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신완식 DGB금융지주 시너지추진본부장을 비상임이사로, 김종두 대구가톨릭대 교수와 양병민 한국노총 장학문화재단 감사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김경규 신임 대표는 1960년생으로 한양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했으며, LG그룹 기획조정실과 LG투자증권 법인영업본부장, 우리투자증권 주식영업본부장을 지냈다. 2008년 6월부터 LIG투자증권 영업총괄을...
사립대학에서는 영남대, 인천가톨릭대, 대구가톨릭대, 동덕여대, 명지대 순으로 인문·사회 계열과 예체능 계열 간 차이가 많았다.
영남대의 경우 예체능 계열의 등록금은 880만 원으로, 인문·사회 계열 등록금인 580만 원보다 300만 원가량 높았다.
국공립대학에서는 서울대가 예체능 계열 등록금 740만 원으로, 인문·사회 계열 등록금인 500만 원보다 240만...
‘경산 하양지구 우미린’의 단지 주변으로 하주초교(확장 예정)와 지역 명문으로 손꼽히는 무학중·고교, 하양여중·고교, 대구가톨릭대 등이 위치해 뛰어난 교육여건을 자랑한다.
생활편의시설은 경산시립도서관, 경산시문화회관, 하양시외버스터미널, 메가박스(경산하양점), 하양삼성병원 등을 이용할 수 있다.
‘경산 하양지구 우미린’은 전 가구를 남향...
KEIT는 서강대학교와 대구가톨릭대학교가 KEIT의 지원으로 공동연구를 진행해 신생혈관 표적 및 치료가 가능한 금나노 복합체와 자기구동방식의 생체이식형 마이크로 펌프를 개발했다고 8일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2016년 3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총 7억 원의 정부출연금이 투입됐다.
망막변성질환은 스마트폰의 확대로 인해 노인뿐 아니라 40대에서의 유병율도...
교육과정 우수사례로는 서울여대 이종일 팀장과 대구가톨릭대 이성호 교수가 각각 ‘전공교육 플랫폼’과 ‘학습주기별 꿈(Cum) 인성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사례 발표를 한다.
또한 부산외대 서상범 교수와, 상명대 이현우 교수, 차윤미 연구원이 각각 ‘현대의 노마드(NOMAD) 교육 - 탄뎀 활동을 통한 경계 허물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통합을 통한 학생...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이 주최한 ‘부동산 불평등 해소를 위한 보유세제 개편방안’에서 ‘부동산 보유세 개편 시나리오별 세수액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전 교수는 “2015년 기준 우리나라 부동산 보유세 비율은 GDP 대비 0.8%다”며 “이를 1%로 올리려면 GDP를 1600조...
2부인 ‘가톨릭계대학 인성 교육 과정 운영사례’ 부문에서는 서강대와 대구가톨릭대학 인성교과 개발 사례에 대한 발표가 진행될 예정이다.
서강대는 이번 ACE+ 심포지엄은 앞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인성교육과 미래 대학 교육과정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좋은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림대 성심병원에 이어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도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강요했다는 내부 폭로가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대구가톨릭대 간호학과 대학생 및 병원 현직 간호사들의 온라인 익명 게시판인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는 25일 “저는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다. 성심병원에서 장기자랑이 이슈가 됐는데 우리도...
덕혜옹주(德惠翁主·1912~1989)는 고종이 환갑이 되던 1912년 5월 25일 덕수궁에서 태어났다. 고종의 고명딸로서 황실뿐만 아니라 국민의 큰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옹주를 지극히 사랑했던 고종은 1916년 덕수궁 준명당(浚明堂)에 유치원을 설립하여 옹주가 다닐 수 있게 하였다. 왕녀 중 공식적으로 유치원에 입학한 사람은 덕혜옹주가 처음이다....
덕온공주(德溫公主·1822~1844)는 1822년(순조 22) 6월 10일 창덕궁 대조전에서 순조와 순원왕후의 3녀이자 막내딸로 태어났다. 1829년(순조 29) 8세 때 ‘덕스럽고 온화하다’는 의미의 ‘덕온(德溫)’이라는 이름을 받아 정식으로 공주에 책봉되었다.
16세 되던 1837년(헌종 3) 8월 13일 생원 윤치승(尹致承·1789~1841)의 둘째 아들 남녕위(南寧尉) 윤의선(尹宜善·1823~1887)과...
강완숙(姜完淑·1760~1801) 골롬바(葛隆巴·Colomba)는 충청도 내포(內浦) 지방의 양반가문의 서녀로 태어나 덕산(德山)에 사는 홍지영(洪芝榮)의 후처가 되었다. 그러나 남편이 용렬하여 항상 우울한 나날을 보내면서 속세를 떠날 생각을 하였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시댁 사람으로부터 천주교 신앙을 처음으로 접하고, 예산에 살던 공씨(孔氏) 성을 가진...
향랑(香娘·1682~1702)은 경상도 선산부 상형곡(현 경북 구미시 형곡동)에 살던 양인 박자신(朴自申)의 딸이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슬하에서 자라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정숙하고 효순하였다. 날이 갈수록 계모의 박대가 심해졌으나 조금도 성내는 기색 없이 그 뜻에 순종하였다. 17세인 1699년(숙종 25)에 같은 마을에 사는 임천순(林天順)의 아들 칠봉(七奉)과...
우열녀의 이름은 말질진(末叱眞)이다. 1657년(효종 8) 경상도 의성현(義城縣) 동촌(東村) 점지동(店池洞)이라는 궁벽한 시골마을에서 목수의 딸로 태어났다. 21세 때 안동인 김덕립(金德立)과 혼인하였다. 시부모로부터 “우리 현부(賢婦)”라는 칭찬을 받으며 딸 하나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1683년(숙종 9) 어느 날 갑자기 침입한 도적의 칼에 남편이 찔리는...
지난해 9월 가천대 길병원이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의사 ‘왓슨 포 온콜로지’를 암환자 진료를 위해 도입한 데 이어 건양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조선대병원 등 국내 대학병원들이 속속 도입하고 있다.
암 치료에 특화한 왓슨은 300개 이상의 의학저널, 200개 이상의 의학 교과서, 1500만 페이지에 달하는 의료정보 등에서 치료 가이드라인을 분석해 각...
송 마리아(1753~1801)는 참봉 송낙휴(宋樂休)의 딸이며,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恩彦君) 이인(李裀·1754~1801)의 처이다. 은언군 인과 혼인하여 3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
참봉의 딸인 송 마리아가 왕족 은언군 인과 혼인하면서 가족의 불행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아들과 남편이 역모를 주도하거나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정쟁 속에서 역적으로 지목되었다....
순조의 비 순원왕후(純元王后·1789~1857)는 본관이 안동이다. 1789년(정조 13) 아버지 영안부원군 김조순(金祖淳)과 어머니 청송 심씨의 장녀로 태어나 1800년(정조 24) 왕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삼간택(三揀擇)을 하기 전에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왕비 책봉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1802년(순조 2) 왕비에...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 金氏·1745~1805)는 경주 김씨 김한구(金漢耈·1723~1769)의 딸이다. 1759년(영조 35) 15세에 영조의 계비(繼妃)가 되었으며, 그 후 왕대비, 대왕대비를 거치며 모두 46년간 국모의 지위에 있었다.
정순왕후 김씨는 그의 친정인 경주 김씨 가문을 통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계비가 되었을 당시 영조와는 51세의 나이 차가 있었으며...
화완옹주(和緩翁主·1738~1808)는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의 막내딸로, 영조의 9녀이다. 그리고 사도세자의 친여동생으로 정조의 친고모가 된다. 12세 때 동갑인 일성위(日城尉) 정치달(鄭致達)과 혼인하여 슬하에 1녀를 두었다. 그러나 딸이 태어난 지 5개월여 만에 죽고, 딸이 죽은 지 한 달도 못 되어 남편 정치달이 20세에 요절했다.
화완옹주는 옹주 시절 아버지 영조의...
화순옹주(和順翁主·1720~1758)는 영조의 둘째 딸이며 정빈 이씨(1694~1721)의 소생이다. 2세 때 어머니 정빈 이씨가 세상을 떠났다. 9세 때에는 한 살 위인 오라버니 효장세자(추존왕 진종·1719~1728)마저 세상을 떠났다.
화순옹주는 13세 때 동갑인 경주 김씨 판돈녕(判敦寧) 김흥경(金興慶)의 넷째 아들 김한신(金漢藎·1720~1758)과 결혼하였다. 김한신은 그의 집에서...
보유세 도입론자로 꼽히는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10일 보유세 관련 KBS 토론에서 “개인 의견이지만 지금보다 10배 정도 올려야 된다”고 말해 주변의 기류를 느끼게 했다. 전 교수는 현 정권 부동산 정책 기조와 맥을 같이 하는 사람이어서 그렇다. 물론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달았고 실현 가능성 또한 희박해 전 교수 주장이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