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독재 종식이 목적이던 1987년 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한민국의 가치·철학적 토대를 ‘자유민주’로 제시하면서도 통치체제에서 자유민주를 구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제도적 토대는 각각 삼권분립과 선거다. 1987년 개헌에도 의회는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고, 선거제도는 대한민국이 아닌 수도권의 이익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변질했다. 이에 개헌은 자유민주라는 가치·철학 관점에서 논의돼야 한다.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제에서 4년 중임제로 바꾸고,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 주기를 맞추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자유 측면에선 대통령과 여당이 분리돼야 한다. 여당이 대통령에 종속되면 사법부도 대통령에 종속된다. 국회의 대법관·헌법재판관 추천권에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반영돼서다. 입법·사법·행정권을 특정 권력기관이 독점하면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침해받은 개인은 권리를 구제받기 어렵다. 입법·행정에 저항해 사법을 찾아도 사법이 입법·행정의 편에 서기 때문이다. 이는 몽테스키외가 삼권분립을 제시하고, 미국이 삼권분립을 토대로 최초의 대통령제를 만든 배경이다.
대통령과 여당을 분리하려면 시급한 건 국무총리 폐지와 국회의원 국무위원 겸직 제한이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국무총리·국무위원으로 입각해 대통령을 보좌하고, 이후 ‘대통령 측근’ 딱지를 붙이고 여당에 복귀해 공천을 받거나 공천에 관여하는 당직을 맡고, 당 인사권과 공천권을 무기로 다른 국회의원들을 줄 세우는 구조에선 대통령과 여당·의회 분리가 어렵다. 애초에 국무총리제와 국회의원 국무위원 겸직은 대통령제가 아닌 의원내각제 요소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집권당이 총리 선출권을 갖기에 총리와 의회 간 관계가 한국처럼 수직적이지 않다.
국무총리 폐지와 국회의원 국무위원 겸직 제한은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과 삼권의 한 축으로 의회 위상·권능 회복의 출발이다.
민주주의 측면에선 소선거구제 중심 단원제 개편이 필요하다. 소선거구제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절반은 수도권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직능·계층 등을 대표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단원인 국회에서 300분의 1만큼만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수결로 안건의 가·부가 결정되는 시스템에서 소선거구제 중심 단원제는 비수도권 유권자와 소수 직능·계층 등의 주권을 제약한다.
단기적으로 양원제를 도입하면 이런 문제를 일부는 해소할 수 있다. 현행 국회를 하원으로 두고, 시·도별 2~3명(동수)으로 구성된 상원을 신설하는 방식이다. 양원제를 운용하는 국가들이 대체로 이 방식을 활용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도 1960년 참의원·민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를 도입했던 전례가 있다. 상원에 예산안 심의권을 부여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것이다. 이후에는 중대선거구제 도입, 비례대표제 개편 등 국회법 개정 논의도 필요하다.
새 정부 개헌의 목적은 자유민주라는 헌법 정신 구현이어야 한다. 가치·철학을 배제하고 각론만 고치면 권력 폭주, 대통령 파면과 같은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막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