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당시의 명칭은 조흥금융박물관이었으며 2006년 4월 1일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이 통합해 신한은행으로 출범하면서 박물관명칭도 한국금융사박물관으로 변경했다.
지난 2007년 4월 24일에는 6개월 여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모습으로 재개관했다. 이곳은 4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 약 10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주요 소장 유물은 개항기 이전에...
19% 상승했다.
반면 신한지주(2.88%)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유지분을 전량 매각했다는 소식에 따른 것이다.
예보는 조흥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조흥은행 지분을 보유하게 됐고 지난 2003년 이를 매각하면서 매각 대금 일부를 신한금융 주식으로 받은 바 있다.
삼성생명, 현대중공업도 1% 넘게 하락했다.
새로운 은행법은 한국상업은행·신탁은행·상공은행·저축은행·조흥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은행간의 합병을 추진하고 자산재평가, 민영화 등을 실시하도록 했다. 1956년에는 신탁은행과 상공은행이 합병해 우리은행의 또 다른 큰 줄기인 한일은행의 전신인 한국흥업은행으로 새출발을 했다.
특히 상업은행은 1950년대 후반 미국·일본·유럽 등...
이 신임 대표는 조흥은행 부행장을 지내고 2005년 동양건설산업 재경관리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2008년 이 회사 경영관리본부장으로 승진했다.
고(故) 최윤신 회장의 조카인 최 전 사장은 지난해 12월부터 동양건설산업을 경영해오다 일신상의 이유로 이날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최 전 사장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이 회사의 경영...
한 회장은 우리금융 인수전 참여 가능성에 대해 "조흥은행과 LG카드 인수와 관련해 상환해야 할 상환우선주 3조7500억원 중 내년 1월 상환후 1조5000억원 정도가 남는다"며 "차입금 5조원을 포함하면 인수 관련 부채가 6조5000억원 정도 있어 새로운 은행 인수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재무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KB금융 등이 우리금융을...
앞서 신한금융의 경우 조흥은행을 합병할 때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이라는 2개의 행명을 유지하며 약 3년간 공동경영을 한 바 있다.
강 회장은 이날 “우리나라 금융계에도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나와야 한다”는 논리로 우리금융 인수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특히 메가뱅크라는 말은 하지 않고 ‘챔피언 뱅크’라는 용어를 썼다.
강 회장은 우리금융 인수...
특히 조흥은행과 통합하면서 청개천 인근 옛 조흥은행 본점 건물로 옮기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현 위치가 최고 명당터라는 내부 의견에 따라 이전을 포기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서울 중구 회현동1가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점 위치도 손꼽히는 명당터로 유명합니다. 이곳은 조선 중종때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의 집터로 대궐 못지않은 99칸 저택이...
1990년대 중반 명동 일대에는 국민·신한·서울·한미·제일·조흥·하나·보람·한일·상업은행 등 주요 은행 본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습니다.
예컨대 옛 남대문로의 지도를 보면 남대문로 3가에 있는 한국은행을 시작으로 2가 주변에 상업은행, 한일은행, 서울은행, 국민은행 등이 있었습니다. 같은 길을 따라 하나은행, 조흥은행, 제일은행까지 대부분 은행의 본점이...
모교를 찾은 유휘성씨는 “모교가 마음의 고향이고 친구들과 함께 한 추억이 있는 곳이기에 1순위로 기부하기로 했다”면서 “살 동안 생활할 수 있는 돈만 있으면 되지 그 밖의 재산은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씨의 기부금은 신경영관 건립기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유씨는 조흥건설이라는 중소기업을 창업하고 부동산 관리, 임대업에 종사했다.
1968년 국민은행에 입행해 서초동 지점장, 그룹 기획실장, 서소문 지점장 등을 거쳤으며, 2000년 조흥캐피탈 사외이사, 2006년 대우정밀주식회사 감사를 역임하였고, 2009년부터는 KT캐피탈에서 감사로 재직했다.
또한 이날 임시주주총회에서는 신임 윤종화 감사를 선임했다. 윤종화 감사는 1948년생으로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UCLA 경영대학원 및 중앙대...
“올해는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통합 5주년일 뿐 아니라 미래를 좌우할 전략적 변곡점이 될 것입니다. 사랑받는 1등 은행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할 것이며 2011년 신한인들이 어떤 하모니로 도약을 하는지 지켜봐 주십시요.”
지난 6일 취임 100일을 맞아 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에 나선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시종일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지만 강한...
또 2003년 신한금융지주에 팔린 조흥은행은 2년여간의 통합 준비 과정을 거쳐 2006년 4월 신한은행으로 합쳐지면서 ‘조흥’이란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같은 인수합병의 과정을 거쳐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은행 중심의 4대금융지주체제가 짜여지게 됩니다. 또 지방은행 중에서는 부산은행, 대구은행, 전북은행...
선임하고 김인식 전 킨텍스 대표와 박성희 전 문화방송 경영본부장을 각각 사외이사와 감사로 새롭게 선임한다.
자동차 부품제조업체인 다함이텍은 투자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금융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는 정관변경을 주총을 통해 의결할 예정이다.
태경화학, KT&G, 천일고속, 조흥, 오뚜기, 신도리코, 서흥캅셀, 삼양사, 부산은행, 다함이텍, 위스컴
(CEO) 승계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혼자 할 수 없는 것이니 자료를 찾고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수합병(M&A)에 대해서는 “어림잡아 계산해도 지금 당장은 빠르다”며 “어디에 뛰어든다는 얘기는 이르다”고 밝혔다. 한 내정자는 “지금은 조흥은행, LG카드 인수 등으로 여력이 없지만 훗날에 여력이 생기면 M&A를 경영전략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흥은행은 다시 신한은행에 합병됨으로써 시중은행은 7개 은행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불과 4~5년 사이에 10개가 넘는 은행이 없어졌고 차후에도 살아남았던 은행들도 다시한번 합병을 경험하게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은행 합병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IMF라는 특수한 상황도 있었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자발적인 합병보다는 정부주도에 의한 구조조정...
실제로 당시 신한은행이 조흥은행을 합병하는 등 은행들은 자기자본을 확충하며 몸집키우기에 나섰다.
초대형 은행의 탄생이 현재 금융지주사들이 탄생한 시발점인 셈이다.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만일 대우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의 합병이 현실화된다면 그 탄생만으로도 증권업계에 큰 시사점을 던져 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대한증권거래소(현재 한국거래소) 개소일인 1956년 3월3일 당시 상장회사는 거래소출자증권, 연합증권금융, 조흥은행, 상업은행, 저축은행, 흥업은행, 경성전기, 남선전기, 경성방직, 조선운수, 조선공사, 해운공사 등 12개사였다.
이중 현재 남아있는 최장 기간 상장사는 경방(구 경성방직), 대한통운(구 조선운수), 한진중공업홀딩스(구 조선공사)...
당초 1970년대까지는 조흥은행, 한국상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서울신탁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이 활동했습니다. 이들 5개 시중은행은 금융자율화로 인해 모두 민영화가 됐습니다.
정부가 1981년 한일은행의 정부보유 주식을 매각하고 1982년에는 제일은행과 서울신탁은행, 1983년 조흥은행 정부보유 주식을 매각해 상업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이 모두...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는 상대적으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김 교수는 면접에 응할지를 묻는 말에 "간단한 일이 아니다"며 "나도 생각이 있다. 섣불리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한금융과 신한은행 사외이사를 장기간 역임한데다 2005년 신한, 조흥은행 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신한금융 내부에 정통하다는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