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선 특수? 그게 뭔데요"… 절박함마저 경기한파에 얼었다

입력 2012-11-2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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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인쇄골목, 남대문ㆍ동대문 시장을 가다

▲대통령선거 등 선거철이면 호황을 누리던 인쇄업이 경기침체로 인해 폐업이 잇따르는 등 대선특수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충무로 인쇄골목이 썰렁하기만 하다. (사진=양지웅 기자)
“이런 불황은 10년만에 처음이다. 여기는 대선 대목과 전혀 관련 없는 고립지다.”

18대 대선을 한 달 앞둔 지난 19일 서울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만난 D 인쇄소 유 모(45·인현동) 사장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숨을 쏟아냈다.

기자가 만난 인쇄 자영업자들은 디지털 기기, 인터넷 업체, 그리고 대기업의 자체 경영인쇄소의 등장에 갈 곳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경기가 사상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버틸 힘을 잃은 모습이었다. 대선 대목이 사라진 2012년 인쇄골목과 재래시장의 온도는 일찍 찾아온 겨울 보다 더 차가웠다.

◇점포 3분의 1 줄고…15년 호떡 장사는 올해로 장사 끝 = 인쇄골목 곳곳에서 소량인쇄, 급한 인쇄도 가능하다며 플랜카드를 내걸었지만 점포에는 직원만 자리를 지키고 발길은 뚝 끊겼다. ‘1장도 출력가능하다’는 문구를 내걸 정도로 상인들은 절박했다. 연하카드 기계는 출력되는 것 없이 헛돌아가는가 하면 까만 기름으로 얼룩진 기계는 오랫동안 멈춰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E 인쇄소 김 모(44·인현동)씨는 지난 17대 대선 때보다 어려워졌다고 증언했다. 2007년에 비해 인쇄골목 점포들이 약 3분의 1 이상 줄었다는 것.

김 씨는 “소리 소문도 없이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인쇄골목의 현실”이라며 “선거물량이 예전과 달라서 일부 계약 업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문을 닫은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부동산에서 이런 현실이 정면으로 드러났다. 월세 물량은 어느정도 나오지만 점포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곳 부동산 관계자들은 “재개발 지역이라서 매물이 나가지도 않는다”며 “개별 점포는 물론 부동산도 다 죽게 생겼다. 커피숍도 들어왔다가 망하고 나가는 곳이 여기 인쇄골목”이라고 말했다.

인쇄골목의 어려워진 현실은 당장 주변 음식점, 노점상으로 확대됐다.

15년간 인쇄골목에서 호떡 노점상을 해 온 조모(64·인현동)씨는 이번 대선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할 계획이다. 700원짜리 호떡조차 부담스러워진 인쇄골목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 탓 이다.

조씨는 “인터넷이면 다 되는데 누가 인쇄골목까지 오겠냐”며 “여기서 호떡장사를 하느라 청춘을 다 보냈지만 장사가 너무 안돼서 올해 안에 접을 계획”이라고 한탄했다.

▲일찍 찾아온 추위와 국내 경기침체로 인해 서울 남대문 시장을 찾는 고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사진=양지웅 기자)
◇외국인이 점령한 동대문 = 내국인이 빠져나간 동대문에는 중국·일본 쇼핑객들이 자리를 메웠다. 19일 자정이 지날 무렵의 두산타워에서는 중국인들이 한 손에는 카페베네 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장근석이 프린팅된 네이처리퍼블릭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토니모리·에뛰드하우스· 롯데면세점의 쇼핑백을 잔뜩 손에 들고 가는 그들은 동대문의 큰 손이다.

두산타워 내 미샤 매장 직원은 평소에는 외국인 손님 비율이 60~70%지만 밤에는 80~90%에 달한다고 했다. 이 직원에 따르면 미샤는 중국에서 백화점에 입점돼 있어 명품 브랜드로 취급받는데 국내에 선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살 수 있어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설명이다.

반면 3층에 위치한 럭셔리존은 한산했다. 내국인 직원 몇몇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어 을씨년스러움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두산타워 한 매장 관계자는 “중국인들이 두산타워를 점령한 것은 맞지만 저가 상품에만 관심을 보이고 구매를 한다”고 말했다.

◇개시도 못하는 날 많아…생존의 갈림길에 선 재래시장 =“안 좋아도 이렇게 안 좋을 수 없어요. 하루에 얼마나 파느냐가 아니라 개시를 하느냐가 문제라니까요.”

서울 남대문 대도은남 숙녀복 상가에서 여성복을 팔고 있는 상인 박남희씨가 대선을 앞두고 전해준 밑바닥 경기 상황이다. 문 닫을 시간에 겨우 개시를 하고 집에 들어가는 날이 허다하다는 게 박 씨의 설명이다.

남대문에서 안경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정호씨는 “경기는 대선과 상관없이 안 좋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외국인 관광객 때문에 가게 문을 열고 있다”며 “이들이 아니면 문을 닫아야 할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도 남대문 시장과 다르지 않았다. 한복과 침구류를 파는 구역에는 오가는 사람들 없이 상인들만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광장시장에서 일찍 가게 문을 닫을 채비를 서두르는 상인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선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선거가 끝나봐야 해결이 날 것 같습니다.” 광장시장에서 30년 동안 한복집을 운영해오고 있다는 강경선씨는 더이상 할말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입상품 등을 떼다가 파는 박은국씨는 “손님이 하루아침에 끊긴 것은 아니지만 선거가 있는 연말에 이렇게 장사가 안된적은 없었다”며“하루에 만원어치도 못파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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