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역사속 인물 제대로 보기

입력 2024-05-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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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

우리가 평소 잘 아는 듯 여겨도 실제로 그가 살아온 생애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인물이 많다. 얼마 전 어느 출판사의 요청으로 사임당 평전을 쓰며, 사임당이야말로 그런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인데, 실제로는 사임당의 생애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임당은 조선시대에 태어난 여성 가운데서는 드물게 태어나고 죽은 날의 생몰년월일이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1504년 10월 29일 강릉 북평촌에서(그 집이 아직 오죽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의 오죽헌에서) 태어나고, 1551년 5월17일 47세를 일기로 서울 삼청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임당뿐 아니라 사임당의 어머니 용인이 씨도 외손자 율곡이 남긴 기록으로 태어난 때와 세상을 떠난 때가 남아 있다. 이렇게 태어나고 돌아가신 날과 행적까지 뚜렷하게 전해오는 인물인데도 어떤 문헌에도 사임당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사임당이 세상을 떠난 다음 아들 율곡이 쓴 어머니의 행장에는 어머니의 이름을 글자 그대로 적는 것을 피하여(기휘라고 하여 임금과 부모와 조상의 이름을 문자로 쓰거나 입으로 부르는 것을 불경하게 여겨) ‘어머니의 이름은 모(某)로 신공(신명화)의 둘째 딸’이라고만 적었다.

만약 율곡이 어머니 이름을 행장에 그대로 쓴다면 그것은 어머니에게 불효, 불경을 저지르는 일이 돼 사임당에 대한 여러 기록 속에 정작 이름만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 편의 역사 코미디처럼 많은 책과 자료에 사임당의 본명이 신인선(申仁善)으로 나와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렇게 된 이유를 문학적으로 살펴보면 이해도 가고 과정도 재미있다.

1980년대 출간된 어떤 동화에 사임당의 어린 시절 이름을 ‘인선’이라고 쓴 다음부터 연이어 나온 책들이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인용했다. 소설이든 동화든 주인공의 이름을 쓰지 않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어려우니 처음 동화를 쓴 작가가 사임당의 이름을 ‘인선’이라고 창작하여 쓴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본명인 줄 알고 학술적으로까지 잘못된 인용이 거듭되다 보니 나중에 어떤 백과사전에까지 사임당의 이름이 신인선으로 등재되었다. 글과 말에서 사전이 갖는 절대적인 신뢰로 일반인은 물론 텔레비전의 역사 교양 프로그램과 한국사 베스트셀러 저자까지도 거기에 나와 있는 오류를 정답처럼 그대로 베껴 방송하고 강의한다. 텔레비전의 역사 프로그램에서도 사임당의 이름은 ‘신인선’이라고 확정하여 방송한다.

이렇게 오류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수세기 동안 사임당 인물의 신격화가 이루어져 왔다. 사람들은 사임당이 대유학자 율곡의 어머니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가 마치 자식들의 공부 성공을 다 지켜본 사람인 듯 닮고 싶어 하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사임당이 젊은 시절 그토록 공부 뒷바라지했던 남편은 과거시험 소과에도 오르지 못했다. 세상을 떠날 때 일곱 자식 가운데 혼기에 이른 자식이 넷이었는데 혼례를 치른 자식은 큰딸 하나뿐이었다.

28세의 큰아들은 어릴 때부터 부증을 앓았고, 어머니가 죽은 다음 32세에 결혼했다. 어느 아들도 대과는 고사하고 소과시험에도 오르지 못했다. 셋째 아들 율곡이 13세 때 처음 과장에 나가 치른 진사시험 초시에서 장원한 것이 사임당의 살아생전 자식들이 학문으로 보여준 결실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도 사임당이 자식들 공부의 뒤끝을 다 지켜본 듯 부러워하는 것이다. 세상의 필요에 따라 현모양처로, 겨레의 어머니로, 교육의 어머니로 이미지를 만들어온 때문이다.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그 사람이 살았던 삶의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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