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그곳에는 정글도, 맨해튼도 있었다”…한국 VRㆍAR 콤플렉스 가보니

입력 2017-03-3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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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VAC에 자리한 가상현실 체험장에서 견학을 온 학생이 정글을 체험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KOVAC에 자리한 가상현실 체험장에서 견학을 온 학생이 정글을 체험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엄마야! 어떡해…어떡해!”

앳된 여고생의 날카로운 비명이 허공을 가른다. 그녀는 지금 스키를 타고 빠른 속도로 협곡을 활강 중이다. 앞으로 고꾸라질만한 경사를 피하니 갖가지 장애물이 눈앞에 들이치고 있다.

눈앞에 VR(가상현실)기기를 착용한 그녀는 지금 가상현실을 체험 중이다. 때때로 비명을 지르거나 갑작스러운 장애물에 몸을 움츠리기도 한다. 눈앞으로 날아오는 장애물을 막아내느라 절박한 비명과 함께 팔을 허공에 휘두르고 있다. 이곳은 사무실이 빼곡히 들어선, 서울 마포구 상암동 누리꿈 스퀘어다.

◇인더스트리 4.0 시대 이끄는 가상현실 산업=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 4차 산업혁명의 커다란 축으로 자리 잡았다.

비슷한 이름의 두 가지는 각각의 특징을 지닌다. 가상현실은 전혀 다른 세계를 눈앞에 펼쳐보인다. 반면 증강현실은 현실과 똑같은 지형지물 위에 가상현실을 덧대는 방식이다. 두 가지 모두 새로운 세계를 눈앞에 펼쳐 보인다는 점은 똑같다.

인더스트리 4.0을 준비 중인 정부 역시 중장기 계획의 일환으로 가상 및 증강현실, 즉 VR과 AR 분야에 적극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개발자들과 기업에게 교육과 창업, 기술 및 인프라, 상용화 등을 연계 지원하는 VR 및 AR 복합지원센터 ‘한국 VRㆍAR 콤플렉스(KOVAC)’를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 세웠다. 지난 2월 공식 개관 이후 한 달여만에 이곳을 찾았다.

KOVAC은 VR과 AR관련 기술교육과 개발, 테스트, 마케팅 등을 지원한다. 개발자와 기업은 물론 연구기관 등도 입주해 있다. 관리와 운영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한국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맡고 있다.

4개층으로 구성된 KOVAC은 인프라지원과 테스트배드, VR캠퍼스, 유료 체험관 등으로 구성했다. 이 가운데 2~3층에 테스트배드와 VR캠퍼스가 자리 잡고 운영을 시작했다. 1층과 4층은 하반기에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한다.

▲가상현실은 산업현장에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기존의 2차원적 건축설계 대신 직접 건물 안에 들어가 정밀한 설계를 진행할 수도 있다. 사진은 VR디바이스를 이용해 추상화를 그려내는 모습.   (고이란 기자 photoeran@)
▲가상현실은 산업현장에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기존의 2차원적 건축설계 대신 직접 건물 안에 들어가 정밀한 설계를 진행할 수도 있다. 사진은 VR디바이스를 이용해 추상화를 그려내는 모습. (고이란 기자 photoeran@)

◇짜릿하고 박진감 넘치는 가상현실의 세계= 진흥원 VR산업진흥팀의 안내를 받아 3층 VR 캠퍼스에 먼저 들어선다. 이곳은 대학별 석ㆍ박사급 연구원들이 관련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VR랩, 장기와 단기 교육생을 위한 VR 교육 강의실이 널찍하게 자리잡았다.

입구에 들어서니 한 교육생이 열심히 가상현실 속에서 추상화를 그려내고 있다. 양 손에 VR디바이스를 쥐고 예술작품을 그려낸다. 건축설계를 예로 들면 이제 2차원적 설계도는 사라지고 실제 건축예정인 집 안으로 들어가 세세한 정밀설계까지 가능해진다. 모두 VR와 AR을 이용한 새로운 산업분야다.

나아가 자동차 엔진설계 역시 실제 엔진 안으로 들어가서 설계할 수도 있다. 엔진 내부로 들어가는 가상현실을 설정하면 정밀한 기계설계 또는 부분설계가 가능하다.

취재진을 위해 교육생들은 가상 현실 화성체험 프로그램 ‘마션(Marsion)’을 시현해 보인다. 한 교육생이 관절을 포함한 신체 곳곳에 센서를 장착한, 이른바 VR수트를 입고 등장한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모니터 속 우주인이 똑같이 움직였다. 궁금한 마음에 갖가지 주문도 해본다.

“한번 앉아볼래요? 손 좀 흔들어봐요. 제자리에서 한번 뛰어볼 수 있나요…” 모니터 속의 우주인은 교육생의 움직임에 오차 없이 잘도 움직였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화성을 상암동에서 체험하는 셈. 가본 적 없으나 모니터 속 배경은 오롯이 상상 속의 화성(Mars) 그대로였다.

이 같은 가상현실 프로그램은 당장 산업현장의 안전교육에도 쓰일 수 있다. 위험공간을 가상현실로 미리 체험하면 산업재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교육과정은 장기과 단기 과정으로 꾸려진다. 한 교육생은 “지금 초등학생의 65%는 현재에 없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된다”며 “VR전문가 역시 그런 시대로 이어지는 과도기에 존재한다고 본다”고 말한다. 젊은 학생들은 부지런히 가상현실을 눈앞의 현실로 가져다놓고 있었다.

▲VR수트를 입고 실제 화성(Mars) 착륙을 가정한 VR프로그램 시현 모습. 산업현장에서는 위험도가 높은 현장을 미리 가상현실로 체험하는 안전교육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VR수트를 입고 실제 화성(Mars) 착륙을 가정한 VR프로그램 시현 모습. 산업현장에서는 위험도가 높은 현장을 미리 가상현실로 체험하는 안전교육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VR의 현실감을 키우기 위해 청각과 촉각 콘텐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2층으로 내려가자 갖가지 체험장이 들어서 있다. KOVAC에는 14채널 사운드를 갖춘 체험공간도 존재한다. 일반 영화관이 5채널인 것을 감안하면 꽤나 앞선 시설이다.

방음재가 겹겹이 둘러싸인, 약 10평 규모의 적막한 공간에 들어서니 긴장감이 감돈다. VR기기를 머리에 쓰고 귀에는 헤드셋을 걸었다.

순간, 눈앞에 천길 낭떠러지가 펼쳐진다. 그 끝에 길게 뻗어나간 외나무다리가 있었고 기자는 어느 틈엔가 그 위에 올라서 있었다.

오금이 저려오며 한걸음 내딛기조차 두려워진다. 조심스럽게 바닥을 쓸어가며 슬며시 한 걸음 내딛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듯 ‘여기는 상암동이다. 여기는 상암동이다. 난 상암동에 있다’를 되뇌인다.

그러나 이미 무릎 아래로 힘이 빠지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다리가 오들오들 떨기 시작한 것. 그 순간, 저 앞에서 날렵한 드론 한 대가 맹렬하게 날아온다. 순간 멈칫하며 머리를 숙였다. 14채널 사운드 시스템은 스치듯 사라진, 드론의 프로펠러 소리를 원근감 있게 정확히 표현했다.

체험이 끝나고 VR기기를 벗어내자 주변 사람들이 웃기 시작한다. 멀쩡한 건물 바닥에 서서 기자 혼자 오들오들 떨었을테니 얼마나 우스웠을까.

◇국가전략 프로젝트로 성장한 VRㆍAR 산업= 우리나라는 지난해 8월 과학기술전략회의를 통해 가상 및 증강현실 생태계 구축을 국가전략프로젝트로 삼았다.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지원에 나선 셈이다.

KOVAC은 미래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서 설립하고 운영 중이다. 진흥원 VR산업진흥팀 이진우 수석은 VR관련 산업의 잠재력을 특히 강조했다.

“앞으로 VR관련 콘텐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할 겁니다. 많은 기술들이 발전하고 있는데 중소기업이 이런 공간을 직접 마련하고 운영할 수 없는 여력이 없잖아요. 우리는 그런 공간을 제공하고 교육도 하고 개발 지원도 담당합니다.”

정부는 향후 이곳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의 유휴공간을 VR산업 지원에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단계적인 정비를 통해 2020년까지 50여개 이상의 VR 및 AR기업을 집적할 계획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오는 그때까지 총 400억 원을 투입, KOVAC을 가상 및 증강현실 산업의 메카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가상 현실을 체험하고 돌아나오는 길.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로 미지의 세계에서 일상생활로 복귀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체험이었다. 서울 상암동 KOVAC. 그곳에는 정글도 있었고 뉴욕 맨해튼도 있었다.

▲실제 경비행기 조종석을 고스란히 옮긴 비행 시뮬레이션 모습. (고이란 기자 photoeran@)
▲실제 경비행기 조종석을 고스란히 옮긴 비행 시뮬레이션 모습. (고이란 기자 photoe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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