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영조의 부마가 되었는데도 항상 겸손하고 검소하였다. 그가 39세의 나이로 병사하자 영조는 매우 슬퍼하며 정효(貞孝)라는 시호를 내려주었다. 그는 슬하에 자녀가 없어 맏형 한정(漢楨)의 셋째 아들 이주(頤柱)를 후사(後嗣)로 삼았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평범한 가문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주변인물 중 사서(史書)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그녀의 가계에 대한 정보는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묘지에 새겨둔 묘지명(墓誌銘)을 통해 겨우 알 수 있는데, 아버지 고종재(高宗載)의 경우 강화도의 교동현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없다.
또한 그녀는 전직인(田稷仁)의 장남 전기...
몽골 부인들이 쓰는 관(冠)인 고고(姑姑)를 내려주자 그녀는 고고를 쓴 채 큰 잔치를 베풀어 자신의 위세를 과시했다. 충선왕의 또 다른 후비인 순비(順妃)가 몽골로부터 고고를 하사받은 기념으로 연 축제에서 숙창원비는 순비에게 지기 싫어 옷을 다섯 번이나 갈아입었다고 전한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형제자매들도 모두 당대 최고로 출세한 인물들이었다. 남자 형제로는 최고관직을 두루 거친 권준(權準)과 권고(權皐), 충선왕의 양자가 되어 성명을 왕후(王煦)로 개명한 남동생, 최고위직을 맡았다가 훗날 딸이 원나라 황태자비가 되어 국정을 농단했던 권겸(權謙), 출가하여 최고의 승직(僧職)에 오른 종정(宗頂)이 있었다.
자매들도 남자 형제 못지않았다. 언니는...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종과 맞바람을 피웠다가 남편에게 걸려 결국 내침을 당했던 것이다. 최씨를 내쫓은 이의민은 그 뒤 양가집 규수 중 얼굴이 예쁜 여자가 있으면 데려가 결혼하고는 다시 버리는 일을 반복하였다고 전한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다시 말해 손변의 아내가 왕의 딸로 태어났으나 어머니 혈통이 좋지 않아 공주로 불릴 수 없었던 인물이었다. 그녀의 혈통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궁인의 소생들은 많은 차별을 받았는데, 차별의 대상에는 국서도 포함되었다. 사실 손변은 혈통에 아무런 하자가 없는 귀족의 후손이었지만, 배우자의 혈통적 하자로 인해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소부인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지소부인은 변하지 않는 이상이 더 가치가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지소부인이 지키고자 했던 삼종지의와 불법 등의 이상은 그를 딸과 아내가 아닌 그 자신으로 빛나게 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그러나 문희 역시 이미 언니의 꿈을 살 만큼 큰 꿈을 지닌 인물이었다. 문희는 김유신의 의도를 알았고 김춘추와 혼인하기까지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던 것이다. 삼국통일의 꿈은 김춘추와 김유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문희 역시 그들과 함께 천하의 꿈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희는 김춘추와 김유신의 결합의 연결고리였다. 문희를 접점으로 양자의 유대관계는...
천관(天官)은 신라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 대의 인물로, 김유신이 어렸을 적에 사랑했던 여인이다. 그에 관한 일화는 ‘동경잡기(東京雜記)’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그의 집터였던 천관사지와, 그가 지어 불렀다는 원사(怨詞)라는 향가의 곡명만 남아 있다.
7세기에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 그리고 당과 큰 전쟁을 치렀다. 이...
도화녀는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죽은 자와도 교통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도화녀의 능력은 비형에게 대물림되었다.
도화녀와 진지왕의 만남이 매우 특이하다. 남녀의 만남을 넘어 서민과 왕의 만남이고,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이다. 더욱이 이 만남의 최종 결정은 도화녀에 달려 있었다. 도화녀는 서민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지왕의 구애에 대한 결정권을...
지증왕과 연제부인은 각기 남다른 인물이었다. 이들의 남다름은 크기로 비견되어 있다. 지증왕의 음경과 연제부인의 배설물과 키의 크기는 이들의 만남이 필연이었음을 알려준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배필을 찾던 지증왕이 찾은 것은 모량부 상공의 딸이었다. 김씨와 박씨의 정치세력 간의 결합이었던 것이다. 지증왕은 그의 배포에 걸맞은 배필과 그의 정치적 야망을...
손장순은 근대로의 전환에 따른 사회변동을 여성 지식인의 눈으로 날카롭게 파헤쳤다. 그녀는 전후 한국의 문화 담론을 강타한 전후파(戰後派) 여성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녀가 그려낸 전후파 여성은, 현대 여성을 정조 관념이 없고 타산적(打算的)이라고 폄훼하는 가부장제 담론과 구별된다. 서구 문명의 유입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전후파...
그러나 아버지가 ‘작은 집’을 얻자 의절할 만큼 여성적 자의식이 강했다. 목포 정명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가고자 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충남과 전남에서 교사로 일했다. 전남 영광학교 교원 시절 문학 수업을 시작해 ‘추석전야(秋夕前夜·1925)’가 이광수(李光洙)의 추천을 받아 ‘조선문단’으로 데뷔했다.
숙명여고보 졸업 후 1926년에 일본의 니혼...
1949년에 ‘얼굴’, ‘정순이’가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문예’로 데뷔해 전후 여성 살롱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창작집 ‘희화(戲畫)’(1958) ‘여정(旅程)’(1959), 장편 ‘파도’(1963) ‘숲에는 그대 향기’(1967) 등을 남겼다.
여성작가 1세대인 김명순, 김일엽, 나혜석은 ‘스캔들의 여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선각자에게 주어진 세상의 질시(嫉視)를...
여성의 억압된 성욕을 드러낸 ‘은빛깔의 작은 새’ 역시 욕망과 감정에 솔직한 여성인물이 등장한다. ‘생기’, ‘열정’ 등은 전후 청년들의 우울과 허무를 벗어날 새로운 인물 유형으로 1960년대 청춘서사의 특징을 보여준다.
작품집으로 ‘은빛깔의 작은 새’(1975), ‘요가를 하는 여자’(1979), ‘해결되지 않는 불꽃’(1996) 등이 있으며, 장편 ‘안개의 초상’...
그녀의 작품은 빨갱이콤플렉스에 갇혀 오랫동안 침묵해야 했던 짐승의 시간을 다시 쓰기라는 서사전략으로 재소환하고 재통합하고자 하는 지난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문제를 다룬 소설로는 ‘살아 있는 날의 시작’,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이 있다. 여성문제 소설은 계몽성이 좀 더 앞선 작품들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198,90년대...
백신애(白信愛·1908~1939)는 경북 영천 출생으로 32세의 나이로 짧은 생애를 살다 간 1930년대 여성작가이다. 완고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해 신식교육을 받지 못했고, 15세가 될 때까지 독선생에게 한학과 여학교 강의록 등을 배웠다. 16세에 대구사범에 들어가 수학한 후 3종 훈도(訓導) 자격을 얻어 교원생활을 한다.
짧은 교원생활 후 상경, 이후 조선여성동우회...
이선희(李善熙·1911~1946 월북)는 1930년대 대표적인 여성작가이다. 함남 함흥에서 출생하여 원산에서 성장했다. 그녀에게 원산은 추억의 장소이면서 도시적 감수성을 형성하는 배경이 된 곳이다. 이선희가 자신을 “도회의 딸”, “아스팔트의 딸”이라고 말하는 저변에는 바로 이러한 원산의 영향이 자리잡고 있다. 당시의 여성평론가 임순득은 1930년대 후반...
시어머니로부터 구출된 이후, 정일헌은 유교 경서를 탐닉하고 유교적 여성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는 ‘정일(貞一)’이라는 자호(自號)에서도 드러난다. ‘정일’은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말이다. 뜻은 ‘정부일(貞夫一)’ 곧 사물의 변동은 무궁하나 마침내 하나의 이치(一理)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태극’이라는 시 한 편이 주목된다. “태극은...
이때 함께한 여성 예술인이 경혜(景蕙)·경산(瓊山)·금원(錦園)인데, 운초처럼 기녀에서 소실이 된 예술인들이다. 운초는 이 소실 그룹의 친구들과 19세기 여성 예술사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특히 운초·경산·금원·경춘·죽서 등 다섯 명은 ‘삼호정시사(三湖亭詩社)’라는 시 동아리를 결성하여 문학의 창작과 감상, 향유 활동을 주도하고 예술 문화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