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18대 대선 당시와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딸 부부 소유의 서울 구기동 빌라에 머물렀다. 이후 민주당 대표를 사임했을 때 김정숙 여사 이름으로 홍은동 자택을 구입했다.
청와대 소속 재산공개 대상자 중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이는 장하성 정책실장이었다. 장 실장은 93억1900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으며, 11억4000만원 상당의...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에 참여했다.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의 창당에 참여해 사무차장을 맡았고, 2004년 노동위원장을 역임했다.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통합민주당에서는 초선으로 사무총장까지 맡았다. 18대 때 낙선한 후 19~20대 총선 영등포갑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3선 고지에 올랐다. 19대 국회에서...
앞서 법사위는 17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 일정 조율을 시도했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향후 야 3당은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의 정치적 편향성 문제를 질타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 측은 이 후보자가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고,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점을 들어 그의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 삼고 있다.
송 장관은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문 대통령 지지모임인 담쟁이포럼 창립멤버로 활동한 뒤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다. 19대 대선 때도 캠프에 참여해 전작권 조기환수와 킬체인·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구축 등 국방정책을 담당했다. 송 장관은 기본적으로 개혁 의지가 강하고 남다른 추진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합참에서 대령부터 장성까지 과장, 부장...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자문그룹으로 알려진 심천회(心天會)는 문 대통령이 18대 대선에서 패한 직후 대통령에게 ‘정책 과외’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자와 함께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이 심천회 출신이다.
한편 야당 의원들은 이날 청문회에서 박 후보자가 국책연구원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재직...
18대 총선에선 한나라당 후보에게 129표 차로 석패했지만 19, 20대 총선에서 내리 승리하면서 3선 고지에 올랐다.
20대 국회 들어선 지난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아 여야 3당의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합의에 역할을 했다. 동시에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조선·해운업계 구조조정 등 경제 현안에도 통찰력을 드러내, ‘정책통’으로 거듭났다.
지난 대선에선...
국정원 '빨간 마티즈 사건' 이란 2015년 7월 18대 대선 관련,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과 선거개입 의혹을 말한다. 당시 국정원의 팀장급 간부였던 임 과장은 해킹프로그램을 구매한 인물로 '해킹팀 유출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같은 달 18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의 한 야산 중턱 마티즈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차량 안에서는 ‘이번 사건은...
2007년 대선에서는 정동영 후보 선대위 대변인을 맡았다.
2004년 열린우리당 공동대변인 당시 촌철살인의 어휘 선택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며느리가 하와이에서 출산한 것을 두고 ‘원정출산’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붙은 ‘수첩공주’라는 별명도 그의 작품이다. 미운털이 박혀 2008년 총선 낙선...
유 처장이 정치에 발을 들인 것은 지난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직능특보를 맡으면서부터다. 당시 유 처장은 직능특보이자 부산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서 문재인 정부 보건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18대 대선 이후 보건복지 분야 기조에 큰 변화를 가져가고 있지 않다는 점이 유 처장 인선에 유효한 것으로...
2008년 18대 국회의원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했고 2010년 당시 손학규 민주당 대표 추천으로 복당해 최고위원을 지냈다. 김 장관은 2007년 대선 이후 사실상 정계를 떠났으며 최근 당내에서조차 최고위원 인선 하마평에 오르내리지 않았던 의외의 인사였다.
2011년 8월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와 민주당 부산진갑 지역위원장을 맡았으며 19대 총선에서 부산진갑에 출마했지만...
19대 대선에서는 유승민 후보 유세본부 부본부장을 맡았다.
또한 조직강화특위 위원장은 5선의 정병국 의원, 인재영입위원장은 신성범 전 의원이 각각 내정됐다. 같은 당 소속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와 함께 ‘남원정’으로 불리던 ‘원조 소장파’인 정 의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언론인 출신인 신 전 의원은 18대, 19대...
그는 1997년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 중심의 정권교체보다는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청산’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 조순 민주당 총재와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의 합당 결정으로 고 제정구 의원 등과 함께 당적을 한나라당으로 옮겼다.
당적을 옮기고 나서 2000년 16대 총선에서 경기도 군포에 출마해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당시의 인연으로 이유미 씨는 이후 18대 대선 때 안철수 캠프 자원봉사자로 활동했으며 안철수 전 후보와 ‘청춘콘서트’를 위해 전국을 함께 순회했다.
이유미 씨는 2013년에는 안철수 대선 캠프의 회고록인 ‘안철수와 함께한 희망의 기록 66일’을 집필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이유미 씨가 회고록 출간 당시 관련 행사에서 안철수 전 후보와 팔짱을...
한도액의 66.41% 수준으로, 18대 대선에 비하면 허리띠를 졸라맨 모양새다.
당 후보의 득표율이 15%에 미치지 못해 선거비용 보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던 바른정당, 정의당은 더 강력한 긴축재정으로 선거를 치렀다. 유승민 의원이 후보였던 바른정당은 48억3800만 원,심상정 대표가 출마했던 정의당은 35억6600만 원을 각각 지출했다. 각각 한도액의 9.49%, 6....
다만 총 509건이었던 18대 대선 전체 조치보다 179건 낮은 수치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궐위 선거였기 때문에 선거 기간이 짧았다”며 “보통 대선 경선부터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조치 건수를 집계하는데, 탄핵 뒤 두 달 만에 조기 선거를 치른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18대 대선 때는 안철수 후보 캠프에 합류해 국민정책본부장으로 활동한 뒤 2013년부터 1년여간 ‘정책네트워크 내일’ 소장을 지냈다. 이번 19대 대선 기간에는 전면에 나서지 않았으나 여전히 안철수 후보의 멘토로 활동했다.
아울러 장 실장은 한국증권학회와 선물학회, 재무학회, 금융학회에서 활동했다. 2005년에는 고려대 경영대 학장, 경영대학원 원장을 지냈다....
하지만 이후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말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공개됐을 때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이 일어나면서 정상회담 회의록 초본 폐기를 공모한 혐의로 기소돼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법원은 2015년 2월 1심과 그해 11월 2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는 대법원 판결을 남겨 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최근 남북 민간교류 재개를 시사하면서 조...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참여운동본부 사무총장을 맡아 대선 승리에 기여했고, 2004년 열린우리당 당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열린우리당 대변인, 통합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민주통합당 사무총장 등 당내 요직도 두루 거쳤다.
그러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하면서부터 정치 인생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2012년 19대 총선을...
‘6월항쟁계승사업회’를 비롯한 민주화운동 관련 시민단체는 2014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 18대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박상증 목사가 임명된 점을 들어 공식 행사 참석을 거부하고 별도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 다음은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국민여러분과 함께 6ㆍ10 민주항쟁 30주년을...
한편 이번 기념식은 정부와 시민단체가 4년 만에 함께 여는 행사다. ‘6월항쟁계승사업회’ 등 민주화운동 관련 시민단체는 2014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 18대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박상증 목사가 임명되자 공식 행사 참석을 거부하고 별도 행사를 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