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하다’는 ‘안타깝게 뉘우쳐져 마음이 언짢고 아프다’라는 뜻의 우리말이다. 즉, “언짢고 아픈 마음으로 산다”는 말인데 누가 그 술과 밥을 기쁘게 먹겠는가. 크게 한턱내겠다는 의도인데 잘못된 표현 때문에 자칫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거하게 한턱낼게요”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많은 이들이 ‘거하다’를 한자 ‘클 거(巨)’가 들어간 형용사로 생각해...
‘고명+딸’의 형태로, 음식에 빗대어 맛깔스럽게 표현한 멋진 우리말이다.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맛을 더하는 고명처럼 아들들 사이에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이라는 의미다. ‘양념딸’이라고 표현하는 지방도 있다. 그런데 딸이 많은 집의 외아들을 ‘고명아들’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여자 형제가 있어도 아들이 하나인 경우엔 ‘외아들’이라고 한다....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근으로 아프다/…(중략)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본다/밖에는 바람소리 사정없고/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잠이 오지 않는다.” 셋방살이의 설움이 짙게 묻어 있는 김사인의 시...
즉, 한자에서 왔지만 순 우리말처럼 변한 말이다. 따라서 매월 초 하늘에는 초승달만 뜰 뿐 초생달은 절대로 뜨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인 이승과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인 저승 역시 어원은 ‘이 생(生)’과 ‘저 생(生)’이다. 이 같은 음운 변화를 ‘전설모음화’라고 한다.
“추석에 내려왔다/추수 끝내고 서울 가는 아우야/동구...
병과 관련된 우리말에는 대병도 댓병도 없다. 됫병만이 바른말이다. 됫병은 말 그대로 한 되를 담을 수 있는 분량의 병을 의미한다. ‘되’는 부피를 재는 단위로,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한 되는 1.8039리터다.
안주가 좋으면 됫병도 삽시간에 비워지는 법. 술의 고수들은 “다음 날 대자로 뻗지 않으려면 영양가 높은 안주를 선택해 대짜로 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주말 벌초를 겸한 성묘를 다녀왔다. 아직 한낮 햇살이 따갑고 벌초객들로 도로가 붐빌 듯해 새벽 5시경 출발했다. 예취기(刈取機)와 낫, 긴소매 옷, 모자, 수건, 장갑, 얼린 물, 벌·모기 퇴치용 살충제 등 준비물을 꼼꼼히 챙겼다. 결혼한 이후 매년 벌초에 참여하는 것은 조상을 잘 섬겨야 내 자식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경기도 가평군 운악산 기슭 깊숙이...
올바른 우리말은 ‘분’이나 ‘푼’이다. 그러므로 ‘구분(푼) 능선이라고 말해야 한다. 산기슭으로부터 산마루까지를 10으로 봤을 때 9쯤 되는 지점의 산등성이를 뜻한다. 산기슭은 산의 비탈이 끝나는 아랫부분이고, 산마루는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 즉 정상이다.
같은 이유로 보통 바지보다 짧아 길이가 정강이 밑까지 내려오는 바지는 ‘칠부바지’가 아니라...
경기도 광주시 퇴촌에 위치한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이곳에서 영화시사회가 열렸다. 머나먼 타국 전쟁터에서 고통 속에 숨진 어린 소녀들의 혼을 고향으로 불러온다는 의미를 담은 영화 ‘귀향’이다. 스크린에는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는 소녀들의 처절한 신음이 이어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87)...
총장직선제 폐지를 반대하던 대학 교수가 투신해 사망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성품이나 문학평론에서는 주관이 강했던 중견 평론가인 고현철 부산대 교수다. 고 교수는 17일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대학 본관에서 몸을 날렸다. 교수회의 단식농성 12일째 되던 날 발생한 안타까운...
‘일방적인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하여 물리적으로 신체 접촉을 가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시된 ‘성추행’의 정의다. 입에 담기 불편한 말의 의미를 새삼 밝히는 까닭은 최근 엄청난 충격을 안긴 서울시내 공립고교의 교내 성추행, 성희롱 사건 때문이다. 오랜 기간 사건이 은폐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가해자 가운데...
높은 곳, 맨 꼭대기를 뜻하는 순 우리말 ‘수리’가 ‘소래’로 변했다는 설이 설득력 있다. 더불어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을 의미하는 우리 옛말 ‘솔’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솔깃하다. 소래에 자리한 소래산이 해발 299미터이니 참으로 그럴 듯하다.
금빛 석양의 낭만은 물론 싱싱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소래포구는 여름철이면 휴가객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어머니는 몸집이 작고 야무져서 박덕성이라는 본명보다 ‘양글이’로 불렸다. 어느 날 고등학교 기성회비를 내지 않아 집으로 돌려보내진 아들에게 어머니는 닭을 판 돈을 쥐여 줬다. 그런데 닭 판 돈은 기성회비와 아들이 학교까지 갈 수 있는 차비가 전부. 어머니는 빈 망태를 멘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차 간다. 어서 가거라”라고 손을 흔들었다....
대부분 영어, 프랑스어에 우리말을 더해 길고 어렵다. 해당 건설업체의 설명을 듣지 않으면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들 정도로 정체불명의 이름도 많다. 기자도 한 번 들어서는 절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시부모를 못 오게 하려는 며느리들의 요구가 반영됐다는 우스개가 나왔을까.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이름을 특이하게 지어야 소비자들의 흥미를 자극해 아파트...
요리의 특징을 살리고 싶다면 우리말 맑은장국의 장국을 붙여 ‘복장국’으로 부르면 된다. 복매운탕과 짝을 이루는 의미로 ‘복싱건탕’으로 써도 좋다. 더불어 복집 메뉴 중 사시미는 생선회, 덴푸라는 튀김, 스시는 초밥으로 순화해야 한다. 일본식 언어습관은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당신은 개고기를 먹습니까?”는 충청도 사투리로 “개 혀?”다. 행동과 말투가...
‘뻥이오~’ 고소한 옥수수 향과 함께 하얀 김이 퍼지면 어디선가 어린아이들이 몰려왔다. 아이들은 바닥에 떨어진 뻥튀기를 한 줌씩 주워 만담꾼 만병통치약 장수를 따라다녔다. “애들은 가, 애들은 집에 가라”라는 약장수의 호통에 오히려 흉내를 내며 한여름 뜨거운 열기 속을 뛰어다녔다. 1989년 7월 대전 유성 오일장의 모습이다. 장터는 이름만으로도 정겹다. 장이...
용문행 중앙선 전철은 주말에 몹시 붐빈다. 남한강과 산이 조화를 이룬 데다 아름다운 코스의 자전거길, 시골장터 등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즈넉한 산길을 걷고 싶어 첫 차를 탔다. 서로 어깨를 감싼 듯한 산줄기의 실루엣에 감탄할 즈음 두물머리에선 새벽 물안개가 곱게 피어오른다. 차창 밖 풍경만으로도 매력적인 코스다. 목적지는 양평 청계산....
순우리말 안갚음은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일을 의미한다. 까마귀는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한다. 까마귀를 효조(孝鳥)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같은 까마귀의 행동이 바로 안갚음으로, 반포지효(反哺之孝)의 유래다. 마음을 다해 키워준 은혜를 갚는다는 안갚음의 ‘안’은 마음을 의미한다. 이때 ‘안’은 부정의 뜻을 지닌 ‘아니’의...
요 며칠 천금 같은 단비가 내렸다. 이호준 시인은 페이스북에서 “비 온다. (중략) 신명나게 술 한 병 땄다. 아침까지 쉬지 않고 와도 좋겠다. 밤새 마셔도 좋겠다,고 쓰는데 비 그쳤다. 젠장! 시집간 애인 돌아온 듯 반겼더니 술, 괜히 땄다”며 일찍 그친 비를 아쉬워했다. 새벽 출근길 촉촉이 젖은 나무들이 싱그러운 향을 강하게 풍기니 비가 더욱 고맙다. 사무실 내 자리 뒤...
30여 년 만에 중학교 동창들이 모였다. 인심 좋은 중년 여성 분위기의 배 나온 친구, 이름이 바뀐(준미로 개명한 춘자는 ‘춘자’라 부를 때마다 귀엽게 눈을 흘겼다) 친구, 키가 훌쩍 큰 친구 등을 보며 세월을 실감했지만 어제 만났던 것처럼 이내 수다가 이어졌다. 햇빛처럼 찬란해야 할 중학 시절, 가난 때문에 고교 진학을 걱정하던 친구와는 와락 안고 눈물을 쏟았다....
때이른 더위가 순식간에 봄을 빼앗았다. 에어컨과 냉장고가 없던 시절 더위가 시작되면 우리 가족은 휴일에 태백산 자락 유원지로 나가 음식을 해 먹곤(지금은 불법이지만) 했다. 편편한 돌에 구워 먹던 삼겹살도 맛있었지만 닭개장의 알싸한 맛이 가장 진하게 남아 있다. 전날 저녁 아버지는 닭의 목을 비틀어 뜨거운 물에 데친 후 털을 뽑고 배를 갈라 내장과 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