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33. 안동 장씨

입력 2017-01-16 10:52 수정 2017-01-17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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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찾은 가치 ‘음식디미방’

“이 책을 이리 눈이 어두운 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 잘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이 책을 베껴가되 가져갈 생각 말며, 부디 상하지 말게 간수해 쉬 떨어버리지 말라.”

이 글은 안동 장씨(安東張氏, 1598~1680)가 남긴 당부의 말로 ‘음식디미방’ 끝부분에 나온다. 장씨가 ‘음식디미방’을 지은 시기는 일흔셋 무렵이었다. 노년에 완성한 요리책이 딸자식들에게 소중하게 전해지길 바란 장씨의 소망은 그 정성대로 이루어졌다. 오늘날까지 고이 전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장씨는 1598년(선조 31) 경북 안동에서 장흥효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장흥효는 관직에 나가지 않은 채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학문에 힘을 쏟은 학자다. 장씨는 아버지로부터 글을 익히고 경전 등도 배웠다. 시도 잘 지었고, 글씨체 또한 호방하고 굳세었으며 그림도 뛰어났다고 전한다.

장씨는 열아홉에 아버지의 제자 이시명(1590~1674)과 혼인했다. 당시 이시명은 사별한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딸이 있었다. 이시명의 둘째 부인인 장씨는 딸 둘과 아들 여섯을 낳았는데, 그중 셋째가 학자로 이름을 떨친 갈암 이현일이다.

장씨는 혼인 후 친정과의 끈을 놓지 않아 일 년에 한 번씩 친정을 방문했다. 그러다 어머니 상을 당하자 친정에서 생활하며 아버지 재혼을 성사시킨 후에야 돌아왔다. 서른다섯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친정 식구들을 본인 집 근처로 데려와 돌보았고, 친정의 조상 신주를 모셔와 봄가을로 제사도 올렸다.

남편 이시명은 병자호란 이후 조선이 오랑캐에 짓밟힌 일을 분개하며 은둔 생활을 했다. 그러자 장씨가 “당신은 이미 세상에 숨어 집에서 생활하시니 아들 손자들에게 시와 예를 가르쳐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왜 세월을 그냥 보내시나요?” 하고 충고했다. 그러자 남편 이시명은 은둔 생활을 접고 후학 양성에 나섰다. 장씨는 자녀 교육에도 힘써 “너희들이 비록 글 잘한다는 소리가 있지만 나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선행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기뻐하며 잊지 않겠다”고 가르쳤다.

장씨는 말년에 앞서 소개한 ‘음식디미방’을 완성했다. ‘규곤시의방(閨壼是義方)’이라고도 불리는 이 요리서에는 총 146가지의 음식, 술 빚는 방법 등이 들어 있다. 과일 등 음식을 보관하는 요긴한 방법도 있어 17세기 양반가의 생활 지혜까지 엿볼 수 있는 생활백과서이다.

사실 ‘음식디미방’ 이전에도 몇몇 요리책이 나왔다. ‘수운잡방’(김수, 1530년경) ‘도문대작’(허균, 1605년) 등으로 조리 경험이 없는 남성들이 한자로 쓴 것이다. 이에 비해 ‘음식디미방’은 직접 음식을 만드는 여성이 한글로 지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한문을 구사할 줄 알던 장씨가 여성(딸)들을 위해 선택한 이 같은 시도로 우리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갖게 되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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