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내정자는 경북 예천 출신으로 청암고를 졸업하고 지난 1981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 입사한 뒤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1999년 한국노총 부위원장과 금속노련 부위원장에 선출됐고, 2008~2011년 한국노총 위원장을 역임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노동부 최저임금위원, 중앙노동위 근로자 위원, 노사발전재단 공동이사장 등도 지냈다.
2008년에는...
안병철 전무는 LCD의 태동기였던 1984년에 금성사로 입사해 LCD 기술의 초창기 연구에 참여했고 1999년 LG디스플레이로 옮긴 뒤에는 패널공정기술팀과 구미연구소 등을 거쳐 지난 2008년부터는 LG디스플레이의 OLED 개발을 책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안병철 전무는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초석을 닦고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 해 온 업계 산증인으로서 그...
1958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를 세워 전자산업에 뛰어든 구 창업주는 1958년 최초의 국산라디오를 시작으로 1965년에는 최초의 국산 냉장고를 만들었다.
이어 1966년에는 최초의 흑백TV를 출시하며 국내 전자사업의 태동을 이끌었다.
그러던 1968년 삼성전자 이 창업주가 본격적인 전자산업 진출을 선언했다. 이에 구 창업주는 "(이익이)남으니까 하려고...
구인회 창업회장은 1958년 금성사(現 LG전자)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1959년도에 국내 최초의 국산 라디오를 비롯해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일상 생활에 꼭 필요한 전자제품을 국내 최초로 개발·생산해 한국 국민의 생활문화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1960년대 전력·통신 인프라 구축이 절실했던 시기에 전력 및 통신용 케이블, 전화기 및 교환기...
금성사(현 LG전자)가 설립된 것은 1958년이었다. 설립초기부터 국산 라디오 생산 준비를 해 1959년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외국제 선호경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가 5.16 군사혁명 이후 밀수품 단속이 강화돼 금성사는 어려운 고비에서 회생했다. 특히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이 전개되자 라디오가 품절될 정도로 잘 팔렸다.
1961년 12월 KBS...
이후 1963년 금성사(현 LG전자) 상무를 시작으로 LG그룹의 전자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를 거쳤고 1987년부터는 호남정유(현 GS칼텍스) 사장을 맡는 등 LG와 GS그룹의 성장에 많은 기여를 했다.
1978년부터 1982년까지는 한·독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지난 1996년과 1997년에는 한·중남미협회장을 맡아 멕시코,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정훈 대표이사는 서울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뒤 동대학원에서 전기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금성사 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있다가 1993년 하우를 설립했다. 99년 켄처기업과 병역특례기업으로 지정받았고 정부통신부 우수 신기술 IT업체로 선정되는 한편 이노비즈(inno biz)기업으로 지정됐다.
장병우씨는 1946년생으로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에 입사해 럭키, 금성사, LG상사, LG산전 등을 거쳐 1999년부터 2008년 까지 LG오티스엘리베이터, 오티스엘리베이터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장병우 내정자는 8일 현대엘리베이터 이사회를 통해 신임 등기이사 후보로 추천됐으며 오는 25일 주총과 이후 이사회를 통해...
LG전자(당시 금성사)는 1960년대 초부터 CRT TV 개발에 착수했고 국내 최초로 흑백 CRT TV(VD-191)를 생산했다. 1978년에는 히타치 제작소와 컬러 브라운관 기술제휴를 맺고 컬러 CRT TV 생산을 시작했다.
동남전기는 1967년 일본의 조천전기(현 샤프)와 기술 제휴로 샤프TV 판매에 나섰다.
뒤이어 삼양전기·천우사·동신화학·대한전선·삼성산요 등이 미국...
금성사 브랜드로 지난 1966년 첫 선을 보인 LG전자의 브라운관 TV는 45년간 생산됐다.
LG전자는 “브라운관 TV 판매 비중이 올해 3%에도 미치지 못해 생산을 접기로 결정했다”며 “오는 2012년 말이면 국내에서 아날로그 방식의 TV 전파 송신이 중단되는 점도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TV 생산업체들의 브라운관 TV 생산 비율은 90%에...
금성사(현 LG전자), LG산전, 미래산업을 거친 그는 “엔지니어가 적성에 맞고 평생 기업가를 꿈 꿔 본 적도 없었는데 내가 개발한 제품이 상품이 되지 못한 경험을 겪으며 사업과 연구를 모두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런 욕심과 한번 개발한 제품은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고 대표의 고집이 지금의 고영테크놀로지를 만든 것이다.
◇액정표시장치...
지난 2004년 GS그룹이 LG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됐을 때 ‘GS’라는 그룹명이 ‘Gold Star(금성사의 영문표현)’의 약자라는 해석이 많았지만 정작 그룹 측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에 편리함, 편안함, 즐거움을 주는 생활가치 향상을 목표로 ‘Good Service’의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을 내놓은 적은 있다.
GS의 새로운 브랜드...
구 부회장은 지난 1987년부터 1995년까지 금성사(LG전자 전신)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후 LG전자와 LG반도체,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등 25년간 전자관련 계열사에서 근무한 경험도 이번 인사의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구 부회장이 LG필립스LCD를 이끌 때 대규모 실적 악화가 발생, 경영진으로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이후 와신상담 끝에 LG상사의...
LG전자를 실적부진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소방수로 등장한 구 부회장은 지난 1994년부터 LG전자 전신인 금성사에 재직한 바 있으며, 2006년 12월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로 퇴임할 때까지 LG전자와 LG반도체 등 전자관련 계열사에서 근무한 바 있다.
또 최근 3년간 그룹 계열사 중 상대적으로 비중이 약한 LG상사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LG상사의...
LG전자의 전체 TV 판매량 중 브라운관 TV의 비중은 10년 전 90%에 육박했지만 올 상반기에는 2%대에 그쳤다.
LG전자의 브라운관 TV는 옛 금성사가 1966년부터 생산을 시작해 지금까지 45년간 만들어졌다. 이 회사는 인도와 베트남, 브라질, 중국, 이집트 등 해외 생산지에서는 브라운관 TV를 계속 생산할 예정이다.
구 부회장은 지난 1994년부터 LG전자 전신인 금성사에 재직한 바 있으며, 2006년 12월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로 퇴임할 때까지 LG전자와 LG반도체 등 전자관련 계열사에서 근무한 바 있다.
또 최근 3년간 그룹 계열사 중 상대적으로 비중이 약한 LG상사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LG상사의 실적으로 대폭 상승시켜 '와신상담(臥薪嘗膽)'할 것이라는...
럭키, 금성사, 럭키금성상사 등 계열사별로 다양했던 기업명을 LG로 바꾸면서 그룹 아이덴티티를 통합하고 비전과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할 수 있는 브랜드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그룹 CI 변경후 LG브랜드의 글로벌 인지도도 크게 상승했다. 1998년 40개국, 2009년 65개국을 대상으로 LG전자 비보조인지도를 조사한 결과, LG브랜드의 글로벌 인지도는 98년 9.4...
이 후 금성사(옛 LG전자) 대표이사 부사장, LG전자 대표이사 사장, 부회장, 회장을 거쳐 LG산전(현 LS산전)과 LG전선(현 LS전선)을 거쳐 현재 그룹 회장과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다.
발로 뛰는 CEO로도 잘 알려진 구자홍 회장은 LS 그룹이 LG그룹에서 분리 후 지주사체제를 갖추는데 있어서 핵심인물이다.
LS는 지난 2008년 7월1일부로 지주사체제를...
이 회사의 남용 부회장은 지난 1976년 전신인 옛 금성사 입사를 시작으로 LG전자와 LG그룹 및 LG그룹의 통신 3사를 거쳐 2007년 LG전자에 부회장으로 돌아왔다. LG전자 멀티미디어 사업본부장을 맡을 당시 수익성에 어려움을 겪던 사업본부를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으며, LG텔레콤 대표 취임 이후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가입자 65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