시해 임명됐기 때문이다. 존슨은 경제에 손실이 가더라도 EU로부터 신속한 탈퇴를 단행하겠다는 강경 브렉시트 실행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 지난해 12월 중순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영국은 EU의 간섭없이 독자적으로 실행한 코로나19 대응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EU의 경우 보건정책은 회원국 고유의 권한이다. 그렇기에 이번 대처에서 EU의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았다. 반면에 전염병 때문에 국경이 봉쇄되고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줄어들어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가 시작됐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EU만 탈퇴하면 영국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수사를 자주 구사했다. EU의 규제를 벗어나 미국 등 다른 경제대국과 자유무역을 추진하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현실과 이상 간의 간극이 너무 크다. 영국은 지난 1월 31일 EU를 탈퇴했다. 올해 12월 31일까지 이행기(과도기)로 이전처럼 아무런 장벽 없이 EU 단일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보수당 정부는 이행기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혔다.

앞으로 영국이 EU와 신통상관계에 합의해도 내년 1월 1일부터 EU 시장에 물건을 팔 때 영국은 비관세장벽과 같은 벽에 부딪친다. 영국 무역의 절반 정도가 이뤄지는 EU 시장에서 신규 장벽 때문에 교역 축소가 불가피하다. 반면에 현재 협상 중인 미국과 영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는 시간이 소요되고, 영국에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EU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조차 EU와의 이행기 연장을 바라는 사람이 더 많다. 전염병으로 경제침체가 길어질 터인데 이런 악영향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과도기를 더 가져야 한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그럼에도 포퓰리스트 존슨 정부는 유권자와의 약속을 지킨다며 경제를 더 악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한다.

옥스퍼드대학교 연구진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무능한 정부와 유능한 연구진이 너무 뚜렷하게 대비된다. 코로나 고개도 숨을 헐떡거리며 오르는 정부가 브렉시트 고개라고 쉽사리 넘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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