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와 학자ㆍ서생ㆍ상인들이 모이면서 베이징 내 학문과 문학의 대표적인 장소로 발전했고, 조선시대 후기 박지원ㆍ유득공ㆍ박제가 등 북학파 실학자들이 이 지역을 방문해 서적을 구매하고 중국 학자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전문대가 역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대표적인 거리로 유명하다.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박제가는 베이징을 다녀 온 후, 중국을 배우자는 뜻으로 ‘북학의’라는 책을 썼습니다.
“중국은 말과 글이 일치하며 집은 금색으로 채색되었다. 수레를 타고 다니며 어느 곳이든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사람들이 활기차게 거니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같은 시대 베이징에 온 홍대용이란 학자는 엄성, 육비, 반정균 등...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도 ‘임원경제지’에 “전어는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해서 파는데 귀족, 천민을 가리지 않고 돈 아까운 줄을 몰랐다 해서 전어(錢魚)로 불린다”고 썼다. 당시 양반, 서민 할 것 없이 전어 맛에 푹 빠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어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경상도에서는 ‘전애’, 강원도에선 ‘새갈치’, 동해에선...
(閨怨類)’, 애정의 결핍과 가난 등 박복한 여인의 한탄과 시름을 읊은 ‘탄식류(歎息類)’는 없다.
일찍이 실학자 이규경(李圭景·1788~1856)은 ‘시가점등(詩家點燈)’에서 이옥재 문학가족의 역사는 “우리나라에 일찍이 없었던 일[鴨東古今未曾有]”이라고 대서특필하였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성리학에서 출발해 실용 학문으로 외연을 넓혀가던 실학자들이 깊이 연구한 대상 중 하나였다.
빙허각의 본관은 전주이며 서울 태생이다. 아버지는 이창수, 어머니는 진주 류씨로 류담의 딸이다. 집안은 아버지 이창수, 숙부 이창의, 오빠 이병정에 이르기까지 고위 벼슬을 지낸 명문가이며 당색을 가리자면 소론(少論)이었다.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지은 이사주당...
집안 학풍은 실사구시의 실학을 추구했으며 돌, 물, 불, 별, 달, 해, 초목, 금수 같은 사물을 탐구하는 명물학(名物學)에 특장을 보였다. 혼인 후 글 읽는 티를 내지 않던 영수합이 오직 흥미를 보인 일이 수학이었다니 가풍이 끼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영수합은 다섯 형제 중 외동딸이었다. 몸이 허약했지만 영민하고 한 번 들은 것은 잊지 않았다. 영수합의 기질을...
그는 북학파 실학자들과 교유하면서 ‘백탑동인(白塔同人)’이라는 시동인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한시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는 박제가, 이덕무, 이서구와 더불어 ‘한학사가(漢學四家)’로도 불렸다.
풍천부사로 부임하던 무렵 그를 아끼던 정조가 사망하자 그는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은거하면서 개성·평양·공주 등 국내의 옛 도읍지를 유람했고 저술에...
영·정조 시대 실학자 홍대용은 서장관으로 임명된 작은아버지 홍억(洪檍)의 수행군관이라는 명목으로 1765년 겨울 중국에 갔는데, 60여 일간 베이징(北京)에 머물면서 항저우(杭州) 출신 중국 학자들과 개인적인 교분을 쌓게 된다. 이들과 알게 된 사연이 재미있다. 홍대용의 일행 중에 이기성(李基成)이라는 무인(武人)이 원시경(遠視鏡:망원경)을 사고자 베이징 유리창...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관장 권영국)은 설립자인 고(故) 매산 김양선 교수가 수집한 홍양후 서찰첩 '고칭연사(古稱燕士)' 두 개의 책을 탈초ㆍ번역해 '고칭연사-중국선비가 홍양후에게 보낸 편지와 시문'이라는 제목으로 발간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서찰첩은 19세기 초반 청나라 선비들이 삼사(三斯) 홍양후(洪良厚)에게 보낸 편지 37통을 모아...
다산 실학과 주자 성리학의 본성론에 관한 탐구(윤리와 사상 5번), 강원지방의 지역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탐구 설계(한국 지리 7번), 경제 활동의 세계화를 이해하기 위한 조사 내용 탐구(세계 지리 14번), 중국 원 왕조 시기의 문화에대한 탐구(세계사 4번), 금융 상품의 특징에 대한 탐구(경제 7번), 대륙별 화석에너지 생산량 비중 삼각그래프에 대한 자료 분석(세계...
실학자 최한기나 고위 관료인 신헌의 도움도 컸다.
우리가 대동여지도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그 정확성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첫째로 높은 수준의 지리 정보를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목판으로 인쇄하여 보급한 점이다. 이는 마치 컴퓨터의 주요 프로그램과 백신을 무료로 모든 네티즌들에게 보급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는 이미 정보의 민주화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19일 2회차 강연에는 '조선 실학자, 라이벌 다산과 연암'이라는 주제로 고미숙 평론가를 초청, 조선 최고의 문인이자 학자로서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다산과 연암의 넓고도 깊은 문학적 세계관을 살펴볼 예정이다.
21일 3회차에는 희망 중학생 40명을 대상으로 남양주 다산유적지를 탐방, 다산문화교육원 안미옥 사무국장의 안내로 ‘낮은 담 너머로 백성들을 바라본...
그러나 조선 후기 1차 사료를 직접 검토하는 실학적 학풍이 유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학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 내에서 찾은 정약용도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의 사군총고(四郡總考)에서 “지금 사람들은 낙랑군 소속의 여러 현이 요동에 있었다고 많이 생각한다”고 부기했을 정도로 다산 생존 시의 많은 학자들은 낙랑군의...
그의 학문 체계는 실학자 유형원과 이익의 중농주의를 이어받은 것이고, 또한 박지원 등 북학파의 기술도입론을 수용한 것이다. 대표적인 저서로 ‘정다산전서(丁茶山全書)’가 있는데, 그 안에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마과회통(麻科會通)’ ‘모시강의(毛詩講義)’, ‘매씨서평(梅氏書平)’ 등이 실려 있다.
청렴하면 생각나는 위인으로 많은 사람들이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을 떠올릴 것이다. 평생 겸손함을 강조하며 청렴하게 살았으며 그의 저서인 목민심서(牧民心書)의 ‘청렴이란 공직자의 본질적인 임무고 모든 착함의 근원이요 모든 덕의 뿌리이다’라는 글귀를 통해 오늘날 공직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청렴은 끊임없이 올바른 행동의 실천을...
조선 후기 일부 실학파 학자가 식민사학자들과 같은 주장을 했다는 것이 그 논거다. ‘한사군=한반도’ 설을 차마 실학이라고 명명하지 못하고 이런 주장을 한 것인가? 조선 후기 일부 유학자들이 기자 존숭 차원에서 그렇게 주장했지만 그들이 지금 환생한다고 해도 강단 사학자들의 주장을 옹호해줄지는 의문이다. 선현들의 주장을 아전인수로 해석해서 매도하는 것은...
조선후기 실학자 이익이 지은 ‘성호사설’에는 숙종과 고양이 ‘금손’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성호사설’에 다르면 숙종이 아버지 현종의 묘소를 찾았다가 그곳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곤 궁으로 데려온다. 숙종은 고양이에게 아버지 현종의 넋이 있다고 믿었고, 금손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며 애지중지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숙종은...
조선후기 실학자이자 과학사상가인 홍대용은 1765년 사신으로 북경을 방문한 뒤 청나라 선비들과 서찰을 통해 교류를 시작했다. 이같은 교류는 조선 문인들 사이에 관심과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당시 팽배해있던 숭명반청(崇明反淸:명나라를 숭상하고 청나라를 반대하는 사상)에서 탈피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홍대용에게 서찰을 보낸 중국 문사는 엄성·엄과 형제와...
그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익의 ‘성호사설’을 인용,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은 간언하는 신하가 없다는 사실을 걱정하지 말고 신하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을 근심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해당 글은 현재 비공개 상태입니다. 국민의당 측에 따르면 A 보좌관은 인사와 관련한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뿐만 아니라 경학과 실학 등의 다양한 학문까지 아우르며 학예일치의 경지에 오른 추사, 절대적인 명성을 얻은 점 또한 베토벤과 유사했다.
“베토벤이 몸에 병이 생기며 찾아온 내적 고통을 앓았다면, 추사는 역적으로 몰려 유배를 갔으니 외부에서 온 고난에 시달린 셈이죠. 베토벤이 고난을 이겨내고 위대한 곡들을 작곡했듯, 추사 역시 세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