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윤 대통령은 24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을 언급하면서 "유가족이 일본에는 사과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우리 자식을 죽인 북한에 대해서는 사과하라는 얘기를 왜 안 하냐고 하소연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런 시각이 보편적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31일 북한 주민의 인권 실태를...
24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전몰장병 55명을 호명하기 전 울먹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꽃다운 나이에 산화한 장병을 생각하면 어찌 평정을 유지할 수 있나"라고 말한 것으로 26일 용산 대통령실이 전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오후 청사 브리핑에서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 대해 언론과 국민 여러분이 많은 관심을 보였고...
윤석열 대통령은 24일 천안함 피격을 북한의 소행이라 천명하고 서해수호 용사 55명을 호명하며 위훈을 기렸다.
윤 대통령은 이날 김건희 여사와 함께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제2연평해전·연평도 포격전·천안함 묘역과 고(故) 한주호 준위 묘소를 찾아 유가족 및 참전 장병들과 참배한 뒤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이곳...
김한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은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서해수호 55용사'의 자녀 중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해군의 길을 걷기로 한 조시은, 김해나, 한태경 씨와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제8회 서해수호의 날(3월 24일)을 앞두고 서해수호 영웅인 아버지를 이어 해군의 길을 걷기로 한 자녀들만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최초로 개최된 간담회다....
참석자 중에는 천안함 희생자인 고 민평기 상사의 모친으로 2020년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 "천안함이 누구 소행인가 말씀해달라"고 호소한 윤청자 여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오찬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서해 수호 순국 장병 유족들과 생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5일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최근 ICBM 발사 등 도발을 일삼는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윤 당선인은 25일 오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서해수호의 날이다.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으로 55인의 용사들이 전사했다"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이들의 고귀한 희생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지난해 3월 ‘제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과 11월 해군 창설 76주년 호국음악회 사회자로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시행된 국가 기술 자격검정인 ‘이용기능사’(이발사) 실기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전역을 앞둔 지난 10일에는 경남 창원 해군교육사령부에서 680기 훈련병들을 대상으로 ‘모범 리더 병사 군 복무 성공사례 교육’을...
지금도 서북단 서해5도에서 최남단 제주도까지, 그리고 한반도를 넘어 UN평화유지군으로 우리 국민이 있는 곳이라면 반드시 해병대가 있습니다.
이제 해병대는 48년 만에 다시 날개를 달게 됩니다. 올해 12월, 항공단이 창설되면 우리 해병은 드디어 입체적인 공격 능력과 기동력을 갖추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고의 능력으로 대처하며 어디서나 완벽하게 임무를...
지난 3월26일 열린 서해수호의 날 최초로 공식 석상에서 '연평도 포격전'이라는 용어를 썼던 문 대통령은 김정수 소령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천중규·김상혁 상사에게 인헌무공훈장을, 이준형 중사에게는 무공포장을 수여했다.
이들 해병에 대한 훈·포장 수여는 전투가 벌어진 지 11년 만에 문재인 정부에서 결정된 것이다. 또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을...
그러면서 "저를 포함한 많은 정치인이 졸음 사고에 대해 이해를 한다"며 "서해수호의날 김태년 의원도 고개를 떨군 6초 때문에 야당과 언론의 맹비난을 받았다. 몇 년 전 현충일 행사에서의 정우택 의원도, 문재인 대통령 시정연설 때 졸았던 야당 의원도 10여 초의 굴욕이었다"고 적었다.
이어 "정치인의 졸음을 탓하지 않던 저이지만 윤...
이후에는 서해를 수호하다 목숨을 바친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참전용사의 위국헌신 정신을 선양하는 일에 애써왔다.
강원도 평강군에서 태어난 최 대령은 1947년 9월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1950년 2월 해군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 갑판사관(소위)으로 임관했다.
최 대령은 전쟁 발발 이튿날 무장병력 600여 명을 태우고 동해 상에서 부산으로...