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道의 사회ㆍ경제학] 무도와 사회와 경제의 삼각관계

입력 2014-11-1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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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또 다른 길…학생들에겐 예절ㆍ체력ㆍ정신 수양 기회 제공

“태! 권! 도!” 사범의 굵직한 선창이 귀를 쫑긋 세웠다. 이내 아이들의 힘찬 구령이 이어졌다. 얼마 후 하얀 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의 손에는 가방이 없다. 그래서인지 표정도 밝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에선 홀가분함이 느껴진다. 아이들의 태권도 경력을 대변하는 형형색색의 띠는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매개체다. 세월은 흘렀어도 품띠에 대한 로망은 변하지 않았다.

태권도는 아이들의 일상이다. 오랜 경기 불황 속에서도 태권도는 뿌리 깊게 성장하며 사교육 속 또 다른 사교육으로 자리를 굳혔다. 어릴 적 하얀 도복 한 번 안 입어본 아이들은 많지 않을 정도다. 신체단련과 정신수양이라는 두 토끼 때문이다.

경기 수원에서 K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이세훈(39)씨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5~7세 유아 부모들의 상담이 많다. 단순히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서라기보다 집에서 가르치기 힘든 예절교육에 대한 기대가 크다. 불황 속에서도 태권도장이 꾸준히 운영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고 전했다.

어디 태권도만 그럴까. 합기도·유도·검도 등 무도(武道)에 대한 사회적인 기대치는 일반 스포츠와는 출발선부터 달랐다. 1953년 대한유도학교(용인대학교의 전신)가 설립됐고, 경희대학교에는 세계 최초 태권도학과가 개설됐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야구·축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왜 무도일까. 거기에는 무도와 사회와 경제의 미묘한 삼각관계가 존재했다. 올림픽 효자종목으로서 국가적 기여도가 높았고, 신체단련과 정신적 수련이라는 교육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었다. 선수 외에도 사범과 교사·경찰·경호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도 얻을 수 있었다. 허리띠 졸라매던 시절 무도는 출세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스포츠 평론가 신명철 씨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후 서양에 비해 신장의 열세에 놓인 우리나라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종목은 체급이 나눠진 무도(태권도ㆍ유도)나 격투기(복싱ㆍ레실링) 종목뿐이었다”며 “단순히 체력 단련이 목적인 다른 운동종목과는 달리 심신 수련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동시에 강조된 만큼 학교마다 무도 종목을 교과목으로 채택해 가르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무도는 역대 하계올림픽 무대에서 눈부신 성적을 남겼다. 1948년 런던올림픽부터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종목별 메달 획득 현황에서도 태권도와 유도는 각각 10개 이상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올림픽 금메달을 하나가 추가될 때마다 국민의 자부심과 사회·경제적 시너지 효과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무도의 이면에 자리한 씁쓸함은 지울 수 없다. 국제대회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비인기 종목이라는 굴레는 벗어날 수 없다. 용인대 김성섭 박사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도 힘들고 위험하다는 잘 못된 인식이 있어 부모들이 먼저 외면한다. 졸업 후 취업률도 예전 같지 않아서 무도가 마치 엘리트선수들을 위해 존재하는 모양새가 됐다”며 무도 강국의 씁쓸한 이면을 들쳐보였다.

김성섭 박사는 또 “최근에는 지나친 상업화로 인한 무도정신의 퇴색도 우려되고 있다. 선수들의 헝그리정신도 예전만 못해서 선수 수급에 어려움이 많다.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위기임에 틀림없다. 무도의 사회적·경제적 특수성을 인식하고 장기적 투자·육성이 절실한 때”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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