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친구들아, 좇던 꿈을 이뤘는가?

입력 2015-06-0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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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만에 중학교 동창들이 모였다. 인심 좋은 중년 여성 분위기의 배 나온 친구, 이름이 바뀐(준미로 개명한 춘자는 ‘춘자’라 부를 때마다 귀엽게 눈을 흘겼다) 친구, 키가 훌쩍 큰 친구 등을 보며 세월을 실감했지만 어제 만났던 것처럼 이내 수다가 이어졌다. 햇빛처럼 찬란해야 할 중학 시절, 가난 때문에 고교 진학을 걱정하던 친구와는 와락 안고 눈물을 쏟았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떠나 외지의 산업체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친구다. 낮에는 공장에서 미싱을 돌렸고, 밤에는 엎드려 자는 친구들 틈에서 악착같이 공부해 지금은 중소기업 총무부장이란다. 이름만큼(친구의 요청으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게 아쉽다)이나 최선을 다한 그 시절의 눈부신 이야기에 울다 웃다를 반복했다.

중년임에도 여전히 순수함과 순정이 많은 친구들을 보니 꿈 많던 중학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84년 10월께 수학 담당인 담임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뜬금없이 칠판에 커다랗게 ‘꿈’을 쓴 후 각자의 꿈을 발표하라고 했다. 쌀집 주인, 교사, 9급 공무원, 여군, 현모양처 등 저마다 장래희망을 이야기했다. 이번 모임에서 그때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웃었지만 당시엔 꿈이 참 소박했다. 쌀 걱정하는 엄마를 위해 쌀집 주인의 꿈을 꾸던 친구는 유치원 원장이 되었다. 그런데 원아가 많아 원장실 한쪽에 쌀을 쌓아두고 산단다. 꿈을 주제로 발표를 하며 까르르 웃었던 그 며칠 후 학교 운동장에는 산업체 고등학교에서 온 버스 서너 대가 서 있었다. 진학희망서를 낸 친구들은 졸업도 하기 전 그곳으로 떠났다. 담임선생님은 버스에 오르는 친구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꿈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가을 하늘은 슬프도록 맑았다.

휴대폰이 없었던 아날로그 시절, 서로 연락하고 지내진 않았지만 각자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한 모습이다. 그런데 꿈은 좇는 걸까, 쫓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꿈은 좇는 것이다. ‘쫓다’와 ‘좇다’는 글 좀 쓴다는 사람들도 자주 틀리는 표현 중 하나다. 하지만 물리적 공간 이동의 유무만 구분해 쓰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어떤 대상을 잡거나 만나기 위해 직접 발걸음을 떼어서 옮기는 물리적 공간 이동이 있으면 ‘쫓다’가 바른 표현이다.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추격전을 벌였다’, ‘10대 청소년이 도망가는 도둑을 끝까지 쫓아 잡았다’ 등이 적절한 예문이다. 쫓다는 또 ‘황소가 꼬리를 흔들어 등에 붙은 파리를 쫓았다’와 같이 어떤 자리에서 떠나도록 내몬다는 의미도 있다.

반면에 ‘좇다’는 목표, 이상, 행복 따위를 추구하다, 남의 말이나 뜻을 따르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그 남자는 사랑보다 명예를 좇았다’, ‘열다섯 소녀는 선생님의 의견을 좇기로 했다’ 등의 예처럼 이동의 개념은 있지만 직접 발걸음을 옮기지는 않는다. ‘그녀의 시선은 멀어져 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좇고 있었다’처럼 눈여겨보거나 눈길을 보내다, ‘친구들과 옛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린 시절 기억을 좇고 있었다’와 같이 생각을 하나하나 더듬어 간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아직도 구분하기 어렵다면 이것 하나만 기억하자. 물리적인 이동, 즉 발을 떼어 직접 움직임을 나타내면 ‘쫓다’, 추상적이고 심리적인 이동, 지향을 뜻하면‘좇다’를 쓰면 된다.

동창은 같은 창문 아래에서 배운 사람으로, 같은 스승 아래에서 공부했다 하여 동학(同學)이라고도 부른다. 특히 산간벽지에서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낸 동창은 평생 가장 가까운 친구로 남는다. 세상이 각박하고 살림살이가 팍팍할수록 동창을 찾는 건 따뜻한 정과 끈끈한 유대감이 그리운 까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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