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언년아, 모둠전 한 접시 할겨?

입력 2015-07-07 16:17 수정 2015-07-0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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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이오~’ 고소한 옥수수 향과 함께 하얀 김이 퍼지면 어디선가 어린아이들이 몰려왔다. 아이들은 바닥에 떨어진 뻥튀기를 한 줌씩 주워 만담꾼 만병통치약 장수를 따라다녔다. “애들은 가, 애들은 집에 가라”라는 약장수의 호통에 오히려 흉내를 내며 한여름 뜨거운 열기 속을 뛰어다녔다. 1989년 7월 대전 유성 오일장의 모습이다. 장터는 이름만으로도 정겹다. 장이 서는 5일과 10일(지금은 4·9일로 바뀌었다)이면 대학 선후배, 동기들과 구경에 나섰다. 1910년대 시작돼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성장은 포목, 청과, 잡화 등 볼거리가 풍성했기 때문이다. 개, 오리, 닭, 고양이 등이 자태를 뽐내던 가축전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배고픈 대학생들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장터 골목마다 넘쳐나던 싸고 특색 있는 먹거리가 최고였다. 시래기국밥, 선지국밥, 보리밥 등을 2000원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어쩌다 돈이 모자라 한 사람 몫을 덜 시키면 국밥 할머니는 “걱정 말고 실컷 먹어 이놈들아, 니덜 나이엔 많이 먹어야 힘도 쓰고 공부도 하는겨”라며 뚝배기가 넘치도록 음식을 담아 건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성에 장이 서는 날에는 비가 자주 내렸다. 국밥 할머니는 한 많은 원혼들이 떠돌아다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란 천막에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질 때쯤이면 장터는 온통 기름냄새로 가득했다. 이때부터는 막걸리와 전이 인기다. “언년아(충청도에선 어린 여자를 언년이라 부른다), 모둠전 한 접시 할겨? 돈은 다음 장날에 내면 되니께 걱정들 말고 먹어.”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국밥 할머니의 따뜻한 정을 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의 취향과 입맛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모둠-’과 ‘모듬-’ 중 어느 것이 바른 표현일까? 모듬과 모둠은 ‘모으다’의 옛말인 ‘모드다’, ‘모두다’에서 유래했다. 각각의 어간에 명사형 어미 ‘-ㅁ’이 붙어 나온 말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국립국어원은 현대국어에는 모드다, 모두다라는 표현이 없지만 북한과 중국의 일부 지역에는 ‘모으다’의 의미로 아직도 남아 있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어원적으로 봤을 때 모둠과 모듬 둘 다 바른 표현이다. 그런데 국어원은 모둠만을 표준어로 삼았다. 모둠냄비, 모둠발, 모둠꽃, 모둠냄비, 모둠앞무릎치기 등과 같이 ‘모둠’이 들어 있는 단어들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모둠’을 표준어로 정했다고 설명한다. 초·중등학교에서 효율적인 학습을 위해 학생을 작은 규모로 묶은 모임 역시 ‘모둠’으로 이름을 정하고 사전에 올렸다(1999년). 따라서 ‘모듬전’ ‘모듬회’ ‘모듬초밥’ 등도 ‘모둠전’ ‘모둠회’ ‘모둠구이’ 등으로 표현해야 바르다.

시골 장터에는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마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치열한 눈빛들이 오간다. 하나라도 더 팔아 보려는 상인들의 간절한 눈빛과, 마음에 드는 물건을 적정한 값에 사려는 이들의 눈빛이다. 그리고 이미 흥정을 끝낸 이들의 흐뭇한 표정 또한 함께 어우러져 있다. 대화도 없이 바코드로 계산하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끝나는 그곳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고 보면 시골 장터엔 사람 사는 정이 넘쳐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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