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월드컵 보면 안되나요? [해시태그]

입력 2026-06-1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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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학교에서 보는 법' 색출 논란으로 이어진 이유


▲학교에서 월드컵 보면 안되나요? [해시태그]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학교에서 월드컵 보면 안되나요? [해시태그]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와아~!

순식간에 주변이 덜컹대는 환호성. 모든 이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한 듯했는데요. 식당에서도 회사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서로를 부둥켜안은 ‘행복’이 가득했죠. 12일 점심시간이었습니다.

한국과 체코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이 열린 그 날의 풍경이었죠. 북미 멕시코에서 열리는 경기가 마침 한국의 점심시간과 딱 겹친 건데요. 그간의 월드컵에 비해 관심과 열기가 조용하다고 느꼈던 우려가 말끔히 날아갔죠.

한낮의 월드컵. 학교도 빠질 수 없었는데요. 알짜배기 후반 경기를 즐겼던 점심시간 1시간의 행복이었습니다. 학교와 선생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정규 수업시간 1시간을 미리 월드컵으로 할애해준 곳도 있었는데요. 즐거웠던 시청 영상을 SNS에 게재하는 학생들 사이 ‘색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축제 월드컵을 즐기는 것은 학교생활의 특별한 추억일까요? 정해진 수업을 다른 활동으로 바꾼 수업권 침해일까요?


▲12일 오전 축구 국가대표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첫 경기인 체코전을 앞두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거리 응원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오전 축구 국가대표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첫 경기인 체코전을 앞두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거리 응원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평일 한낮이지만 월드컵 거리응원은 곳곳에서 이어졌는데요. 서울 광화문광장과 여의도 일대에서 거리응원전이 펼쳐졌죠. 여름이긴 하지만 17~28도의 퍽 좋은 날씨 탓에 많은 이들이 몰렸는데요. 시작 전부터 자리를 잡은 이들과 별개로 주변 건물에서 점심시간에 거리에 나온 회사원들도 많았습니다. 소중한 점심시간을 응원으로 함께했죠.

아예 회사 사옥에서 월드컵을 즐기거나, 모두가 식당과 펍을 대관해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는데요. 이들의 응원은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직장인들의 부러움을 자아냈습니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죠. 경기 포천 신봉초등학교에서는 전교생 약 140명과 교직원들이 체육관에 모였는데요. 이 학교는 3·4교시를 창의적 체험 활동으로 변경하고 가로 7m, 세로 9m 크기의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중계했습니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자고 제안했고 학교장이 이를 승인하면서 정규 교육과정 안의 공식 행사로 진행됐는데요.

또 다른 초등학교에서는 경기 전날 학부모에게 “오전 11시부터 반 친구들과 함께 체코전을 관람한다”며 빨간 옷을 입고 와도 된다는 알림장을 보냈죠. 응원 간식과 페이스페인팅 준비까지 안내하며 즐거운 응원시간을 알렸습니다.

경북 포항고등학교 또한 비슷한 풍경이었죠. 경북매일에 따르면 학생 40여 명이 체육관에 모였는데요. 코트 한쪽에서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운동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원하는 학생들이 스크린으로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학교가 체육 교과와 연계해 마련한 활동이었는데요. 관람을 원하지 않는 학생에게도 운동이라는 선택지가 열려 있었죠.


▲'월드컵 학교에서 보는 법' 색출 논란으로 이어진 이유 (뉴시스)
▲'월드컵 학교에서 보는 법' 색출 논란으로 이어진 이유 (뉴시스)


그러나 모든 학교가 화면을 켠 것은 아니었습니다. 설사 영상을 틀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행복했던 시간’으로 마무리되진 못했는데요. 논란은 경북의 한 고등학교에서 불거졌습니다. 수업시간에 체코전을 보여준 교사들을 학교장이 확인하려 했다는 내용의 학생 성명문이 온라인에 공개된 건데요.

학생은 성명에서 교사들이 학업에 지친 학생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려 경기를 보여줬지만, 학교 측이 이들을 ‘색출’하고 범죄자처럼 대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관련 내용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했죠.

학생의 주장에 공감한 이들은 월드컵 한 경기 정도를 함께 본 것이 큰 잘못이냐고 반문했는데요. 성적과 입시에 지친 학생들에게 교사가 건넬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반응도 이어졌습니다.

반대쪽에서는 교사가 선의로 시작한 일이라 해도 정규수업을 임의로 변경했다면 학교가 경위를 확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이 나왔는데요. 특정 교과나 특정 반만 경기를 봤다면 다른 학급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축구를 원하지 않는 학생에게 사실상 시청을 강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죠.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대한민국과 체코의 첫 경기가 열린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붉은악마를 비롯한 시민들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대한민국과 체코의 첫 경기가 열린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붉은악마를 비롯한 시민들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일반적인 학교 점심시간을 고려하면 정규수업과 직접 겹친 시간은 학교에 따라 한 시간 안팎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한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던 건데요. 누군가에게는 4년에 한 번뿐인 공동체 경험이지만, 기말고사와 수행평가를 앞둔 고등학생에게는 시험 범위와 내신 진도에 연결된 한 교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체코전이 열린 6월 중순은 상당수 고등학교가 1학기 기말고사를 2~3주가량 앞둔 시점인데요. 학교마다 시험 일정은 다르지만 대체로 6월 말부터 7월 초에 2차 지필 평가가 집중됐습니다. 고3 학생들은 6월 4일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를 치른 직후였고, 7월 8일 전국연합학력평가도 앞두고 있죠.

이번 논란에는 최근 학교 현장의 민원 부담도 겹쳐 있습니다. 교육부는 올해 1월 22일 ‘학교민원 대응 및 교육활동 보호 강화 방안’을 발표했는데요. 3월부터 교사 개인 연락처나 SNS를 통한 민원 접수를 차단하고 학교 대표번호와 온라인 소통시스템 등 공식 창구를 통해 학교가 조직적으로 대응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죠. 교육부는 일부 반복적·공격적 민원이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학생의 학습권까지 위축시키고 있다는 현장 목소리를 반영했다고 밝혔습니다.

학교에서 월드컵을 보여주는 문제 역시 양방향 민원에 노출될 수 있죠. 경기를 보여주면 “시험을 앞두고 왜 수업을 하지 않았느냐”는 항의가, 보여주지 않으면 “다른 학교는 모두 함께 봤는데 왜 우리 아이들만 기회를 잃었느냐”는 불만이 생길 수 있는데요.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대한민국과 체코의 첫 경기가 열린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붉은악마를 비롯한 시민들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대한민국과 체코의 첫 경기가 열린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붉은악마를 비롯한 시민들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교사 개인이 화면을 켜기도, 끄기도 어려운 이유입니다. 좋은 뜻으로 마련한 관람이 민원과 징계 논란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기면 교사들은 특별한 활동보다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되죠. 예정된 수업을 그대로 진행하는 건데요. 앞선 논란이 그 우려의 현실인 셈입니다.

‘2002 한일월드컵’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이런 풍경은 너무 낯선데요. 당시에는 학교나 수련회장에서 학생들이 함께 경기를 보 수업을 줄이거나 일정을 조정한 것이 당연했거든요.

해당 대회는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국내 10개 도시를 포함한 한일 양국에서 열렸고 한국 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진출했습니다. 월드컵은 축구대회를 넘어 국가적 행사로 받아들여졌죠.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 584곳이 월드컵 개막일이나 개최도시 경기일에 임시휴업을 계획했습니다. 초등학교 460곳, 중학교 90곳, 고등학교 34곳이었는데요. 경기장 인근이나 개최도시의 966개 학교는 월드컵 경기 관람을 현장체험학습으로 인정했죠. 세계적 축제를 교육 현장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진출 20주년 맞이 행사 (뉴시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진출 20주년 맞이 행사 (뉴시스)


학교별 단축 수업도 있었는데요. 개최도시에서는 경기 관람과 별개로 교통 혼잡에 대비해 수업시간을 조정에 나섰습니다. 대학들도 월드컵과 기말고사 기간이 겹치자 시험을 앞당기거나 늦추는 방안을 검토했죠.

당시에도 모든 학생이 축구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교통 혼잡과 소음, 수업 결손에 대한 우려도 존재했죠. 다만 월드컵을 함께 보는 것에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사회적 공감대가 컸는데요. 2002년을 지나온 세대에게 “그 월드컵을 모른다고?”라는 말은 어느새, 앞선 세대가 던지던 “1988 서울올림픽을 못 봤다고?”를 잇는 또 하나의 ‘라떼 질문’이 됐습니다.

해외에서도 월드컵과 수업시간이 겹치면서 비슷한 고민 사례들이 나왔는데요. 영국 가디언은 2010년 잉글랜드와 슬로베니아의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경기가 현지시간 평일 오후 3시에 열리자 수백 개 학교가 특별 운영에 들어갔다고 보도했습니다. 일부 학교는 대형 화면을 설치했고, 일부는 학생들이 집에서 경기를 볼 수 있도록 일찍 귀가시켰죠.

브라질에서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 당시 대표팀 경기가 평일 오후에 열리자 학교와 공공기관, 은행, 상점까지 운영시간을 바꿨습니다. 브라질 기업 4곳 중 3곳이 직원들의 경기 시청을 허용했고, 연방·주·지방정부도 공무원의 근무시간을 조정했는데요. 일부 기업은 경기 시작 45분 전부터 종료 45분 뒤까지 업무를 멈췄습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대한민국과 체코의 첫 경기가 열린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붉은악마를 비롯한 시민들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대한민국과 체코의 첫 경기가 열린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붉은악마를 비롯한 시민들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한국의 학교들은 곧 같은 선택을 다시 마주합니다. 멕시코전은 19일, 남아프리카공화국전은 25일 열리며 두 경기 모두 오전 10시에 시작하는데요. 체코전보다 정규수업과 더 많이 겹치는 만큼, 학교마다 다른 판단이 이어질 가능성도 커졌죠.

결국, 중요한 것은 ‘경기를 보여준다’가 아닌 어떤 목적과 절차로 운영하고 관람을 원하지 않는 학생까지 어떻게 배려하느냐인 셈인데요. 체코전의 한 시간은 누군가에게 오래 남을 추억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험을 앞두고 비워진 수업시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2년에는 모두가 같은 화면을 바라보는 일이 자연스웠는데요. 24년이 지난 지금은 그 화면을 켜기 전에 생각할 것이 더 많아졌죠. 월드컵이 덜 특별해진 것이 아니라, 학교가 함께 살피고 설명해야 할 목소리는 그만큼 다양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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