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의 맡은 일에 능숙하여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였고, 현숙한 행실은 고대의 유명한 현부(賢婦)에 못지않았다”고 하여 그녀의 품성을 보여준다. 인예태후는 자손의 번성과 함께 훌륭한 아내와 어머니로서 인주 이씨의 번성, 나아가서는 고려 문벌귀족의 시대를 연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선정왕후의 삶은 고려시대의 재혼, 가계 계승에 대해 여러 가지 점을 시사한다. 그녀는 모계혈통이 중시되던 고려시대에 남편에게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인 삶은 그다지 행복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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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의 효는 효도란 부모님의 의식주를 봉양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부모의 마음까지도 헤아리는 것에 있음을 깨닫게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은의 효는 효도의 행위가 아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딸 역시도 동일하게 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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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씨녀는 아버지의 딸이자 남편의 아내로서 가장 바람직한 모습을 가진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씨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다. 설씨녀는 주어진 상황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내는 여성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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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온달은 아단성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장사를 행하려는데, 상여가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며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라고 하니 그제야 상여가 움직였다. 평강공주는 신분의 벽을 넘어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을 진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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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두고 “곡하지 말고 상여가 나갈 때에는 북이나 음악으로 인도해 달라”는 파격적인 유언을 남겼다.
참으로 사람은 가고 없으나 그 자유정신은 역사의 물결을 타고 도도히 흘러 우리 곁으로 왔다. 삶과 죽음 모두 기꺼이 받아들인 그녀의 자유의지가 현재 각박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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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혜왕후는 “수신이란 나뭇가지를 꺾는 일처럼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라고 했다. 수신에 힘쓴 소혜왕후의 말년이 흉흉했던 것은 지나친 권력 행사 끝에 찾아올 파멸을 예견하지 못해서였다. 세월을 잘 헤쳐 온 끝에 맞이한 참담한 결과여서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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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의 아이는 왕이 되지 못했고, 그녀의 아이는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공식 사서가 어찌 승리자의 기록이 아니겠는가!
현종은 왕위에 오른 뒤 그녀를 효숙(孝肅)왕태후라고 추존하고, 무덤을 원릉(元陵)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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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북한의 주요 요직을 지냈다. 그러나 노년기엔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란 것으로 지극한 모성도 보였다. 아버지 덕에 잘된 자신처럼 자녀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랐으리라. 90세 넘어 세상을 떠난 그를 북한에서는 크게 애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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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역사교과서 문제 등 현안에 대해서도 면밀히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황 권한대행의 신년 기자회견 모두말씀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 저는 정부의 새해 국정운영 방향과 주요내용을 국민 여러분께 보고 드리고자 합니다.
작년 12월 9일부터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저에게 맡겨진 막중한 소임을 다하기 위해...
단지 함남 인사들의 숙청 과정에서 그도 숙청된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민족과 여성을 위해 꿋꿋이 당당하게 싸우고 지켜낸, 투지와 열정으로 가득 찼던 그가 해방 후 분단의 장벽에 가려 생사도 모른 채 사라지고 만 것은 정녕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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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위원회, 장애인위원회 인권위원회, 실버세대위원회 등 모든 당기구에 국민공모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당무운영이 국민에 의해 결정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3정 혁신의 두 번째인 정당혁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정당혁신은 'Back to the Basic(이제 정상으로)'을 지향합니다.
그간 새누리당은 계파정치에 의한 갈등과 반목을 되풀이했습니다. 민심을...
1947년에도 선전에서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1948년 4월에야 귀국하였다. 젊음을 조국을 위해 헌신한 열정과 용기는 간 곳 모른 채, 1976년 운명하기까지 내내 가난에 시달리는 고달프기만 한 삶이 이어졌다. 1977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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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의 짧은 생이지만 조국의 해방을 위해 다 바친 그의 묘소는 돌보는 이 없이 거의 방치된 상태이며, 헌신적인 항일 투쟁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나마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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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많은 대동강의 새벽 햇살에 지는 이슬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지만 한국노동운동 역사상 최초의 고공 농성자로 이름을 새기고, 노동 여성 투쟁의 총총한 빛나는 별이 되었다. 일제의 민족 차별에 반대하는 노동운동을 전개한 그에게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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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나이에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청에 끌려갔다가 귀환 후 병사하고 만 의순공주의 존재는 병자호란 패전이 낳은 조선 왕조의 깊은 상흔이었다. 진짜 공주 대신 가짜 공주가 된 의순공주를 올바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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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음식디미방’은 직접 음식을 만드는 여성이 한글로 지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한문을 구사할 줄 알던 장씨가 여성(딸)들을 위해 선택한 이 같은 시도로 우리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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