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년 만입니다.
나를 닮은 캐릭터가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임, '친구모아'가 새 시리즈 '친구모아 아일랜드 두근두근 라이프(이하 친모아)'로 돌아왔는데요. 전작인 '친구모아 아파트'가 엉뚱한 매력을 자랑하면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만큼, 신작 발매 전부터 관심이 높았습니다.
이번 신작이 단순히 '새 시리즈'라서 인기를 끄는 건 아닙니다. 플레이어들은 캐릭터를 만들고 게임을 즐기는 데에서 이번 신작을 끝내지도 않는데요. 그 캐릭터로 이야기를 만들고 재밌는 장면을 연출하고, 또 이를 공유하면서 눈길을 끄는 중입니다.

'친구모아' 시리즈의 시발점은 닌텐도 DS의 '도모다치 컬렉션'입니다. '도모다치'는 '친구'라는 뜻인데요. 말 그대로 다양한 친구들, 미(Mii) 캐릭터를 지켜보는 게임입니다.
2009년 6월 출시된 이 게임은 내수용이었기에 일본 외 국가에는 발매되지 않았는데요. 2013년 4월 닌텐도 3DS 용으로 출시한 소프트웨어 '친구모아 아파트'를 통해 그래픽을 향상하고 여러 기능을 추가, 다양한 국가에 게임을 정식 발매했죠.
'친구모아 아파트'는 '내 주변 사람을 게임 속에 옮겨놓는다'는 콘셉트로 재미를 줬습니다. 이용자가 만든 미 캐릭터들이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관계와 사건을 지켜보는 구조죠.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조작하거나 스토리를 설정하기 보다는, 고민을 해결해주고 선택지를 제시하는 역할에 가까웠는데요. 친구 관계부터 연애, 결혼, 출산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예측 불가능하게 전개되며 일종의 '관찰형 시트콤' 같은 재미를 자아냈습니다.
여기에 엉뚱한 뉴스, 기묘한 꿈, 즉흥적인 노래 등 유머러스한 연출이 더해지면서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했습니다. 정교한 컨트롤이나 승부욕을 자극하기보다는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상황을 즐기는 게임에 가까운 셈입니다.
이 같은 흐름은 13년 만에 돌아온 신작에서도 이어집니다. 이번 시리즈는 무대를 '섬'으로 확장한 게 가장 큰 변화인데요. 캐릭터들이 야외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상호작용하고, 플레이어는 각종 시설을 배치하거나 환경을 꾸밀 수 있는 등 개입 범위를 보다 넓혔습니다.
여기에 외형 커스터마이징이 한층 세분화되고, 특정 캐릭터를 원하는 장소로 옮기는 등 플레이어의 직접 개입 요소도 강화됐는데요. 전작의 매력 포인트가 '지켜보는 재미' 수준이었다면 신작은 이를 유지하면서도 '설계하고 연출하는 재미'를 더한 모습입니다.

이번 신작에서 눈에 띄는 건 정체성을 직접 설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먼저 얼굴 커스터마이징이 전작 대비 크게 세분화됐는데요. 기본 파츠만으로도 귀여운 미 캐릭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피부 색부터 얼굴형, 눈·코·입·귀 모양을 선택할 수 있고, 속눈썹이나 눈썹, 눈동자, 애교살, 눈꺼풀, 입술 색 등 세부적인 요소도 고를 수 있는데요. 점이나 주름을 얼굴에 더할 수도 있습니다.
헤어 스타일에서는 앞머리와 뒷머리를 따로 설정할 수 있어 조합의 폭이 크게 늘었습니다. 정면, 양옆, 옆 등 머리를 묶는 법도 정할 수 있죠.
성별 시스템은 남성·여성으로 고정되는 구조가 아니라 제3의 성별 선택도 가능합니다. 여기에 연애 대상 성별을 별도로 설정할 수 있어 보다 많은 관계 형성이 가능하죠. 이 설정은 단순한 옵션이 아니라 게임 전반의 관계 구조에 영향을 주는데요. 시작 단계에서 가족 관계를 미리 설정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돼, 전작에서 발생하던 어색한 관계 전개를 줄인 점도 특징입니다.
여기에 페이스페인팅 기능까지 더해졌습니다. 얼굴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고, 특정 요소에 발광 효과를 넣는 것도 가능한데요. 단순한 캐릭터 제작을 넘어, 일종의 '디자인 작업'처럼 활용되는 모습입니다.
이에 각국의 '금손'들도 나섰습니다. 기본 파츠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만족하지 않고 페이스페인팅 기능을 활용해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 건데요.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재현,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면서 눈길을 끌었죠. X(옛 트위터)에는 '데스 노트'의 류크, 심슨 가족,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심지어는 박근혜, 이명박,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미 캐릭터가 잇따라 등장해 웃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꿀팁'도 오가는 중입니다. 더 다양한 재미를 위해 캐릭터를 많이 만들라거나 캐릭터의 성격을 다채롭게 배치하라는 식입니다. 다이소의 팁 터치 펜 등을 이용하면 조금 더 정교하게 페이스페인팅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조언도 SNS 상에서 수십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이 같은 흐름에 힘입어 '친모아'는 닌텐도 홈페이지 베스트셀러는 물론 아마존 재팬 디지털 게임 부문에서도 최상단을 차지하며 인기를 자랑 중입니다.

이번 '친모아'에 대한 관심을 단순한 신작 효과로만 해석하기엔 아쉽습니다. 지금의 소비 방식과 맞물린 구조적인 이유도 분명하기 때문인데요. 핵심은 '플레이'보다 '표현'과 '공유'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입니다.
먼저 이 게임은 초개인화와 다양성이라는 흐름을 반영합니다. 제3의 성별 선택과 연애 대상 설정, 가족 관계 사전 구성 등은 단순한 기능 추가를 넘어 이용자가 원하는 관계와 서사를 직접 설계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인데요. 현실에서의 정체성과 관계를 게임 속에 그대로 옮겨놓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를 반영하는 공간'으로 작동합니다.
여기에 시리즈 특유의 엉뚱한 상황 연출은 숏폼 콘텐츠와의 궁합을 극대화합니다. 갑작스러운 갈등, 황당한 대사, 예측 불가능한 사건은 이미지나 짧은 영상으로 선보이기 좋은 구조인데요. 이용자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 장면을 편집해 SNS에 공유하며 또 다른 콘텐츠로 소비합니다. '친모아'가 하나의 밈 생산 도구로 기능하는 비결이죠.
팬덤 문화와의 결합도 눈에 띕니다.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활용해 '최애'(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캐릭터를 재현하고, 이들을 한 공간에 배치해 관계를 설정하는 식인데요. '최애 조합'을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이 가능해지면서 게임은 일종의 팬덤 시뮬레이터로도 확장되는 모습입니다.
동시에 이 게임은 경쟁과 성취를 강요하지 않는 구조를 택합니다. 캐릭터를 조작해 결과를 만들어내기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상황을 관찰하고 가볍게 개입하는 방식인데요. '저자극 힐링' 콘텐츠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친모아'의 인기 요인은 어찌 보면 단순합니다. 게임을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를 표현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공유하는 흐름에 정확히 올라탄 거죠. 다만 전작에 비해 즐길 콘텐츠가 눈에 띄게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게임이 발매된 지 이제 일주일가량이 지났다는 점에서, 닌텐도의 향후 업데이트도 기대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