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차라리 모병제를 한다면

입력 2014-08-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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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경 온라인뉴스부 차장 겸 뉴스팀장

미국의 유명 뮤지션 마크 아이샴의 트럼펫 연주를 배경으로 한 편의 영화 티저가 흐른다. 군복을 입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다양한 장면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그려지며 마지막으로 “저는 미국의 육군입니다”라고 자랑스럽게 합창한다. 이들의 비장한 표정에서 애국심이 가득 묻어난다.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 같지만 이는 미 합중국 육군이 지난 2006년부터 쓰고 있는 신병 모집 TV 광고다. 슬로건은 ‘Army Strong.’

미국은 남북전쟁 때부터 징병제를 고수하다 1973년부터 모병제로 전환, 21세기 들어서 슬로건을 더 자주 바꿔가면서 공격적인 모병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인기가 있었던 슬로건은 20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Be All (That) You Can Be’다. 네가 되고 싶은 모든 게 돼라, 당장 육군에 들어오면 못할 게 없을 것만 같은 사탕 발림 문구다. 미국의 유력 광고대행사인 에이어 앤 선이 만든 이 광고는 군은 물론 대중의 사랑까지 받으며 장장 20년간 육군의 모병 광고로 쓰였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미국이 대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의 파병이 늘자 육군의 신병 모집은 녹록지 않게 됐다. 당장 전쟁터로 끌려나가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심이 군대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기다 개성이 강한 신세대들을 획일화된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군의 과제였다.

궁리 끝에 나온 것이 ‘Army of One(2001)’이었다.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레오 버넷이 이 슬로건을 내놨을 때 군 상부에서는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획일성과 팀워크를 중시하는 군을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젊은이들의 공동체로 인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슬로건은 예상외로 젊은층의 호응을 얻어 당시 모병 인원이 목표치를 훌쩍 뛰어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 육군은 이후 신병 모집 광고에 더욱 공을 들여야 했다. 해외 파병 인원이 갈수록 늘면서 사병은 물론 장교 모병까지 어려워져 아예 사병과 장교 모집 광고를 각각 따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일반 상업광고는 분량이 편당 15초이지만 미 육군은 몇 배의 시간을 들였다. 비용도 2배 이상이 들었음은 물론이다.

모병제이다 보니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이라 해도 신병 모집은 이처럼 무기 하나 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모병은 거저먹기다. 징병제이다 보니 정부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때가 되면 일정 자격을 갖춘 장정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줄줄이 입대한다. 이들은 입대 후 개인의 성향 같은 건 깡그리 무시된 채 역시 정부가 정해 놓은 획일화된 환경에 놓이게 된다. 신병 모집에서부터 입대까지 정부는 큰 노력 없이 귀한 인재들을 손쉽게 맞는 셈이다.

입대 후 사병 관리가 철저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전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제대 시까지 군대에 간 자식의 무사생환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최근 몇 달 새 일어난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과 ‘윤 일병 집단 폭행 사망사건’ 때문에 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고 밤잠을 설치는 부모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일련의 사건은 군내에 만연한 해이한 군 기강이 일부 장교와 사병들 사이에 생명경시 풍조를 싹트게 했다고 볼 수 있다. 폐쇄된 공간에서 한가롭게 지내며 궁극의 주적도 망각하고 힘없는 후배를 괴롭힌 병사들, 이런 공공연한 불문율을 알면서도 눈 감아온 당국. 진정한 애국심과 대의명분,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징병제의 부당함과 남녀 형평성 등을 이유로 모병제의 필요성은 진작부터 제기됐다. 그러나 모병제를 논하기에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인 점이 걸린다.

전시도 아닌데 내무반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느니 입영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 경우 ‘강한 친구 대한민국 육군’이 신병을 모집한다면 몇 명이나 지원할까. 슬로건만 따라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미국의 모병 노하우부터 부지런히 배워둬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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